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게임의 범람 속에서 1인 개발의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1인 개발은 전통적이면서도 고집스러운 야금술에 가깝다. 자신이 직접 시간 들여 단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렇게 벼려진 작품은 아무래도 모나고 삐뚤빼뚤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 만난 개발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있어 대부분 약간의 불안함을 숨기지 못한다. 다만, 이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없다기 보다, 아직 내가 도달하지 못한 저 멀리, 더 좋은 재료를 가지고 더 나은 작품으로 더 두들기고 싶은 야장의 욕심에서 기인한다.

'어드벤처 오브 플라워', '플라워 던전'으로 이어지는 '플라워 시리즈'를 개발한 1인 인디 개발사 '오현진 대표'도 그런 쪽에 속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타이틀에 대한 장, 단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굳이 따지면 흐린 눈 하지 않고, 오히려 단점을 더 직시했다. 때문에 그가 말하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더 힘이 실린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 7월 1일 스팀 정식 출시까지 거침없이 달려온 신작 '플라워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모조게임즈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현진 대표. 예, 안녕하세요. 이제 1인 인디 개발사, 모조 게임즈 대표 오현진이라고 합니다.
전작 '어드벤처 오브 플라워'에 이어서 많은 분들이 응원에 힘입어 얼마 전 던전 탐험 로그라이트 신작 '플라워 던전'을 론칭했습니다. 스토브에 4월, 스팀에 7월에 출시한 상태입니다.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전작에 이어서 세계관을 공유하는 게임을 만들게 됐는데 사실 지금 후속작도 준비 중입니다.

Q. 플라워 던전에 대한 자세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현진 대표. 플라워던전은 로그라이트 요소를 겸한 던전 어드벤처 RPG 장르 게임으로 픽셀 아트가 특징입니다. 아마도 캐릭터가 눈에 띌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 캐릭터 일러스트에는 노블 AI를 사용했고, 배경이나 SD 캐릭터들은 직접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캐릭터 일러스트 다음으로는 게임의 진행 방식이나 전투가 굉장히 빠르고 직관적인 점이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는 전략적인 면은 조금 약할 수 있는데 영웅 성장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그런 형태로 시원시원하고, 스피디하게 진행되도록 구성했습니다.
또, 던전 탐험 도중 다양한 이벤트를 만나보실 수 있고, 일지 등으로 게임 내 설정 등을 알아볼 수 있게끔 탐험 요소, 수집 요소를 최대한 많이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영웅 성장의 재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성장 콘텐츠도 많이 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신마다 다른 식으로 성장하는 신앙이라든가, 영웅별 고유 능력에 따라 능력치를 특화 시킬 수 있는 재능이라든가 육성 디자인을 다채롭게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던전 탐험 장면
Q. 이런 로그라이트 게임은 클리어하든, 실패하든 반복적인 플레이를 유도하게 되잖아요. 리플레이 시 계승되는 부분은 어떤 요소가 있을까요?
오현진 대표. 게임 데이터가 계승되지는 않지만, 던전 진척도에 따라서 명성 경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경험치를 모아서 명성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단계에 따라 새로운 영웅이 해금되거나, 추가 능력치, 경험치 획득량 등 약간의 보너스를 받고 시작할 수 있게 해뒀습니다. 물약 등 지원 물품도 더 받고 시작할 수 있다거나 하는 혜택이 있습니다.
Q. 게임 진행 시 선택지를 요구하는 소소한 이벤트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게임을 관통하는 큰 줄기의 스토리가 있나요?
오현진 대표. 플레이어는 '솔바니아'라는 중세 판타지 국가의 남작이란 설정입니다. 남작령에 도적단이 출몰하고 그러니 소탕을 위해서 영웅들을 파견한다는 배경 스토리가 있습니다.
다만, 사실 메인 스토리가 엄청 깊게 들어가거나 쭉 진행되면서 큰 변화를 겪는 그런 식은 아닙니다. 던전 층마다 배경 설명을 해주거나, 누굴 쓰러 뜨려야 한다거나, 뭘 얻어와야 한다거나 그런 식의 길라잡이식 대사 형식 텍스트는 나옵니다만 사실 아직은 많이 미흡한 편입니다.

다양한 이벤트 선택지가 등장한다.
Q. 이런 류 게임을 처음 즐기는 분들을 위한 팁이 있을까요?
오현진 대표. 사실 게임 자체는 조작법도 단순하고, 그냥 맵 보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이벤트에서 선택지만 딱딱 짚어가며 하면 진행될 정도로 직관적이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 자체에 대한 팁은 없을 것 같고요.

메인 키 비주얼에도 등장하는 '레사'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리는 영웅으로는 '레사'라고 제일 첫 번째 있는 금발 머리 기사 친구가 있는데 최대 체력에 비례해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하는 고유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단순하게 최대 체력에만 투자하면 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가 플라워 던전에 대한 감을 잡기에 좋은 영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인 키 비주얼에도 등장하는 '레사'
Q. 텀블벅부터 데모 버전 출시, 여러 플랫폼에 론칭까지 다양한 단계를 거쳐오신 만큼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현진 대표. 처음 스토브 '슬기로운 데모 생활' 이벤트에 참여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이 "게임이 너무 쉽다"라는 얘기였습니다. 당시에는 맵도 일직선이었고, 환하게 다 밝혀져 있었고, 너무 심심하다. 전략이 없다. 이런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갈림길, 숨겨진 길도 만들고, 탐험 요소도 배치해 가면서 맵도 좀 꼬아봤고, 주위 지인들 권유로 캐릭터 주변 시야만 놔두고 조금 어둡게 하고 노선을 많이 틀었습니다. 그 결과 게임 볼륨도 크게 늘고, 결과적으로 조금 더 로그라이트 어드벤처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투 쪽 반응은 정말 반반이었는데요, 시원시원하고 빨리빨리 진행되어서 좋다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반대로 방치형 게임처럼 그냥 보고 있으면 끝난다- 전략이 없다- 너무 쉽다-이런 분위기로 갈렸던 것 같아요. 고민 끝에 그냥 조금 캐주얼한 전투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캐릭터별 부위 파괴 연출을 넣은 것도 피드백을 통해서 결정한 내용이었습니다.
Q. 면면을 들어보면 지금은 게임의 장점이 된 부분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당히 양질의 피드백이 많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전략이 없다-는 피드백은 유저분들이 어떤 것을 원하셨던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현진 대표. 아무래도 이 게임이 막 직접 움직이거나 컨트롤하는 요소가 없고, 또, 다키스트 던전처럼 턴 하나하나 신경 써가며 행동을 결정하고 그런 형태가 아니다 보니 전투 방식에서 오는 괴리감이 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던전 탐험류 장르가 대부분 난이도가 어려운 게임이 많은 편입니다. 반대로 이 게임은 전투가 캐주얼하다 보니 기대와 달랐던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종말' 난이도에서도 쉽게 쉽게 깨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플라워 던전의 전투 장면
Q. 게임 테스트를 거듭하며 아쉬웠던 부분이나 이건 그래도 잘 선택했다 싶은 부분이 있으실 것 같아요.
오현진 대표. 지금 생각해 보면 전투 부분을 더 코어하게 신경 썼으면 좋았겠다 싶은 부분, 또, 한 판 플레이 타임을 너무 길게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모드(가칭)도 생각하고 있긴 해요.
게임 내 이벤트도 약간 연계될 수 있는 부분을 넣어서 앞선 선택이 후속 이벤트에 서로 영향을 받게끔 준비했어도 괜찮았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1층에서 이벤트를 선택한 것에 따라서 10층, 20층에서 추가 이벤트가 발생해서 영향을 주는 식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반면에 그래도 물론 AI를 쓰긴 했지만 일단 픽셀 아트 그래픽으로 노선을 잡아서 꾸민 것은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던전 배경이나 이런 건 제가 직접 다 찍은 거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가챠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나 일지나 던전 이벤트 같은 수집 요소, 탐험 요소 배치도 장르에 맞게 잘 준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설정을 알 수 있는 일지 시스템

영웅 성장 콘텐츠 중 하나, 재능 시스템
Q. 개발력, 자금력, 인력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모조게임즈는 어떤 게임을 개발하게 될까요?
오현진 대표. 플라워 던전 세계관으로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스카이림 같은 계열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우중충한 캐릭터보다는 지금의 플라워 던전의 캐릭터 감성을 가져가서 꾸며 보고 싶어요.
던전 크롤링 장르도 더 파보고 싶은데 직접 칼질하고 마법을 쓰게끔 캐릭터를 조작할 수 있는 핵앤슬래시 방식으로, 대신, 탐험 요소가 강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단 꿈이 있습니다.

Q. 게이머로써는 원래 어떤 장르는 좋아하세요?
오현진 대표. 사실 문명 같은 전략 장르를 좋아합니다. 오픈월드 게임도 즐기고요. 오랜 시간 세계관에 푹 빠져서 플레이할 수 있는 장르나, 자유도 있는 RPG를 좋아합니다.
사실 플라워 던전 세계관에 다양한 국가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국가들로 문명 같은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란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Q. 이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미 출시된 게임인 만큼 앞으로 업데이트나 DLC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오현진 대표. 플라워 던전은 무료 업데이트와 DLC를 꾸준히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규 장비가 추가된다거나 신규 재능이 추가된다거나, 신규 영웅을 추가로 플레이하면서 새로운 스킬, 일러스트를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DLC 펜촉과 용권으로 신규 영웅 '레시아', '란주'
성장 콘텐츠 쪽으로도 더 다양한 선택지를 추가하려고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너무 쉽다는 피드백이 여전히 많아서,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해 쉬움 난이도는 놔두고 보통 이상 난이도에서 전체적으로 난이도를 적당히 높이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던전 층수가 많다 보니 한 판의 호흡이 긴 편이라 이를 더 짧게 잡아볼 수 있을까 해서 캐주얼 모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식은 비슷한데 맵을 줄이거나 층수를 줄이거나 하는 식으로 압축해서 즐길 수 있는 모드를 구상 중입니다. 자기 전에 부담 없이 한 판- 할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 개발 중입니다.
틈틈이 신작도 준비 중에 있고요.

DLC 펜촉과 용권으로 신규 영웅 '레시아', '란주'
Q. 아, 그렇죠. 신작 소식이 있었군요.
오현진 대표. 네, 플라워 던전 세계관을 공유하는 탄막 슈팅...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뱀파이어 서바이벌류 장르로 하나 준비 중입니다.
아직은 개발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전작을 이을 계획인 만큼 호평받은 부분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아쉬웠던 부분은 보완하고, 장르에 맞게 차별화를 꾀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개발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전작을 이을 계획인 만큼 호평받은 부분 장점은 최대한 살리고, 아쉬웠던 부분은 보완하고, 장르에 맞게 차별화를 꾀할 생각입니다.
Q. 1인 개발자로써 자체 세계관을 여러 작품, 여러 장르로 시리즈화하고 있다는 점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 자리를 인디 개발의 길을 걷고 계신 동료 개발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오현진 대표. 저는 개인적으로 저처럼 너무 늦기 전에 게임 회사, 혹은 개발사에서의 개발 경험을 해볼 수 있으시다면 백방으로 알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사실 아무리 혼자서, 소규모로 일하는 인디 개발자라 하더라도 회사에서의 실무 경험이란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혼자 독학만 하는 것은 시행착오도 있고, 사실 게임 개발은 경험을 무시할 수 없거든요.
한 번 정도는 꼭 회사 시스템 하에서의 경험을 좀 해보고, 개발하면서 팀원들, 다른 부서 사람들과 의견 조율하는 경험 그런 식으로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Q.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계실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 편하게 부탁드립니다.
오현진 대표. 스팀 심사 통과하고, 출시 준비하면서 요 몇 달 간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앞으로 계속 게임 개발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출시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는데 응원도 많이 받았고, 펀딩에도 많이 참여해 주시고, 이렇게 게임을 출시할 수 있게 된 점만 해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게임에 큰 금액 거리낌 없이 후원해 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게임 내 조각상이나 영웅으로 구현하고자 했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1인 개발은 사실 유저분들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초심 잃지 않고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게임, 더 좋은 게임, 재미있는 게임 만들고 싶습니다. '플라워 던전' 업데이트도 꾸준히 준비하고, 신작으로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1인 개발의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그것도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몇 년을 지내다 보면 누구라도 지치기 마련, 어쩌면 어느 순간 누군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겠다. 오현진 대표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조금 늦게 시작했고, 조금 급하게 뛰어들었노라고.
AI를 사용했다고 게임 행사 출품을 포기해야 한 적도 있었고, 의도와 전혀 다른 피드백에 멘탈이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적지 않은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 발자국씩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게임은 언제나 그렇듯 우릴 매혹시켰던 해답이 있는 분야이며,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릴 흥분시키는 분야다. 믿음의 가장 편리한 점은 스스로가 흔들리지 않는 한 그 자체로써 완벽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므로. 그는, 묵묵히 자신의 아이디어를 단조하고, 담금질했으며 이로써 강철같은 무언가를 쥐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박성일 기자 zephy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