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의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지뢰를 밟아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2급 국가유공자였다. 6·25 참전용사의 가족에겐 영광보다 상처가 훨씬 컸다. 이국종은 중학생 때까지 학교에 국가유공자 가족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받을 수 있는 조금의 혜택보다 속된 말로 ‘병신의 아들’이란 손가락질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약주를 하면 언제나 신세를 한탄하던 아버지는 이날따라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미안하다.” 계속 그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어린 그의 마음을 울렸다. 한번은 어머니가 동사무소에서 상이군인에게 지급하는 밀가루를 머리에 이고 오던 중 그것을 떨어뜨렸다. 남의 눈을 피해 밤 시간에 다니다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모자(母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밀가루를 주워 담았다. 그러다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세상이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너무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크면 아픈 사람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으리라.’
중학생 때 그는 축농증을 심하게 앓았다. 동네엔 병원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큰 병원에 갔다. 당시 국가유공자 가족에겐 일종의 의료복지카드가 주어졌다. 하지만 카드를 내밀었을 때 간호사의 반응이 싸늘했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다른 병원에 가라고 짜증을 냈다. 다른 몇 곳의 병원도 마찬가지. 이런 경험은 사춘기 소년의 가슴에 커다란 생채기를 냈다.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다 찾아간 한 병원. 카드를 보여줬음에도 의사는 정성껏 진료를 해줬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카드를 보고도 잘해 주시네요.” 그러자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왜 네가 그런 걱정까지 하느냐”며 되물었다. 또 “아버지가 자랑스럽겠다”라고 말하면서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후 그 의사는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 이국종이 올 때마다 항상 특유의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했다. 그땐 몰랐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 하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 그리고 사람 가리지 않고 성심껏 치료해 주는 그 모습이 멋지단 생각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