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게임을 선정하여 상을 수여하는 '더 게임 어워드(이하 TGA)', 국내 게임사의 일부 타이틀은 작품성과 흥행력을 인정받아 2023년의 '데이브 더 다이버'와 'P의 거짓', 2024년의 '스텔라 블레이드'처럼 그 이름이 TGA 후보작에 올라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공기부터가 달라진 듯 하다. 12일 진행 예정인 TGA 2025에는 넥슨 산하 개발사 엠바크 스튜디오의 익스트랙션 슈터 '아크 레이더스'가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게임상 후보로 등재되어 있는데, '엘든 링: 밤의 통치자', '스플릿 픽션', '배틀필드 6'처럼 분명 경쟁작들의 네임 밸류가 결코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상이 유력시된다는 관측들이 나올 만큼 '아크 레이더스'는 10월 정식 출시 이래로 지금까지 꾸준히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헌팅 액션에 가까운 느낌이었던
아크 레이더스의 초안
아크 레이더스의 경쟁력은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독특한 접근법에서 나온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영웅적인 기상으로 한데 뭉쳐 아크에 맞서 싸우는 무료 플레이 게임이라는 초안도 분명 매력적인 소재지만, 결국 이용자들의 실력과 장비 수준이 상향평준화됨에 따라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에 엠바크 스튜디오는 개발 과정 중에 과감하게 게임을 갈아엎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수반되는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환경, 인공지능을 활용한 머신 러닝으로 계속 강해지는 아크, 유료 패키지 게임으로의 비즈니스 모델 전환은 언뜻 보기에는 대중성과 거리를 두는 행보처럼 보였다.

벽뚫기 글리치를 악용하여 열쇠 없이 방에 진입하면 겉바속촉 레이더 구이가 된다
'그냥 정지' 대신에 '그럼 죽어'라는 유쾌한 해법을 제시한 셈이다
'그냥 정지' 대신에 '그럼 죽어'라는 유쾌한 해법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아크 레이더스의 성공은 이러한 선택의 결과가 이용자들이 원했단 '게임의 방향성'과 일치했음을 증명했다. 솔로 큐로 매칭을 돌려도 모두에게 개방된 음성 채널,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제스처와 자유로운 티밍은 인류애를 실현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빛보다 빠른 배신의 가능성을 남겨두어 게임이 결코 느슨하게 흘러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으로써 갖춰야 할 주요 덕목인 '운영'에서도 아크 레이더스는 한발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크 레이더스는 대부분의 경쟁 게임이 고질적으로 겪는 부정 플레이 이슈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법칙으로 응수하면서 한편으로는 등한시되기 쉬운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까지 확실하게 마련해 두고 있는데, 이를 통해 패키지 구매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소위 말하는 '돈값하는 게임'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모든 가능성과 변수를 열어두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하도록 준비하는 치밀한 설계 때문에
출시 초기에는 아크를 실제 사람이 조종하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까지 있었을 정도
심지어 최근 공개된 공식 채널의 영상 '아크 머신의 제조공정(Building ARC Machines)'에서는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아크의 진보에 대해 단순히 플레이 패턴을 반복 학습하고 그 대응책을 마련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독특한 게임 디자인이 적용됐음이 밝혀졌다.
단순히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만을 고려하도록 한다면 지형지물의 존재와 낙차를 포함한 물리적인 법칙만 고려하면 되지만 '지상을 달리고 뛰어넘는 다족보행 로봇의 다리에 파손이 생겼다면 그 3개의 다리를 어떻게 활용하여 중심을 잡고 움직일지', '프로펠러가 불타고 있는 부유 로봇은 어떻게 하강 기류를 생성하고 추진력을 얻는지'와 같은 심도 높은 접근이 있었기에 아크 레이더스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전투 체험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 순간이 예측불가능한 드라마처럼 흘러가는 것이
솔로 큐의 진정한 재미 아닐까 싶을 정도
멀티 플레이 게임이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포함한 진정한 재미를 찾을 수 있고, 멀티 플레이 게임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멀티 플레이 게임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을 제공하여 쉬이 질리지 않는다.
위와 같은 특장점이 있기 때문에 아크 레이더스는 충분히 구매하고 플레이할 만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최고의 게임을 뽑는 'TGA 2025'의 수상 후보작에 지명될 수 있었다.
오히려 이제는 '아크 레이더스'가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통칭 탈콥)' 이래 숱하게 쏟아져 나온 유사 탈콥류 게임의 일각을 차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하나의 장르 내에서 새로운 원류를 개척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니 TGA를 비롯한 연말연초에 진행될 각종 시상식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