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라!'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중국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한 20대 여성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생존'이었다. 그녀는 물론 그녀의 회사에 있어 한국은 낮선 땅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회사가 '미지의 땅' 한국시장 개척을 위해 직원을 파견시키기는 그 때가 처음인 데다가, 그녀 역시 뿌리는 한국이지만 부모부터 자신까지 모두 중국에서 나고 자라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가 처음으로 마주한 모국의 모습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언어도 문화도 모두 낯선 땅이었던 것.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능숙한 한국어 구사는 물론 비유법까지 자유자재다. 게다가 최신 헤어트렌드인 벼머리까지 섭렵(?)하는 등 그야말로 '한국사람이 다 됐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지난 몇 년 사이에 평직원 신분에서 지사장 자리까지 고속승진했다.
이는 바로 '흙 속의 진주' 크로스파이어를 중국시장에 진출시킨 텐센트코리아의 켈리스 박(33) 대표의 이야기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했다. 아무리 30대 초반의 젊은 대표라고 해도 중국 최대 게임기업인 텐센트의 첫 해외지사의 대표인만큼 근엄한 이미지가 강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의 눈은 맞은편에 서 있던 홍보팀 직원의 눈빛을 살피고 있었다. 홍보팀이 미처 소개를 하기도 전에 블루셔츠를 입은 귀여운 외모의 여성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기자님, 어서오세요. 먼 길까지 찾아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텐센트코리아의 켈리스입니다."
'크로스파이어'(2008), '던전앤파이터'(2009), '아바'(2010) 등이 중국에서 연이은 홈런포를 날릴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은 숨은 주역과의 첫 대면이었다.

27일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은 있어도 기자를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라며 '(인터뷰는)어떻게 하면 되는거냐'고 상기된 모습을 보였다. 대표라는 다소 거창한 이미지보다는 때 묻지 않은 소녀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그러나 인터뷰가 무르익을 무렵에는 텐센트의 국내 연락사무소를 법인으로 승격시킨 그녀의 강단과 리더십을 읽을 수 있었다. 또 텐센트코리아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감추기보다 오히려 내어 보였다. 박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신뢰받는 회사'가 되겠다는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 1인기업 위한 공동사무실서 시작…
"중국 본사의 힘을 빌릴 생각도, 게임 붐업을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생각도 없습니다."
박 대표는 강경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겉포장에 치중하기보다는 실속 있게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목표물에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
텐센트코리아의 첫 타이틀인 웹게임 '춘추전국시대'의 서비스에 앞서 진정성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고 운을 뗀 박 대표는 "중국 게임업체를 바라보는 한국시장의 시선과 웹게임에 대한 이미지 또한 부정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3~6개월간 짧게 치고 빠질 생각이었다면 애초부터 운영팀인 '아스텔리스'를 꾸리지도 않았고 많은 부분을 외주업체에 넘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업데이트가 서비스 시작 2달 만에 진행되는 까닭에 대해서는 유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상대적으로 늦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중국에서 1년 반 전에 상용화된 게임인 만큼 콘텐츠는 많이 축적돼 있다"며 "하지만 유저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듣고, 그 의견들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업데이트를 늦추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원하는 업데이트가 아닌 실제 유저들이 원하는 컨텐츠 추가 시기, 게임 내 밸런스 유지 등을 반영하기 위해 욕심을 냈다"며 "다른 웹게임에서 상처받은 유저들이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위로받기 원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 대표는 유저들의 의견을 살펴보기 위해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매일 '춘추천국시대'의 유저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진정성을 갖고 다가간다면, 유저들도 텐센트코리아가 추구하는 바를 믿어 주리라 확신한다는 것.
"막대한 자본 투입을 통한 유저몰이와 치고 빠지기식 운영은 텐센트의 기업문화와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한 박 대표는 "크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거대 자본을 투자했다가 철수한 회사들을 여럿 봐왔다"면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쉬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텐센트코리아는 모 통신사 광고처럼 두 발로 뛸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의 말처럼 텐센트코리아는 발로 뛰어 세워진 회사다.
지난해 2월 텐센트의 첫 해외지사로 설립된 텐센트코리아의 모태는 연락사무소로 문을 연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입사 2년차였던 박 대표는 한국시장의 동향 파악을 위해 혈혈단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회사에서 저에게 주문한 미션은 간단명료했어요, '살아남으라!' 한국시장에 대해 무지했고, 뭘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상태였죠. 도대체 한국시장에 어떤 비밀이 있기에 대작 온라인게임들이 개발되는지 가장 궁금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텐센트코리아의 첫발은 미약했다. 처음 얼마간은 사무실을 얻지 못해 호텔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업무를 처리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구한 사무실은 1인 기업을 위한 '쉐어오피스'였다. 노트북과 유선 전화기 하나만 놓을 수 있는 공동사무실이었던 것. 이는 본사의 후광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박 대표의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박 대표는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어떤 사람이 내게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뜻은 물론 말조차 알아듣지 못할 만큼 한국어가 서툴렀다"며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바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 中게임계 울린 '미다스의 손'…손 대는 게임마다 '대박'
그러나 그녀가 일궈 놓은 성과를 살펴보면 이 같은 이야기는 '엄살'로 들린다.
'크로스파이어', '던전앤파이터' 등 지난해 중국 온라인게임 매출 순위 1, 2위를 기록한 국내 타이틀 모두 박 대표의 손을 거쳐 갔다.
특히 '크로스파이어'는 현지 온라인게임 사상 최대 기록인 동시접속자 수 300만명을 기록, 국민게임으로 자리 잡았으며 텐센트는 물론 국내 퍼블리셔인 네오위즈게임즈, 개발사 스마일게이트의 고속성장 촉매제로 작용했다.
게다가 당시 '크로스파이어'는 모국인 한국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던 터라 이를 선택했던 박 대표의 의중에 더욱 눈길이 모아진다. 과연 '크로스파이어'의 어떤 매력이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게임을 아웃소싱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은 바로 '재미'예요. 해당 국가에서의 흥행이나 대작 여부는 중요하지 않죠."

박 대표는 FPS장르가 중국에서의 시장 잠재력이 클 것이라고 일찍이 예감했다고 한다. 박 대표가 대학교 재학시절, PC방을 찾은 남성들의 절반이 패키지 게임으로 출시된 FPS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즐기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고. 이때의 기억을 갖고 있는 유저들만 끌어 모아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까지는 중국 유저들의 눈높이에 맞는 게임이 출시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크로스파이어'가 현지에서 서비스되기까지 약 10여차례의 비공개테스트를 거쳤다"며 "FPS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손 맛, 타격감 등 세밀한 부분까지 중국 유저들에 맞춘 현지화 작업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어 "게임을 성공적으로 런칭하기 위해서는 타이밍과 운도 크게 작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퍼블리셔와 개발사간의 협력"이라며 "네오위즈게임즈와 스마일게이트의 서포트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유저의, 유저를 위한…진정성으로 승부"
한국시장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박 대표에게 5년, 10년 후의 텐센트코리아 미래 모습에 대해 물었다.
"음…. 작은 꿈을 꾼다면, 우선 그때까지 살아남아야겠죠. 큰 꿈은 신뢰와 인정을 동시에 받는 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우리 게임을 사랑해주는 유저가 단 10명만 있어도 끝까지 서비스하고 싶어요. 유저의, 유저를 위한, 유저에 의한 게임을 만드는 게 바로 텐센트코리아가 꿈꾸는 미래입니다."
모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녀의 힘찬 날갯짓은 이제 막 시작됐다.
[류세나 기자 cream53@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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