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파이어윅 네트워크에서 개발하고 가레나 코리아에서 퍼블리싱을 준비하고 있는 서브컬처 신작 게임 '신월동행'이 CBT를 시작했다.
'초현상 탐사 보고서'라는 부제를 들고나온 이 게임은 지극히 평범한 현대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존재 '초실체'와 사건 '초현상'을 조사하고 통제하는 비밀조직 '초현상 관리국'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물들과 세력이 때로는 힘을 합치고 때로는 대립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작품이다.
기본적인 틀은 동시적 턴 방식을 취하며 캐릭터의 배치와 스킬의 순서가 매우 중요하여 꽤나 고전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진 '전략 RPG'다.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게임이 평범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신월동행의 진짜 강점은 몰입도 높은 서사와 훌륭한 연출을 가미하여 세련되면서도 독특한 맛을 구현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가 어디요?
Aㅏ 전화실이오, 안심하세요
필자가 모든 서브컬처 게임에 대하여 항상 가지고 있는 지론이 있다면 '프롤로그' 그리고 이어지는 '첫번째 챕터'에서 속된 말로 '얼마나 뽕이 차오르는 연출로 게이머들의 머리통을 쪼개고 그들을 세뇌할 수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시작하자마자 '첫 수업에서 유서를 썼다'는 대사가 첫줄에서 튀어나오거나 평범하게(?) '여긴 어디, 난 누구'를 시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연기가 되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주인공 캐릭터 '팀장'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런 극단적인 설정과 연출을 시작부터 때려박으니 오히려 '얘는 뭔데 지금 이런 상태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거지?'와 같은 호기심이 샘솟았고, 기억을 잃기 전 팀원이었다는 '오렌지 블레이드' 진영의 캐릭터들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지극정성으로 팀장을 지키려는 모습은 '또 기억상실 패턴이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체 팀장의 과거가 어떠했기에 이렇게까지 팀의 결속력이 대단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절로 품게 만들었다.

'존재를 되찾는다'는 해답을 찾기 위해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할 당위성을 제공하는 셈
그렇게 프롤로그가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팀장의 기억과 존재 그리고 팀을 재건하는 이야기가 시작되자 게임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달라졌다.
원래 소속되어 있었던 조직의 의료나 장비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고 매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걱정스러운 나날을 보내지만 일상을 춤추는 도시 사람들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는 초실체와 초현상에 맞서싸우는 위험천만한 일을 주저없이 행하고, 그 과정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밝고 건강한 이야기는 오히려 미스터리, 오컬트, 호러의 느낌을 상당히 옅게 만들었다.
오히려 고난을 넘어 밝은 내일로 향하는 '신월동행'의 이야기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적인 소년만화의 플롯 그 자체였고 두번째 챕터를 마무리하는 파트 '초승달이 뜨는 날' 스토리는 확실하게 머리통을 쪼개는 데 성공했다.
작정하고 팀원들을 기만할 수도 있었던 팀장이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며 도움을 요청할 때
적절하게 브금이 바뀌는 연출도 확실히 히트였다
물론, 다루고 있는 소재로 인해 작정하고 깊고 어둡고 무섭게 묘사하려는 부분은 소름 끼치게 무섭게 느껴졌고 이것이 수준 높은 더빙과 시너지를 일으켜서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번역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스토리 전체의 흐름을 끊어먹거나 분위기를 해칠만한 수준의 심각한 오역은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유명사를 남발하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난무함에도 맥락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결코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비교적 이해가 잘 되는 시나리오,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한 일상의 모습을 통해 비일상의 기묘함을 극대화하는 연출 그리고 공포와 웃음, 감동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적절한 비중 배분은 게임성을 떼어놓고 생각하더라도 충분히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멘트만 보면 평범하게 동료들이 걱정할거라는 내용인데
표정 변화는 암만 봐도 '처신 잘하라고' 공포스럽게 협박하는 듯 하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강점은 게임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탐색 파트에서는 초실체와 초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대화 및 증거물 확보와 관련하여 플레이어가 얼마나 센스 있게 단서를 찾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진행도와 보상 수집도를 표기하고 있다.
이는 스토리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더라도 수집 요소를 완벽하게 채우는 것이 기본인 하드 게이머들에게 적절한 자극이 되어주고 있으며, 요원(캐릭터)마다 주어진 탐색 특기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여 전투를 회피하거나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는 등의 잔재미가 쏠쏠하다.

보초병과 대화하며 심리전을 걸어 암호를 뜯어내는 모습
파란 전구 모양의 '사고' 능력치가 기준치보다 낮다면 실패할 수도 있다

일부 도시 사건의 경우 순수하게 추리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초자연 7인조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다면 정답을 대놓고 알 수 있다
전투 방면에서도 적의 패턴이나 기믹을 대놓고 알려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행동 양식, 시선 처리를 통해 플레이어가 직접 추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턴을 쓰는 것에 초읽기와 같은 시간 제한이 따로 걸려 있지 않고 아군이나 적의 상태창을 길게 눌러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면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계형 적이 자폭을 시도한다면 대놓고 동체가 빨갛게 변하는 등 매우 고전적이지만 직관성 높은 연출을 제공하고 있어 창작물의 클리세를 꿰고 다니는 게이머라면 되려 쉽게 느껴질 만한 부분도 존재한다.

추리력과 관찰력이 좋다면 단서 탐색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이점을 챙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부분은 바로 연출이다. 제작진은 2D 애니메이션 특화 툴인 '스파인'을 사용하고 있어 게임의 요구 사양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음에도 충분히 역동적이고 강렬한 기술 연출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6성 요원과 같은 고등급 캐릭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서 적당히 실전투입이 가능한 5성과 4성 요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물론 차등화는 존재한다. 등급이 높은 캐릭터는 디테일하게 컷을 배분하는 횡스크롤 표현과 카메라워크로 인해 다른 캐릭터보다 화려한 연출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성능을 떠나서 눈으로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명함을 챙기는 것이 결코 이상한 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더욱 멋지고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 및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제작진의 멘트다. 이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앞으로 출시될 신월동행의 새로운 요원 캐릭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증수표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필살기 연출에서 묻어나오는
저 요오오오오망함을 보라
모든 서브컬처 게임이 으레 그렇긴 하지만, CBT를 통해 만나본 '신월동행'은 앞에서 서술한 다양한 장점이 부각되는 작품이지만, 여전히 소재의 특별함으로 인해 취향을 크게 타는 작품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월동행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제작사 '파이어윅 네트워크'는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내공을 가진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첫 작품으로 이 정도의 게임을 만들어낸 것인지 감탄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였다.
이미 중국에서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작품성과 흥행력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신월동행이 보여준 '어떻게 하면 게이머들과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그에 대해 제시한 적절한 해답은 아마 추후 한국 정식 서비스에서도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