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월 31일, 오후 5시 15분경 서울 성동구에서 한 12세 소년이 목을 메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국민학교 6학년에 불과했던 어린 아이가 자살을 택한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그 아이는 평소 만화를 좋아하고 그 속의 주인공을 흉내내길 즐기는 '만화광'이었다. 목을 메던 날 소년은 만화방에 갔다 와서는 "(만화에서처럼)나도 한 번 죽었다 살아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바로 국내 만화 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던 '정병섭군 자살사건'이다. 이 일은 게임을 학교폭력의 주원인으로 지목하게끔 한 '대전 중학생 자살사건'처럼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미디어로 성장하고 있던 만화는 정부, 언론, 저명인사들로부터 사회악이라고 비난 받게 됐다. TV 애니메이션이 일제히 종영됐고, 수많은 만화책이 '불량만화'로 규정돼 불태워졌다. 그리고 68년 만화 사전 검열제를 비롯한 탄압식 규제가 도입돼 만화가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제한됐다.
이어 수십 년 동안 만화는 온갖 청소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탄압'이 끝난 지금도 중장년층 국민들이 만화가 아이들에게 해롭고 공부를 방해하는 존재라고 여길 만큼 사회에 부정적인 인식을 남기게 됐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한국 출판만화는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국내 만화산업의 매출액은 2001년 7598억원에서 2009년 7390억 원으로 3% 가량 감소했다. 온라인 만화의 실적 상승은 물론, 어린이 및 학습만화 판매 호조까지 포함한 매출액임에도 줄어들었다. 산업 종사자수 또한 크게 줄었다. 만화출판업 종사자 역시 연평균 7.7%씩 줄어들고 있다.
△출판만화 종사자 수는 매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0콘텐츠산업통계)
위와 같은 국내 출판만화의 암울한 사건들은 최근 게임업계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예전 만화가 그랬듯이 지금 게임은 학교폭력과 범죄, 심지어 뇌기능 저하에 이르기까지 만악의 근원으로 몰리고 있다.
그로 인해 강력한 규제안이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 부처에서 일제히 청소년의 게임 이용 규제안을 내놓고 있다. 게임산업의 특성이나 성장 가능성은 아랑곳 않고 강제적 셧다운제, 선택적 셧다운제를 적용한 데 이어 쿨링오프제 도입으로 유례 없는 삼중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만화에 적용됐던 사전 검열제도 게임을 통해 부활했다. 교육과학부가 청소년이용가 게임을 사전심의하는 '건전게임물심의위원회' 발족을 검토하고 있는 것.
최초의 온라인게임 '바람의나라'는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이고, '열혈강호'는 만화 원작과 게임이 모두 인기를 누렸다. '레드블러드' 등 만화를 원작으로 개발되는 신작들도 있다. 이밖에도 여러모로 닮은 꼴인 게임과 만화는 이제 비슷한 시련을 겪는 처지까지 닮아가게 됐다.
그러나 두 산업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매출면에서 출판 만화는 내수와 수입에 편중되어 있고, 게임은 수출 중심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2011년 국내 콘텐츠 산업 수출액의 58%는 게임이 차지하고 있으며, 대형 게임사인 네오위즈게임즈의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은 54%다.
그리고 한국의 유망 게임 개발사들을 투자 및 인수하려는 외국 기업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즉, 규모 불문하고 게임사들이 국내 사업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유능한 인재와 기술들이 규제를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게 될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반면 청소년들은 일본만화, 미국만화를 재밌게 보지만 온라인게임은 국산을 선호한다. 금주 게임조선의 인기 온라인게임 Top10 중 8개가 국산이다. 몇몇 외산 명작 온라인게임이 자신 있게 국내에 진출했으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서비스 종료되는 사례로 남기도 했다.
만화에 대한 규제와 부정적인 인식이 만화 산업 종사자들을 떠나 보냈다. 게임 산업에서도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면, 우리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가 생활이자 경쟁력 있는 콘텐츠 산업인 게임이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이현 기자 talysa@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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