영화에는 주연과 조연,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게이머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특히, 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작품 밖에는 기획자,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은 게이머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선사하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들어 줍니다.때론 주인공, 때론 친구, 때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킨 개발자들까지 게임에 관련된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습니다.[편집자 주]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얼라이언스와 함께 아제로스를 양분하고 있던 주요 세력 '호드'는 격전의 아제로스 확장팩 시절까지만 해도 '대족장'이라는 지도자 직위가 존재했다.
호드라는 세력의 뿌리가 드레노어 행성에서 어둠의 문을 넘어 아제로스에 도달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오크의 공동체였음을 감안하면 태생적으로 오크놈들이 주류를 이루고 어지간하면 대족장 자리를 노나 먹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아제로스 3차 대전쟁인 '워크래프트 3' 시점 이후 스랄을 주축으로 재결성된 신생 호드는 평화주의적인 노선과 더불어 민주적인 절차를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크 이외의 종족에서도 대족장이 선출되는 결과가 나오게 됐다.
물론 비 오크 출신 대족장은 기껏해야 2명 뿐이고 그 중 하나는 트루워치프 가로쉬님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음해하며 내쫓는 날치기 쿠데타로 자리를 차지한 더러운 트롤이지만, 다음으로 대족장 자리에 앉은 것은 무려 지명을 통해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족장이 된 입지전적의 인물 '실바나스 윈드러너'였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면 10점 만점에 8점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시던 하이 엘프 시절
실바나스는 사실 아서스 메네실과 칼을 맞대지만 않았더라면 호드를 포함한 그 어떤 아제로스의 그 어떤 이들보다 대족장 직위와는 연이 없었어야 할 인물이었다. 살아 생전에는 동맹 관계가 불안하기는 했어도 엄연히 얼라이언스에 속해있던 하이엘프의 순찰자였고 아서스 메네실에게 살해당한 후 밴시 상태로 조종당하다가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시도했던 것은 얼라이언스와의 동맹 체결이었다.
물론 조종당했을 시절의 일이라고는 하나 얼라이언스에서는 수많은 일원을 살해한 책임과 언데드라는 종족에 대한 혐오를 물으며 실바나스를 비롯한 언데드 포세이큰 종족 전체의 얼라이언스 동맹 합류는 무산됐고 울며겨자먹기로 호드에 합류하는 수순을 거치게 된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실바나스는 호드의 일원이자 포세이큰의 수장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됐고, 뭇 영웅들이 다 그렇듯이 어느 순간에는 의롭고 명예로운 일을 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비열하고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등 입체적인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오, 징박이 파멸의 인도자 룻하더니 리치왕 막타만 빼먹네
그녀의 인생 역전, 제 2라운드가 시작된 지점은 사실상 '리치왕 아서스 메네실' 토벌이라 볼 수 있다. 그토록 원하는 복수를 끝마쳤지만 삶의 목표를 잃은 상실감과 허무함 때문에 그 자리에서 목숨을 던지고 되살아나는 과정을 거쳤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인 다음 되살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포세이큰으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확립하게 된다.
불타는 군단 뒤에서 암약하고 있던 스컬지의 진정한 지배자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은 이상 실바나스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신발도 못신는 더러운 트롤 대족장이 측면을 사수하라고 외치다가 뒤틀린 황천의 잡졸 악마가 내민 정면에서 창을 찌르는 것에 도넛이 되어버리자 실바나스는 죽음의 로아 무에젤라와 결탁하여 자신을 대족장으로 임명하라는 거짓 예언으로 가스라이팅에 성공했고, 볼진의 복수를 하자는 심영급 프로파간다를 시전하며 실바나스는 85%를 넘는 역대급 지지율로 대족장 취임에 성공한다.

'호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하여!
물론, 중간에 뒷공작을 벌이던 것이 발각되어 호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명대사만을 남긴 채 불명예 퇴임하게 됐지만 얼라이언스에서도 쩌리, 호드에서도 쩌리인 그녀의 자존감을 높여줄 곳인 간수 '조바알'의 최측근 자리를 차지하며 나락 내에서는 어디든 국빈급 대우를 받는 몸이 된다.
이러한 행보는 항상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이를 위해 투젱해온 지난 날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었지만, 권력의 맛은 그만큼 달콤했고 실바나스는 죽어도 못 놓치는 마지막 자존심과 자존감 때문에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 끝에 악이 패배하는 당연한 수순을 따라 처절하게 파멸하고 몰락하게 된다.

??? : 원래 얼라-호드 전쟁에서는 다 크고 작은 희생을 안고 가는 것 아니겠어요?
나중에야 공식 소설 등의 미디어 믹스, 시네마틱 영상을 통해 실바나스가 실은 서리한에 찔려 살해당한 첫 죽음부터 간수 '조바알'에게 영혼을 속박당하고 조종당했다는 추가 설정이 붙긴 했는데 그 정도 세탁기로는 택도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차라리 트루워치프 가로쉬님처럼 당당하고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쪽이 훨씬 품격 있는 악역이자 보스로 남는 길이었을텐데 말이다.
어쩌면 실바나스처럼 자질 미달의 지도자를 두는 것보다는 현재의 호드처럼 의회 제도로 굴러가는 것이 초반 운영에 잡음은 있을지라도 호드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닐까?

차라리 살아생전에는 겉바속촉 스모프 양념통닭이 되어주시고
죽어서까지도 치킨 스톡을 남기고 가는 가로쉬님이야 말로 위대한 지도자가 아닐까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