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이란 단어가 이미 너무 고루하다고 말하며 반항을 해보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니 제일 많은 지분을 갖게 됐다. 그래도 많은 게임을 플레이해 보며 '소감'을 남기고 '추천'할 수 있다는 점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기도 하고.
세상에 모든 게임은 기획 의도가 있고, 저마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포인트와 시점이 존재하기 마련. '찍먹' 특성상 반나절 남짓한 시간에 짜릿한 재미를 준 게임, 그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줬던 게임들이 기억에 남는다. '여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그 뒤가 궁금해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탈고 이후로도 계속 붙잡게 만든 게임들이 있어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입맛은 개인 취향의 영역이라 의견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 괜찮네- 싶을 아이들이므로 아래 열거할 게임 중 못해 본 게임이 있다면 꼭 한번 '찍먹'해 보시길 바란다. "이건 왜 없어!", "이건 왜 있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님 말이 맞습니다. (순서는 가나다순)
사람 속에 피는 꽃 (팀 안개꽃)
"진엔딩을 위해 기꺼이 다시 플레이하게 만드는 매력, 아니, 마력."
흔치 않은 소재 선정과 제한적인 리소스 내에서 연출의 유연성이 돋보인다.
퍼즐 어드벤처 방식을 채택해 '대화'와 '환경'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어렴풋한 시대상을 통해 캐릭터에 대한 의심과 공감을 자극하는 영화 작법의 시선이 게임에서는 드물었던 유니크한 내러티브를 만들어 냈다.
게임을 하나의 완성된 게임으로써 평가할 때, 화려한 그래픽, 플레이타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수작. 여운이 정말 진하게 남는다.
샴블즈 : 종말의 후손들
"우리가 기억하는 텍스트 어드벤처의 매력 그 자체"
오늘날 클래식이란 단어가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작품들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가 몰입감을 꿰뚫었을 때 어떤 금지된 마법을 부릴 수 있는지가 바로 이 게임에서 묻어난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고전의 장르에 로그라이크, 덱 빌딩이라는 가장 트렌디한 요소를 무리 없이 섞어내 매력적인 앙상블을 자랑한다.
장르적 특성상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도전해 보게 만들고, 성공하고 실패하고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숙련된 모험가가 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게임이 선사하는 충분한 몰입감에서 기인한다.
10분만 해봐도 게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직관적인 매력도 지분이 크다.
스타 세이비어 (스튜디오 비사이드)
"즐기는 자가 진심 모드로 준비한 원기옥."
업계 거장이 자신의 애정을 아낌없이 내보이는 신작. 팬들 사이에서 금태 문학으로 불리는 과몰입형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선보였다. 클리셰도 장인이 다루면 다르다는 점을 몸소 증명한다.
또, 국내서 보기 드문 육성 장르에 도전했다는 점도 득점 포인트.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는 장르 특성상 하고 싶은 이야기, 그려내고 싶은 연출 모두 아낌 없이 눌러담아 콘솔 게임 즐기듯 즐길 수 있다.
연내 출시를 목표로 아직 개발 중인 작품이지만 장르 및 개발팀 특성상 이야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재미질 것이 분명해서 더 기대가 된다.
스텔라 코드 (프라가리아)
"비주얼노벨계의 삼체, 인터스텔라"
게임에서도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하고, 덕분에 즐겁다. '슈타인즈게이트' 이후 오랜만에 푹 빠져 플레이했던 고등 과학 기반의 SF 추리 비주얼노벨.
플레이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것을 감안하고, 적당한 템포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면서 단서를 툭툭 던져주는 세심함이 이 게임의 매력 포인트. 오히려 잘 모르는 내용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몇 번이고 반전되는 이야기에 마치 플레이어 본인도 그 상황에 있는 팀원 중 한 명인 것처럼 몰입하게끔 만든다.
비현실적인 이상 현상을 누구보다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천재들의 이야기. 적당한 긴장감, 감탄이 나오는 이야기 실타래. 역시 '이과'와 '문과'는 함께 하면 능히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듀엣 나이트 어비스 (판 스튜디오)
"기대작이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사용해야..."
서브컬처란 단어와 어딘지 익숙한 첫인상에 오히려 손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 게임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단어는 '우아함'이다. 운명의 굴레를 다루는 꽤 진중한 소재 탓에 현악기를 활용한 OST와 캐릭터 하나 버리는 것 없이 단편의 형태로 깊게 파고드는 울림 있는 서사가 특징이다.
자유자재로 사용 가능한 이동기, 냉병기와 건슈팅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액션의 화려함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고.
지난 CBT까지는 뽑기나 피로도 등 원초의 서브컬처 게임과 같은 구성이 있었으나 최근 방송을 통해 완전 탈피, 모든 캐릭터와 장비 무료화, 피로도 제거를 선언하면서 게임의 BM 구조, 성장 구조를 싹 바꿀 것임을 예고해서 환골탈태를 예고하며 기대감을 더 키우기도 했다.
몬길 : 스타 다이브 (넷마블)
"눈이 즐거워지는 몬스터 길들이기의 힙한 변화"
왠지 게임의 느낌이 착하다. 원작의 유쾌한 재해석이 선보이는 액션 RPG. 너무 오버해서 동떨어지지 않고, 무해한 동화 같은 설정을 만나볼 수 있다.
굉장히 매끄러운 인물 표현이 강점으로 실제 클로즈업샷을 적극 활용해 캐릭터 간의 케미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캐릭터의 속성과 콘셉트를 확실하게 구현한 액션 시퀀스, 그야말로 합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실시간 태그 플레이의 향연으로 쓸어담기, 몰아치기식 시원시원한 액션은 물론이고, 패턴 하나하나 파훼하는 공략의 재미까지 캐주얼한 액션이 특징이다.
UI 디자인 전공의 외계인을 납치했나- 싶은 넷마블 특유의 세련된 UI / UX도 게임의 감성을 뒷받침해 준다.
클레르 옵스퀴르 : 33원정대 (샌드폴 인터렉티브)
"턴제 전투 이상의 턴제 전투와 폭발시키듯 쏟아내는 스토리 연출의 힘."
말해 무엇할까? 그 무엇보다도 유니크한 설정을 사실적인 내러티브로 휘몰아치는 비극을 조명해내는 것은 물론 턴제 전투에 소극적으로 시도됐던 요소를 혁파해 전투 재미까지 두루 갖췄다.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잊을 정도의 압도적인 몰입감과 전개를 예상할 수 없는 반전의 사실들, 또, 스토리와 별개로 충분히 늘어놓은 파고들기 요소와 도전 요소까지, 다소 난해한 결말로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RPG가 스토리와 전투가 재미있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안해봤다면 올해 꼭 해봐야 하는 게임 중 하나.
헬로 유니버시티 (유진게임즈)
"매력적인 일러스트와 찰떡 같은 더빙, 발칙한 상상력이 있는데 무얼 망설이리..."
지옥의 대학에 부임한 인간 교수로써 만년 대학원생 악마들을 졸업시켜야 한다는 유머러스한 소재로 빚어낸 시뮬레이션 게임. 인디 게임 특유의 과감한 상상력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유니크한 아트 스타일에서 전해지는 매력적인 악마 '모르가나'와 '릴리스' 2명이 주축, 여기에 사회 풍자를 아낌없이 끌어다 배치한 시니컬한 대사와 성우들의 명연기로 한 편의 라디오 드라마가 완성됐다.
개인의 아이디어가 좋은 팀을 만나 하나의 게임으로 완성되기까지, 샘솟는 아이디어를 참지 못한 게임 제작자의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