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편집자 주]

통칭 '리격슈'의 자강두천 되시겠다
원래 모든 종류의 '일'은 타고난 재능과 선천적으로 주어진 신체조건이라는 변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여 쌓은 경험과 숙련도가 실력으로 치환되기 마련이고 '게임' 또한 이러한 기조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특히 '슈팅', '리듬', '대전격투' 장르의 경우 이런 부분에서 과금을 통해 플레이 타임을 압축할 수 있는 'P2W' 요소가 개입하기 쉽지 않고, 오히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와 같은 경험치가 전반적인 게임 실력에 굉장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편에 속한다.
오죽하면 해당 장르 게임의 특징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문구가 바로 그 유명한 "와, 그게 보여요?"겠는가?

님도 빨리 박수치셈, 계급 오름
하지만 얼마 전 밸런스 조정 패치가 진행되기 전까지 '철권 8'을 뒤흔들어 놓았던 막장밸런스의 주인공 '잭'의 기술인 '메이크 섬 노이즈'는 이러한 기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악명을 떨쳤다.
상대가 아무리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실전 경험을 쌓았어도 잭이 투원(오른손 펀치-왼손 펀치) 연계 이후 낮은 점프를 하며 박수를 치는 모션이 나오기 시작하면 무력하게 라운드를 내어줄 정도의 성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사실 격겜에서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으레 당연한 일이고 그에 따라 캐릭터의 성능을 종합하여 티어표로 분류하며 사기적인 성능의 기술과 캐릭터는 두고두고 회자되기 마련이지만, 잭의 박수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잭을 주력으로 플레이하던 게이머들조차 본인이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건강박수로 강해진 것을 대놓고 기뻐하기보다는 황당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예전부터 꾸준히 고인물 딱지로 인해 이용자 유입률이 정체된 '철권 시리즈'에 신규 이용자가 늘어나고 활약하는 상황을 원한다고 발언했던 개발진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잭을 잡은 사람은 '노력'이라는 요소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은 채 매우 쉬운 커맨드를 '딸깍' 반복 입력하는 것만으로 게임을 이기고 잭을 상대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 게임을 그만두게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몸에 해로운 게임을 접고, 건강한 삶을 건강하게 영위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건강박수라는 멸칭이 붙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던 셈이다.
그나마 최근에 나오는 격겜들은 주기적으로 밸런스 패치를 통해 이를 조정해나갈 수 있지만, 예전 격겜들은 한번 출시되면 어지간하면 론칭 당시의 밸런스를 끝까지 가져가기 때문에 여러모로 굉장한 일화들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조선통신사의 주제는 바로 '감히 고수가 초보를 이기려 해?' 게이머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던 그 때 그 시절 개초딩 기술들이다.
■ 극한류 건강 슬라이딩

잘 모르는 사람은 노란 장발이 '앤디 보가드'라고 착각하기 쉬운 점을 주의하자
용호의 권 시리즈 2편인 '용호의 권 2'의 경우 밸런스 측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잡기와 잡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낙법과 관련된 기상공방이다.
용호의 권 2의 낙법은 원래 취지대로라면 '캐릭터별로 주어진 타이밍에 맞게 버튼을 입력하여 잡기의 피해를 줄이고 잡기에 당한 쪽에서 빠른 기상으로 반격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겠지만, 정작 낙법에 성공하더라도 충분한 무적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탓에 공격자 측에서 상대를 잡아서 메치면 또 다시 잡기를 시도할 수 있는 무한 루프가 성립하여 문제가 됐다.
심지어 일부 캐릭터는 낙법조차 불가능한 잡기 판정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잡기를 한번 성공하면 크게 실수하지 않는 한 어지간하면 승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용호의 권 2' 밸런스의 실체였던 것이다.

아주 쉽게 행해지는 날먹행동
하지만 로버트 가르시아는 구태여 잡기를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 대시를 입력한 다음 B(킥)를 넣어주면 기력 소모 없이 낮은 자세로 미끄러지며 하단 킥을 날리는 슬라이딩이 나가는데 이게 특수기 판정이라 가드 데미지는 따로 없었지만 어떻게든 슬라이딩을 맞거나 막은 상대에게는 214(1P 플레이어 기준 하단-후방 순서)커맨드를 입력 후 B를 반복하면 그대로 무한 슬라이딩을 반복하며 상대를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단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낮은 자세, 빠른 발동 속도, 없다시피한 딜레이에 굉장히 쉽게 사용할 수 구사 방법 때문에 로버트의 무한 슬라이딩은 오히려 앞서 소개한 잡기 이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악명이 높았고 이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13'에서 최상위 초필살기인 네오맥스 '비연질풍용신각'의 모션에 네타가 반영되는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용호의 권 2를 실시간으로 해본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는 드르르르르르륵
■ 마샬 아츠류 건강 어깨빵

굳이 따지면 오로치 쉘미를 비롯한 약캐 라인이 엄연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히든 캐릭터를 포함하여 모두가 먼저 죽창을 찌를 수 있는 것이 KOF 97의 기조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7(KOF 97)'의 경우 팀 선택 창에서 커맨드 입력을 통해 오로치 일족과 같은 대부분의 히든 캐릭터를 고를 수 있고 히든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모든 기술의 위력이나 스턴 유발, 가드 파괴 수치가 높게 잡혀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어떻게든 '한대'를 허용하면 그대로 게임이 끝난다는 기조가 강하다.
이는 빈말로라도 좋은 밸런스라고 평가하기 어렵지만, 어찌 됐건 KOF 97으 모두가 사기를 칠 수 있는 '상향평준화' 환경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약캐로 분류되는 경우에도 역시나 한대를 맞추면 불리한 판도를 엎을 수 있는 잠재력은 있었고, 강캐의 기준은 그 한대를 얼마나 쉽게 맞히고 또 얼마나 쉽게 콤보를 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시리즈에 따라서는 없어지기도 하는 만큼 엄청 상징성이 높은 기술은 아니다
다만 97에서 당해본 사람들은 잊을 수가 없는 기술이 '파워 차지'다
그렇기에 97 테리 보가드의 경우는 41236(1P 플레이어 기준 후방으로부터 반바퀴) 입력 후 B 또는 D(킥) 커맨드로 나가는 '파워 차지'가 아주 손쉽게 성립하는 무한 콤보의 핵심 동력으로 사용됐다.
기본적으로 격겜에서는 손쉬운 무한 콤보를 방지하기 위해 경직도가 높은 지상 기술은 상대 또는 본인이 기술 히트 후 크게 밀려나게 되어 있고 공중으로 뜨는 것을 유발하는 기술은 동일한 기술을 연속 사용하면 콤보가 성립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97 테리의 파워 차지는 맞은 상대가 뜬 사이에 종류를 불문한 기본기를 허공에 날리고 다시 파워 차지를 입력하면 콤보가 성립되는 '공캔슬' 버그로 인해 현역으로 게임이 돌아가던 당시에는 오락실 또는 문방구 앞 오락기에서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무한 콤보 캐릭터로 이름을 날렸다.
심지어 파워 차지를 넣기 이전에 깔리는 기본기-특수기 연계가 온전히 들어가고 대공 처리가 가능한 기술들로 파워 차지의 후속타를 때려박으면 어지간하면 스턴이 터지기 때문에 굳이 무한 콤보를 구사하지 않아도 97 테리는 매우 강력한 캐릭터로 꼽힌다. 무한 콤보를 허용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는 것이 나을 정도

종종 영상에서 콤보가 끊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상대가 스턴에 걸려서 그렇다
스턴에 걸린 상대를 다시 어깨로 살포시 퍼올려주면 문제 없다
■ 사이코 파워류 건강 전기뱀장어

카즈미공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심심하면 등장하는 고우키에게
맨날 두들겨 맞는다는 나쁜 말은 금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서 영원한 악의 축이자 샤돌루의 총수로 장군님, 수령님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캐릭터 '베가'의 경우 대부분의 상황에서 최종보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종보스답게 시리즈를 불문하고 모든 기술들의 성능은 두 말할 필요 없이 강력하고 그 거대한 체구에 맞지 않게 살포시 뛰어서 상대의 머리를 즈려밟거나 던져버리는 식으로 당하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심어줄 수 있는 연출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유명한 기술은 전신에 사이코 파워를 두르고 온 몸을 드릴처럼 회전시키며 상대를 꿰뚫는 '사이코 크러셔 어택'으로 역시나 시리즈에 따라 판정과 연출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이 기술이 가장 강력한 성능으로 또 악명을 떨친 시기는 '스트리트 파이터 2 대시(스파 2 대시)'라 할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짜릿한 장군님의 전기 마사지
전기 마사지를 받으면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
일반적인 보스 캐릭터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될 경우 보스 버전에 비해 데미지나 판정을 너프하는 식의 조정이 이뤄지지만 황당하게도 사이코 크러셔 어택은 보스로 등장한 스파 2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된 스파 2 대시에서 오히려 더 강했던 것이 문제였다.
발동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발동 후의 빈틈은 더욱 줄어들었으며 상대가 맞았는지 막았는지를 불문하고 우선권이 베가 측에 있어서 잡기를 시도하거나 기상 심리전을 걸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조건을 따질 필요도 없이 상대 입장에서는 대처하기 힘든 개초딩 기술 그 자체였던 것이다.
비록 후방 입력을 유지하다가 전방 버튼과 함께 펀치를 입력해야하는 모으기 기술의 특징 때문에 일부 초심자는 '딱 얼만큼 모아야 하는지 감을 잡기 어렵고, 콤보에 넣기 힘들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는 억빠에 가깝다.

블랑카도 이쪽 방면에서는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돌진기
'롤링 어택'을 보유 중이지만, 장군님한테는 쨉도 안된다
뒤로 모으고 있는 선행 모션을 길게 유지한다고 해서 시스템적으로 딱히 손해를 보는 부분이 없고 굳이 콤보로만 사용할 필요도 없이 단독으로 질러줘도 그냥 대놓고 센 기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그냥 맞는 것보다 막는 게 가드 데미지 연타로 더 아프게 들어오기도 하다 보니, 보통 사이코 크러셔 어택의 악명을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스파 2 대시에서의 연출인 전기가 흐르는 듯한 모습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