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증오의 억류지에 갇혀 수도 없이 추적자들에게 사냥당하며 아이템을 뱉는 창고 신세로 전락한 시절도 있었지만, 성자의 몸을 얻어 성역에 강림한 대악마는 순진한 양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혼란에 몰아넣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형제들에 비해 덜 강인할지는 모르지만 다른 이들을 속이고 음모를 꾸미며 실행하는 능력만큼은 가장 위험한 대악마의 맏이 '메피스토'와의 결착을 다루는 '디아블로 4'의 새 확장팩 '디아블로 4: 증오의 군주'가 출시를 약 일주일 앞두고 있다.
디아블로 시리즈에서 한 넘버링 작품에 2개 이상의 확장팩이 나오는 것도 처음이지만 본편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메피스토와 릴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서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례적인 상황인데 과연 이번 '증오의 군주'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 본 리뷰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한 '디아블로 4: 증오의 군주' 얼리 리뷰 빌드와 사전에 공개된 공식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으며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달라진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역은 혼란스럽고
해치워야 할 악마는 산더미다
'증오의 군주'의 중심 서사는 사실 직전 확장팩인 '증오의 그릇'과 결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메피스토를 추적하여 처단하려는 방랑자 일행의 여정을 다루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방문하게 되는 지역이 아마존의 고향인 스코보스고 그 여정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만 달라지는 정도다.
다만 메피스토는 성자 '아카라트'의 육신을 취하여 성역을 거닐고 있기에 심각성은 더욱 올라갔고 전반적인 서사도 상당히 무거워졌다.
메피스토를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지만 메피스토 또한 당장은 영혼석에 갇혀 있어 영향력이 제한되는 탓에 어영부영 영혼석을 가진 네이렐을 쫓아갈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본작에서는 메피스토가 이미 성자의 모습으로 기적을 행하며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고 있어도 섣불리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4월 4일에 공식 채널을 통해 선행 공개된 시네마틱인 '여왕과 성자'
증오의 군주에서도 이 사건을 중심으로 초반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 때문인지 증오의 군주는 방랑자의 여정에 관여한 많은 인물들을 직간접적으로 희생시켜버리는 참혹한 전개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개는 '디아블로 시리즈'에 더 없이 잘 맞는 옷이라는 느낌을 줬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러한 상황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겨를도 없이 당장 악마를 사냥하러 나가야하는 것이 '핵 앤 슬래시'니 말이다.
또한 전개의 속도가 꽤나 빠르고 호쾌하다. 메피스토가 부활하는 데에만 확장팩 하나의 볼륨을 통째로 사용하고 사람을 피폐하게 몰아가던 증오의 그릇과 비교해봤을 때 본작은 시리즈 그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근본으로 돌아감으로써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악마의 형상을 취하고 본인을 강화하는 악마술사의 궁극기 중 하나 '탈태'신규 직업은 성기사와 악마술사다. 성기사는 이미 얼리 억세스 형태로 라이브 서버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얼리 리뷰에서는 악마술사를 플레이해봤다.
전반적인 느낌은 같은 시리즈인 디아블로 2의 '악마술사'와도 크게 다르며 오히려 블리자드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기믹과 설정을 집대성한 것에 가까웠다.
사실, 사전 플레이 가능했던 4편의 성기사만 해도 2편의 '성기사'보다는 3편의 '성전사'에 가까운 기술 체계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악마술사 또한 많은 부분이 다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예상한 범주에서 상당히 많이 벗었나 있었다.
4편 악마술사의 행적을 다루는 공식 코믹스 '길 잃은 자와 저주받은 자'의 한 장면그래도 그 방향성이 결코 어긋나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가령 악마를 소환하고 부리는 군단, 악마학 계통의 기술들은 악마들을 하수인의 개념으로 영구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잠깐 꺼내서 사용하고 터뜨려버리는 일종의 소모품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디아블로 세계관 내에서 결코 악마를 사역하는 비저레이 계통의 술법이 결코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수단으로 최소한으로 꺼내 쓴다는 설정에 맞도록 타당한 묘사가 이뤄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능력치를 강화하고 화염을 내뿜는 악마로 변신하며 그 지속시간을 제한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탈태'나 어둠의 형상을 취하여 지속 피해를 입히는 부착형 기재를 강화하는 '심연' 관련 기술들에서는 오히려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흑마법사의 향취가 진하게 느껴졌다. 한국어 완역 명칭이 악마술사일 뿐이지 본래 원문으로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악마술사와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흑마법사가 동일한 명칭인 워록(Warlock)으로 불리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2편의 악술도 소환, 화염, 독기, 물리를 사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강한 연관성을 보여줬다고 볼 수 있을지도
대신 시스템적으로는 꽤나 많은 부분이 변했다. 특히 스킬 빌드가 꽤나 직관적이고 명확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난잡하게 흩어져 있던 패시브 효과가 전부 삭제되고 각 계통의 기술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본형 액티브 스킬을 기반으로 파생 효과를 붙여 해당 스킬의 기본 콘셉트를 강화하거나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개조한다는 점은 오히려 3편의 룬석 시스템에 가까웠다.
언뜻 보기에는 신규 이용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게임성을 캐주얼하게 바꾸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바뀐 스킬트리는 꽤나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한 것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재설계된 제압 효과를 비롯하여 새로 추가된 전투 기재들을 사용하며 스킬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빌드를 굴리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기존 성기사의 '중재자 날개 타격'처럼 소위 말하는 스킬 한두가지를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딸깍' 빌드도 여전히 주류로 쓸 수 있는 충분한 강함을 가지지만, 특성화의 '지옥 수호'를 사용하여 몹을 몰아주고 '탈태' 형태로 변신하여 강화된 '대마귀 계통 기술'들을 전부 털어준 뒤 쿨타임이 돌고 자원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동안 매 타격마다 탈태의 지속시간을 늘려주고 지옥 수호의 쿨타임을 반환하는 '타오르는 비명'을 홀드 조작으로 유지해 DPS를 보강하는 예시처럼 증오의 군주는 단순한 플레이의 극치라 불리던 삼던 핵 앤 슬래시의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시도를 보여주며 눈길을 끌었다.

악몽 던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 계획'은 보상 체계의 선택권이 주어지는 점이 눈여겨볼 만 한 부분이다
그 밖에도 육성 시스템을 전반을 비교적 가볍게 다듬은 '전쟁 계획'이 돋보였다. 기존에도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육성할 때 지옥물결, 현상금 사냥, 악몽 던전, 지옥불 군세, 명공의 첨탑, 쿠라스트 지하도시 등을 취사선택할 수 있었지만 결국엔 매 시즌의 콘셉트에 맞춰 일종의 접대가 이뤄지는 콘텐츠가 강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이것이 전쟁 계획으로 리뉴얼되면서 자연스럽게 육성 과정에서 엔드게임 콘텐츠를 미리 맛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성장 계획을 짜고 실행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전쟁 계획은 단순히 성장을 돕는 튜토리얼의 개념이 아니라 전리품까지 제공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지금까지는 만렙을 찍고 정복자 레벨을 올릴 때 '근이뭐, 근데 이제 뭐함?'을 외치면서 시즌 탭을 열고 가장 효율적인 콘텐츠를 찾아서 따라가는 수동적인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호하는 성장 구조를 직접 선택하고 주도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기에 증오의 군주의 게임 구조는 더욱 세련되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디아블로 4'는 메피스토와 관련된 서사를 처리하는 것에만 무려 2개의 확장팩을 사용했다. 심지어 본편에서도 피투성이 늑대로 등장한 그의 존재감과 비중이 적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4편과 관련된 시리즈에서 메피스토는 오히려 주인공 포지션이나 다름 없는 셈인데, 지금까지 메피스토가 흑막 포지션으로 암약하며 행적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이 포커스를 몰아받은 느낌이 있다.
그 대신 '증오의 군주'는 '증오의 그릇'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확실히 맺음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준비를 마쳤다는 점에서 발전한 부분이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두 확장팩을 묶어서 냈더라면 기승전결이 깔끔하고 볼륨 또한 풍부한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 정도야 있을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증오의 그릇의 아쉬운 부분들을 직시했기에 이를 확실히 고쳐낼 수 있었고 실제로 플레이한 콘텐츠는 이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전작들의 요소를 적절하게 재해석하고 채용하여 게임적인 완성도와 만족감은 굉장히 높아졌다. 디아블로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이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정확히 알고 어떻게 다듬으면 더 좋아할까를 고민한 제작진이 있었기에 '증오의 군주'는 플레이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고 그 너머를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 싶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