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개발. 해본 적은 없어도 이름만 들어도 쉽지 않은 일임이 상상이 된다. 다양한 마켓 플랫폼을 통해 수백, 수천 가지의 게임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자신만의 기준을 정하고, 하나하나 결과물을 빚어낸다는 것부터 이미 누군가는 선뜻 시작도 하기 힘든 도전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십수 년간 그 힘든 도전을 해온 이가 있다.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얼굴을 익힌 인연으로 언젠가 꼭 소개하고 싶었던 인물이기도. 서로의 사정에 의해 차일피일 밀리던 인터뷰가 가까스로 성사됐다.
스팀을 통해 감성적인 플랫포머 '위체(Wicce)', '네바에(Nevaeh)'를 선보이고 지금은 추리 어드벤처 신작 '커넥티드 클루(Connected Clue)'를 준비 중인 1인 개발사 '알페라츠'의 '성화정' 대표다.
기획도, 스토리도, 개발도, 사운드 작곡에 번역까지 직접 해낸다는 그는 정작 대학교 때는 만화 창작 전공이었다고. 같은 전공이었던 친구와 함께 여러 진로를 찾아보던 중 게임 개발에 입문하게 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친구에게 배워가며 시작한 게임 개발이 어느덧 2025년까지 이어져 몇 개의 작품을 론칭하고도 여전히 활발히 차기작을 준비하는 중견 개발자가 됐다.
A
'커넥티드 클루'를 개발하고 있는 성화정입니다.
대학교 때는 만화 창작과 전공. 친구 따라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졸업하면 연락이 잘 안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남아서 개발하게 됐습니다. 첫 시작은 게임메이커로 만들다가 재작년부터 모바일게임 병행 개발에 도전할 때부터 유니티를 배워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A
네, 처음에는 친구와 '웹툰' 쪽은 쉽지 않으니 '게임 삽화' 쪽을 생각하게 됐고, 우리의 그림이 게임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직접 개발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게임메이커로 개발을 시작했고, 지금은 유니티를 배워서 도전해 보고 있습니다.
Q
이렇게 오랜 시간, 모든 것을 혼자 다 작업하시는 것은 쉽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A
사실 외주도 생각해 봤지만 제가 성격이 소심해서 제가 원하는 기간 내에 나오지 않거나, 원하는 퀄리티로 나와주지 않았을 때 여러 번 말씀드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될 때까지 배워서 내가 직접 해보자-라고 생각하게 됐고, 지금은 생각한 대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Q
회사명 '알페라츠'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A
알페라츠는 안드로메다 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 알파에 해당하는 별이며, 매운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공전하는 쌍성입니다. 이쪽 방면으로 잘 아는 친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Q
'알페라츠'의 개발 이력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전 사실 오랫동안 개인 활동을 했고, 사업체를 낸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전 작 '위체'는 마녀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듣다가 이 느낌을 살려서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마녀' 하면 배척 당하는 이미지가 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 역할도 했었다고도 하죠. 그걸 모티브로 개발하게 됐습니다. 동화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네바에' 역시 노래를 듣다가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알렌 워커'의 'Faded'란 곡이었는데 빛, 그리고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만들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에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퍼즐이 있죠? 그런 것들을 참고해서 만들게 됐습니다.
Q
올해 준비 중인 작품 '커넥티드 클루'는 어떤 게임인가요?
A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추리 게임은 대체로 '비주얼노벨' 형식의 게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해외에는 '어드벤처' 장르로 개발된 케이스도 많거든요.
개인적으로 RPG를 좋아하기도 좋아하기도 해서 함께 접목시켜서 개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도전하게 됐습니다.
CFK의 협업으로 스팀 상점 페이지에 입점해 있다.
Q
다양한 장르를 개발해왔는데 이번에는 특히, 다른 것 같습니다. 추리 게임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A
개인적으로 JRPG처럼 스토리 비중이 높은 게임을 했을 때 플레이 경험이 좋았습니다.
추리 게임은 결과적으로 텍스트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 스토리를 어필하기에 조금 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추리 기반이면 이야기의 구성력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퍼즐에의 자연스러운 몰입이나 반전 요소 등을 혼자서 구성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A
맞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개발하다 보니 피드백을 받을 곳이 없어서 시나리오 부분은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Q
추리 게임은 아무래도 범인의 등장, 또 반전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생각보다 분위기가 무겁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커넥티드 클루'의 게임 분위기는 어떨까요?
A
사실 직접 시나리오 구성을 하고 만들다 보니 이것이 무거운 분위기인지 어떤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다만, 추리 게임이다 보니 도트 그래픽이라고 해서 너무 간략화해버리면 몰입감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실감을 주려고 노력한 부분은 있습니다.
Q
몇몇 대박 사례가 있긴 하지만 사실 1인 인디 게임 개발만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A
실제로도 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 등으로 수익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1인 개발이라 집에서 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 외에 따로 큰 지출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어쨌든 게임 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전작이 모두 스팀을 통해 출시됐습니다. '알페라츠'의 작품을 모바일로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A
커넥티드 클루는 모바일 버전도 생각 중에 있습니다.
Q
오랜 시간 1인 개발을 해온 개발자이자 게이머로서 기억에 남는 게임이 있을까요?
A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팔콤'의 '영웅전설' 시리즈입니다. 제일 처음 접한 게임도 '이스' 시리즈였고요, 최근에 인상 깊었던 게임은 '페이퍼 마리오'란 게임인데 NPC들의 활용, 스토리 연출, 사운드 활용 등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영웅전설 같은 게임은 특히, BGM을 들으면 "아, 이 장면!"하고 스토리와 장면이 확- 와닿는 그런 게 있는데 그런 느낌을 좋아합니다.
(이후 영웅전설 이야기를 나누느라 인터뷰가 잠시 멈췄다.)
Q
담당하고 소화하는 분야를 봐서는 PM으로서의 강점도 엿보입니다. 지금처럼 1인 개발이 아니라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에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A
아마도 RPG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긴 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영웅전설'과도 같은 방식으로 서사를 담아내고, '시간'을 활용한 재미있는 기믹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지금도 이를 구현하기 위해 3D도 더 배우고, 작곡도 더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케일이 큰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는 편입니다.
Q
그렇다면 '알페라츠'가 더 커진다면, 대표님은 자신의 회사에서 무슨 일을 주로 전담하고 있을까요?
A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성격상 누군가에게 뭔가 딱 부탁하기 어려워하는 편이고, 아무래도 혼자 개발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거든요. 또, 고집도 있어서...(웃음) 아마 지금 이후에도 혼자 많은 것을 하려할 것 같아요.
단지 게임을 개발하면서 이 기획이 다른 사람에게도 먹히나?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확인받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그런 쪽의 도움은 필요로 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Q
혹시 제일 처음 만든 게임을 물어봐도 될까요?
A
연필 찍기 게임입니다. 하루 만에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A
맞습니다. 타이밍 맞춰 잘 찍고, 많이 찍으면 스코어 점수가 올라가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Q
'커넥티드 클루'는 아예 퍼즐이 메인이고, 이전 작 '위체'나 '네바에'도 플랫포머임에도 퍼즐 요소가 돋보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퍼즐 기믹 요소를 좋아하시는 거라고 생각되는 데요, 개발작 중에 비주얼노벨 쪽이 없는 것도 아무래도 그런 영향일까요?
A
특정 장르, 특히, 플랫포머 같은 장르에 퍼즐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양념 같은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로 인해 성취감, 몰입감도 줄 수 있고... 사실 비주얼노벨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인상 깊게 해본 인디 게임 중에 '메리 발렌타인'이라고 있습니다. '비주얼노벨'이면서 중간중간 미니게임도 있고, 또, 여러 재미있는 밈도 활용한 점이 눈에 띄었어요.
만약에 제가 '비주얼노벨'을 만든다면 그런 복합적인 느낌의 게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퍼즐을 선보였던 전작, '네바에'
단서를 모아 퍼즐을 풀고, 추리를 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Q
그렇다면 '커넥티드 클루'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A
5~7월 사이에 후원자분들을 대상으로 얼리 액세스 버전을 공개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완성본은 가을쯤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이미 시간을 많이 넘긴 상황이라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Q
얼리 액세스 버전의 플레이 타임은 어느 정도 될까요?
A
서브 퀘스트를 포함해서 3~4시간쯤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풀 버전은 10시간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1인 개발에 스토리로 이끌어 나가는 추리 게임이 10시간 이상이라고요?
A
아무리 길어도 아마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즐길 거리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게임을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는 만큼 어떻게든 충족시켜 드리고 싶은 생각입니다.
게임 곳곳에 여러 분야를 접목시키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A
성격도 그렇고...(웃음) 어쨌든 큰마음 먹고 후원을 해주신 분들이 있는데 대충해서 내기에는 죄송스럽단 생각이 있습니다. 또, 게임은 결국 한번 만들어서 게임을 만들어 내어 놓으면 계속 유입이 되는 분야인 만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이쁘게 만들고,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A
일단 당장은 5월 플레이엑스포에 출품할 계획입니다.
그 이후로는 아마도 계속 게임을 만들겠죠?
부족한 부분 공부하면서... 개발도 당연하고, 지금은 작곡, 스토리 연출 등을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해외 쪽 전시를 위해 언어 쪽도 배우고 싶다. 내 게임은 내가 직접 소개할 수 있을 정도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Q
'커넥티드 클루'가 출시되기 전이지만 다음 작품 아이디어에 대해서 살짝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시간'입니다. 짧게 즐길 수 있는 장르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Q
'커넥티드 클루'도, 그 이후의 신작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혼자 만들다 보니 주변에 멋진 게임들을 많이 보며 비교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선에서의 주변 친구들에게 "어떤 거 같아?"라고 물어보면 아무래도 당연히 괜찮다고 해주거든요. 그런데 제가 자존감이 낮아서인지 그걸 믿지 못하겠어요. (웃음)
그래서 항상 의심하고, 또 걱정하면서 게임을 개발하고 또 내놓게 됩니다. 다만, 언젠가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고 게임 개발을 하고 있어요. 믿고 후원해 주시는 분들도, 오늘 이렇게 연락 주신 것도 다 과분한 응원과 믿음을 보여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서 계속 게임을 개발해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든 게임을 재미있게 즐겨주신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을 소심하다-고 언급하고 자신 없다는 말을 되뇌었지만 그녀는 이미 적극적이고 강단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줬다. 손발이 다 떨린다고 약한 척해도 험상궂은 아저씨 두 명과 게임 이야기를 신나게 할 수 있다는 것부터 이미 남다르다.
게임을 한 사이클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현업의 개발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녀는 벌써 여러 타이틀을 만들고, 그것도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우직하게 해오고 있다. 그러고도 아이디어를 짜고, 새롭게 기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제는 단순 1인 개발의 영역을 떠나 펀딩이나 오프라인 행사 출품 등으로 작품 알리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계속 개발하겠다고, 계속 배우고 싶다고- 어쩌면 당연한 얘기임에도 모든 것을 꾸준히 이뤄온 이의 말이어서인지 어떠한 마법의 주문처럼 들렸다. 성화정 대표가 가진 신비로운 힘의 정체는 그동안의 작품 속에서, 또 앞으로 선보일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