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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창간14th]게임의 양어머니, 'PC방의 세월' …상처뿐인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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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게임산업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90년대 후반 서울과 수도권 지역 골방 지하실에서 탄생한 PC방이다. 국내 게임산업은 크게 PC방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 ‘온라인게임 종주국’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 것도, 내수시장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한 PC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뻗어나간 e스포츠문화의 토대를 마련한 것 역시 PC방이다.

◆ 1994년 대한민국 1호 PC방 등장

국내 최초의 PC방이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신문자료를 통해 1994년 4월 서울 서초동에 등장한 ‘BNC’로 추측해볼 수 있다.

당시 PC방은 ‘네트워크카페’ 또는 ‘모뎀카페’로 불렸다. 현재의 명칭은 1995년 ‘인터넷카페’를 거치고 난후에 얻게 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인터넷카페를 찾은 대다수의 이용자들은 온라인게임이 아닌 하이텔과 천리안 등 PC통신을 활용해 인터넷 채팅을 즐기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인터넷카페는 1995년 신촌과 홍대 등 대학가 일대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상황에서 실업자들의 생업을 책임지기도 했다. 당시 창업 아이템으로 소자본에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는 PC방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 1998년, 스타크래프트 운명적인 만남

국내 PC방 시장의 부흥기는 하나의 게임에서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 게임시장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한 1998년부터다.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이용자들과 실시간대전을 펼칠 수 있게 되면서 PC방 붐을 조성한다. 스타크래프트 이전 PC게임들은 대부분 근거리통신망(LAN)을 활용한 제한된 멀티플레이만을 지원했었다.

쾌적한 네트워크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고자 PC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또 팀 단위 대전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란 인식도 심어줬다.

이와 함께 스타크래프트가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과 거리가 멀어보였던 중장년층의 발길 역시 끌어 모았다.

특히 일부 PC방의 경우 홍보에 목적을 둔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회가 특정지역에서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오늘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e스포츠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 1999년, 본격적인 규제의 시작

단기간에 이룩한 성과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PC방 역시 예외일순 없었다. 특히 주요 고객층이 청소년인 탓에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과 맞물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의 대표적 탈선장소라는 오명까지 썼다.

본격적인 규제의 시작은 1999년 5월부터다. 당시 청소년들의 탈선을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오후 10시 이후에는 청소년들의 PC방 출입이 금지되기 시작했다.

또 2003년부터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개정안에 따라 PC방내에서는 별도로 환풍기를 갖춘 밀폐된 공간에서만 흡연을 할 수 있게 됐다.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으로 나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 역시 청소년이 이용하는 시설이란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PC방이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적잖은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2006년에는 그간 자유업이었던 PC방이 등록제로 전화됐다. 사행성 게임을 앞세운 성인PC방이 등장하면서 이를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았던 ‘바다이야기’사건이 터지면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으로 잡혀가는 시기였다.

PC방업계 전국 단체인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와 컴퓨터게임장의 대표단체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도 ‘사행성PC 도박장 척결 궐기대회’를 공동 개최하며 정부와 뜻을 함께하기도 했다.  

◆ PC방과 함께 발전한 국내게임산업

PC방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말도 생겨났다. 다수의 이용자들이 즐긴다는 뜻이 담긴 ‘국민게임’이란 수식어다. 전국 약 1만여개의 PC방에서 수집된 정보는 국내 게임시장의 트렌드와 동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국민게임이란 수식어가 붙은 게임도 많았다. 국민게임이란 수식어를 처음 달았던 씨씨알의 ‘포트리스’를 비롯해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와우’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그리고 ‘리그오브레전드(LOL)’ 등 인기타이틀의 탄생 역시 PC방이었기에 가능했다. 

다수의 해외게임사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할 때, 특유의 ‘PC방 문화’를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LOL 개발사로 유명한 라이엇게임즈의 브랜든 백 대표는 대학시절 LA 한인타운에 있는 PC방에서 매일 게임을 했다며 한국의 PC방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게임이 대한민국 대표 디지털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옆에서 묵묵하게 도움을 준 것 또한 PC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C방은 아날로그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규제받아 마땅한 범죄의 온상지라는 사회적 인식을 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게임 또는 PC방 탓으로 돌리며 본질을 망각한 해결방식도 한몫 거들었다.

비록 상처투성이에 인정받기 힘든 영광이지만 전국 1만여개의 PC방은 오늘도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발을 맞추고 있다.

[이민재 기자 sto@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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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v130_8941 검마르 2013-09-10 20:21:08

PC방은 초반에 뛰었던 분들이 이익을 많이 얻었걸로 알고 있습니다..창업하고 3개월정도면 투자 자금 획수하고 흑자전환 되었다고 하니..지금 보면 초반에 뛰어던분들은 열에 여덟은 PC방 사업접고 다른 사업을 하더군요..현재 PC방은 매력이 많이 떨어진 사업이죠..

nlv186_3456 Naroric 2013-09-10 22:03:00

호오....1994년부터 시작이였네.. 그리구 역시 스타1의 역할이 컸었네요

nlv203_0103 맞좋은 2013-09-12 11:44:49

고등학생때 PC방 처음으로 갔었지...ㅋ 그땐 정말 이상한 창고같은곳에 컴퓨터만 잔뜩 있었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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