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를 맞이하여 7명의 에스더와 함께
미루고 미뤄왔던 1부 결말을 봤다
아크라시아 행성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욘' 대륙이 처음으로 열린 2019년이었다. 당시에도 척수반사적으로 플레이하던 게임들은 여럿 있었지만 미덥지 못한 콘텐츠와 지지부진한 업데이트를 선보인 탓에 자연스럽게 손을 놓아버렸고, 그렇게 철새처럼 새 친구를 찾아보려고 했을 때 눈에 띈 로스트아크를 만나게 됐다.
사실 게임에 대한 첫 인상이 딱히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처음 접했을 때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이 게임의 정수와 재미 요소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인식 정도는 가지고 있었지만, 라이브 서비스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온라인 MMORPG가 파편화된 내실 콘텐츠로 육성 과정을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어놓은 부분에 대해서는 쉽고 빠르게 성장하고 몰입하는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할 핵 앤 슬래시의 기초적인 문법을 거부하는 것만 같아서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2개월 정도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접어두는 것을 결정하면서 로스트아크를 그동안 플레이한 게임 목록 한켠에 고이 모셔놓고 잊은 채로 살았고, 아크라시아에 다시 돌아온 것은 2021년이었다.

늦깎이 모험가라서 처음으로 접한 현역 군단장 레이드가 '쿠크셰이튼 리허설 난이도'였다
잔혈을 먹고 감동해서 스샷을 찍어놓은 것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
시즌 2에 접어든 로스트아크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서사적으로 플레이어인 모험가의 힘이 충분히 강해지고 카제로스 세력과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그렇게 출시된 엔드 콘텐츠 '군단장 레이드'는 동시기 MMORPG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완성도와 참신한 기믹을 선보이며 액션성이 단순한 핵 앤 슬래시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질 수 있게 도움을 줬고, 군단장 레이드까지 도달하며 '아이템을 파밍하고 템렙을 끌어올려 성장하는 과정'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개선되어 접근성이 크게 좋아졌다.
덕분에 각을 잡고 플레이를 하다 보니 이전에는 쉬이 보이지 않던 게임의 장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가디언 토벌과 같은 콘텐츠는 근본적인 구조와 시스템에서 독창성이 부족한 면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가디언 하나하나에 부여된 개성과 테마가 명확하고 비슷한 금형을 유용한 팔레트 스왑형 몬스터는 아예 공략과 기믹 수행 방법을 완전히 비틀어놓으면서 게이머들의 기대를 좋은 방향으로 배신하여 재미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모습이었다.

걸핏하면 "결국 급할 땐 악마의 힘인가"라고 밈이 되어 소비되는 장면이지만
제대로 각을 잡고 플레이했다면 마냥 웃음벨로 소비될 수 없는 그 파트 '남겨진 바람의 절벽'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바로 메인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아크를 찾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여기저기기 삼천포로 빠지는 수평 콘텐츠에 번듯한 내러티브를 추가하면서 모험 그 자체를 온전한 즐길거리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당시 캐릭터의 성장이 정체되는 폐사 구간을 넘기기 위해 기계적으로 배럭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음미하며 내실을 진행하기 위해 서브 캐릭터인 데빌헌터는 점핑 없이 아르테미스부터 천천히 육성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그제서야 왜 사람들이 그렇게 '남바절', '로맨틱 웨폰' 파트를 추천하고 일단 퍼먹어보라며 갓겜갓겜 칭송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저 지루하고 현학적이라고 생각했었던 사소한 수집요소와 단서들마저 이야기의 큰 흐름과 연결시켜 곱씹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디테일한 구성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내실을 다질 수 밖에 없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당장 카제로스와의 마지막 결전 직전까지 대화를 나눴고
실제로 전쟁에서 죽어나간 NPC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물론, 선제작 후설정 형태로 운 좋게 끼워맞춘 부분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 전체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한 단점으로 작동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온전히 서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자 제작진이 작정하고 큰 그림을 그려내는 '나무보다 숲을 보는 치밀한 설계와 연출력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컷신에 들어가는 캐릭터들의 언행은 물론 배치된 오브젝트 하나하나에서도 의미를 찾으며 게임을 즐겼고 걸핏하면 나오던 슬로건에서 인칭대명사가 바뀌고 주어가 바뀌는 것이 정말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때문에 기약 없이 하드 아브렐슈드를 돌다가 지쳐서 게임을 쉬게 되었어도 연어처럼 꾸준히 돌아와서 메인 스토리만은 따라가며 게임을 플레이할 정도로 지금은 로스트아크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당신은 주인공입니다
이름을 새겨주세요
여전히 빌드업 과정이 장황하고 긴 호흡을 요구한다는 느낌은 있다. 뿐만 아니라 고난도 엔드 콘텐츠와 메인 스토리의 진행을 별개의 이야기로 분리하는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밀접하게 묶어놔서 좋든 싫든 게임을 깊게 푹 퍼먹어야 하는 설계가 누군가에게는 아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트아크의 모험 이야기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고생을 해야 진상에 도달하고 끝을 볼 수 있기에 모험가들은 이야기에 더욱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고, 아만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어 아만과의 작별로 끝맺음하는 수미상관의 1부 서사 그리고 그동안의 족적을 정리해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연출에 눈물 흘리고 박수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혐성국 그 자체로 묘사된 세이크리아에서 시작될 로스트아크의 2부 스토리는 또 모험가들을 얼마나 두근거리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비틀거리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어낸 스마일게이트기에 모험가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