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레스 존 제로(이하 젠존제)가 1.7버전 '눈물은 과거와 함께 묻으리' 업데이트를 통해 공동 재해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 '뉴 에리두'의 첫 번째 이야기의 막을 내렸다.
일단 호요버스 게임이라고 하면 무조건 입에 쑤셔 넣고 보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이렇게나 빠른 페이스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인게임 콘텐츠도 확확 바뀌는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적응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1부의 에필로그를 보고 나서 '재미있는 게임이었어'라는 소감과 함께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고 이에 수많은 에이전트 그리고 뉴 에리두 시민들과 함께한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젠장 젠존제, 나는 해피 엔딩이 좋다

개드립마저 현지화하는 훌륭한 번역 퀄리티 덕분에
코믹함이 배가 된다
게임이 출시된 직후 프롤로그와 메인 스토리 1장을 마치고 나서 이 게임을 평가하는 기사를 작성했을 때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지금까지의 호요버스 게임들과는 다르게 세계관 자체는 암울할지언정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캐릭터는 굉장히 밝고 생동감이 넘치는 덕분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이 마치 '한편의 시트콤'을 본 듯한 느낌을 줬다는 것이었다.
물론 '백남준'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퍼즐 로그라이트 콘텐츠인 '공동 탐사' 가 호불호가 갈린 끝에 삭제되어 버리면서 H.D.D. 시스템을 활용하는 독자적인 기술로 공동을 탐색하는 로프꾼 '파에톤'의 명성을 얻었다는 주인공 남매의 설정이 유명무실하게 됐고 그로 인한 영향인지 스토리의 완급조절이 살짝 아쉬워진 감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파에톤의 조력을 받아 힘들게 물건을 찾고 길을 뚫어야 성립이 될 서사가 짤막한 영상이나 텍스트로 넘어가게 되니 1부 5장에서 지금까지 메인 스토리의 주연을 맡은 에이전트들이 거대한 악에 맞서기 위해 전원 집결하는 '젠벤저스 어셈블' 파트에서 '뽕이 차오르는 정도'가 약해지는 결과를 낳게 됐고 이어지는 스페셜 에피소드도 빈약한 빌드업으로 인해 급전개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와! 에이전트 올스타즈!
와! 젠벤저스 어셈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존제는 1부의 서사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게임을 만든 회사의 대표 '류웨이'가 절망적이고 파국을 향해 끝없이 가라앉는 작품의 대표격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엄청난 팬이라는 것은 으레 알려져 있지만 그의 회사가 만드는 게임들은 대부분 끝에 가서는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덜 알려져 있는데, 젠존제의 1부 에필로그 스토리가 딱 그러한 호요버스식 해피엔딩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느낌을 받았다.
적당한 목이 메는 수준의 고구마를 던져주고 교묘하게 복선을 배치한 다음 이를 성공적으로 회수하는 전개는 물론 그 과정에서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이들의 인간찬가와 이들이 마지막에 행복하게 웃는 해피엔딩'을 보면 암만 피폐물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십덕을 겨냥한 게임답게 따옴표, 색깔이 들어간 글자 등의 디테일을 살피면
스토리와 관련된 복선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뉴 에리두 시장님님이 식장에 스드메 비용까지 공짜래!
당장 혼인신고서에 서명하자
■ 끝나지 않는 맛있는 액션에 대한 고민

버튼 딸깍 몇번으로 속도감 넘치고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액션이 완성된다
호요버스가 붕괴 3rd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ARPG 깎는 노인' 모드에 들어가면서 늘 내세운 것은 전투의 재미였다. 붕괴 3rd에서는 조건에 맞춰 캐릭터를 교대하며 물 흐르듯 이어지는 교대기와 QTE를 활용한 사이클 최적화, 원신에서는 환경은 캐주얼하게 바꾸되 다양한 원소를 조합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를 중심에 뒀고 젠존제는 이러한 요소를 모두 최적화하여 집대성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론칭 초기에는 다양한 역할군의 에이전트를 준비하여 상황에 맞는 에이전트를 적절하게 꺼내드는 것을 권장하고,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회피하거나 패링하면 QTE처럼 신속하게 아군을 출격시켜 빠른 연계를 가능케 하는 액션, 그리고 모든 속성이 이상치를 누적하여 2가지 이상의 속성이 연계되면 혼돈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그 흔적이다.

초반 구간의 액션과 연계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격파가 잘 막고 피하며 그로기를 열고 지원이 버프나 디버프를 걸고 강공이 세게 때려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초기 의도와는 다르게 지금은 1명의 초강력 이상, 강공 딜러가 나머지 2명의 에이전트의 백업을 받아 무쌍을 찍는 하이퍼 캐리 파티가 메타를 지배하고 있다.
초기에는 궁극기 자원인 데시벨을 팀 전체가 공유하기 때문에 단 1명만 궁극기를 사용할 수 있으니 메인 딜러에게 이를 몰아주는 것이 당연지사였고 격파 요원은 그로기는 잘 열지만 화력 자체가 저열하여 전장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온필드 점유율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파티 전체의 기대 화력이 떨어지는데다가 초창기 방어 요원들은 팀 전체의 유지력을 책임진다기보다는 콜레다와 제인을 완성하는 파츠쯤으로 취급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카이사르의 등장을 기점으로 다른 격파, 방어 에이전트도 오프필드 운용을 전제로 하는 케이스가 늘어났다
역할군의 이름만 다른 지원 에이전트가 되어버렸으니 팀을 짜더라도 나머지 2명이 들러리가 되는 운명은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역할군의 이름만 다른 지원 에이전트가 되어버렸으니 팀을 짜더라도 나머지 2명이 들러리가 되는 운명은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부분은 젠존제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여전히 더 나은 방향으로 액션을 발전시킬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전 업데이트를 통해 데시벨 자원을 팀 전체가 공유하지 않고 전투에 참여 중인 캐릭터마다 가지게 되면서 최소한 딜을 몰아줘야 하는 타이밍에서는 모든 에이전트의 필살기를 볼 수 있게 됐고, 교대를 하더라도 그냥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필드에 남아서 무적 상태로 노래를 부르며 딜과 버프를 넣어주는 '아스트라', 특정 조건을 맞춰주면 오프 필드 상태에서도 필드에 등장하여 적에게 추가 공격을 넣는 '트리거'와 '펄크라' 등을 통해 3명의 에이전트가 1개의 팀으로 협공을 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과 눈이 이전에 비해 확실히 즐거워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건을 맞춰서 펄크라와 트리거를 여진 공격 대기 상태로 만들어놓고
빌리로 좌클릭을 유지하면 3명이 동시에 신명나게 때려주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빌리로 좌클릭을 유지하면 3명이 동시에 신명나게 때려주는 광경을 볼 수 있다
■ 슬기롭지는 않을지언정 매일이 즐거운 도시 생활

이것이 인기짱 알파파에톤의 삶
젠존제가 전작들과 가장 차별화된 부분이라고 한다면 역시 주인공인 파에톤 남매의 비중이라 볼 수 있다.
사실상 메인 스토리에서는 있으나 없으나 수준이었던 '함장'에서 시작하여 '여행자', '개척자'를 거치며 매 게임 시리즈마다 주인공의 존재감은 점차 커지고 있지만 결국 '폰타인', '선주 나부' 스토리처럼 비중이 공기화되는 이야기는 늘 있었고 이런 부분을 아쉬워하는 게이머들의 의견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젠존제에서 파에톤 남매는 옛 도시 함락이라는 공동 대재앙의 누명을 쓰고 생사불명이 된 스승의 행방을 찾고 진실을 찾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에 따라 불법인 데다가 위험천만한 공동 조사에 임하고 있으며 보다 수월한 공동 조사를 위해 많은 에이전트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가고 있다.

얘는 사실 파에톤이 무슨 선택지를 골라도 호감도가 팍팍 올라갈 것 같다는 것이 함정이다
물론 파에톤 남매의 목적은 단기간 내에 달성하기 힘들다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에 다른 에이전트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려는 것도 있지만, 손익 계산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선인이라는 설정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에이전트도 파에톤 남매의 진면목을 보고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려고 하며 파에톤 남매 또한 그들과 함께하는 도시 생활을 소중하고 즐겁게 여긴다는 묘사는 이미 충분히 나오고 있다.
때문에 젠존제의 생활 콘텐츠는 단순히 미니게임 방식의 소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능동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다른 에이전트와 동행하며 이를 즐길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에이전트 개개인의 성격과 취향에 맞춰 하루 한번씩 무언가를 체험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지금은 아예 에이전트와 동행하여 같이 지역을 이동하고 관심을 가질만한 장소로 인도하여 대화를 시도하며 함께 놀이를 즐기고 호감작을 할 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주연연님, 같이 오락실 가서 게임 한판 해요

까짓거 게임 좀 못하면 어때, 데이트하고 있는 내가 더 잘하면 되지
약 1년 동안 젠존제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고 출시 초기와는 상당히 다른 게임이 된 상태다. 필자처럼 취향에 맞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키울만한 가치가 있는 분재임을 자신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존제를 여전히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게임이 충분히 잘 되고 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게임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아날로그 TV 형식의 공동 탐색 파트를 과감하게 쳐낸 것, 하이퍼 캐리 메타로 제한된 액션성을 풀어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실제로 시즌 2 개발자 면담 영상에서도 제작진은 이용자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여 개선된 콘텐츠 디자인을 선보일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그 약속이 진짜인지 혹은 그냥 던져보는 공수표인지 아직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면 충분히 기대는 해볼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서 의현은 뉴 에리두의 키아나인가요?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