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주연과 조연,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게이머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특히, 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작품 밖에는 기획자,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은 게이머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선사하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들어 줍니다.때론 주인공, 때론 친구, 때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킨 개발자들까지 게임에 관련된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습니다.[편집자 주]

* 본 콘텐츠는 마비노기와 마비노기 영웅전의 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판타지 작품에서 신은 이야기를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영웅에게 시련을 내려 엄청난 힘을 내려주거나 때론 인간을 초월한 능력으로 직접 주인공을 돕기도 합니다. 물론 그 초월적인 능력 때문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작품의 개연성을 망가뜨릴 위험도 있지만, 잘 쓴다면 현실과 또 다른 세계관을 나타낼 수 있는 유용한 장치가 됩니다.
20여 년 전 게이머들 앞에 나타난 여신 '모리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마신 키홀에게 붙잡혀 주인공인 밀레시안을 적극적으로 도울순 없었지만, 꿈으로 계시를 내려 세계가 위험하단 사실을 알려주고, 여러 안배를 통해 저세상인 '티르 나 노이'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밀레시안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주인공이 되어 판타지 라이프에 빠져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에도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많은 밀레시안이 여신 모리안을 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반면 마비노기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린 '마비노기 영웅전'에선 그야말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비록 게이머 영웅에게서 시즌 1의 비중을 모조리 가져가긴 했지만, 마비노기 영웅전의 모리안과 키홀의 이야기는 많은 영웅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이 커플의 비극은 시즌 4에 이른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마비노기 신작 '마비노기 모바일'이 출시되면서 많은 밀레시안이 마비노기 모리안의 삽질을 또 보게 될까, 혹은 마비노기 영웅전의 비극을 또 보게 될까 PTSD에 떨고 있습니다.
마비노기부터 마비노기 모바일까지 '나오'와 함께 마비노기의 얼굴을 담당하고 있는 모리안. 각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살펴봅시다.
■ 마비노기

마비노기는 모리안이 처음 등장한 작품입니다.
밀레시안과 모리안의 첫 만남은 꿈 속이었습니다. 마신 키홀에게 잡힌 모리안은 주인공 밀레시안의 꿈에 나타나 마비노기의 세계인 '에린'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죠.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모리안의 대표 대사인 '들리나요?'입니다. 이 스팸 계시가 20년 넘도록 날라올 것이라곤 아마 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신강림 당시에만 해도 모리안은 악당에게 붙잡힌 가녀린 여주인공이었습니다. 좀 귀찮은 심부름을 시키긴 해도 어쨌든 예쁜 여신이 도와달라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죠. 게다가 '여신의'와 '흑요석' 같은 쓸만한 아이템도 줬기 때문에 많은 밀레시안은 NPC의 이상형을 찾아주는 귀찮은 일까지 해가며 여신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마비노기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모리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귀찮은 일을 시키는 여신정도였지만, 이젠 밀레시안이 너무 세졌다고 죽이려 들었거든요. 이렇게 강해진건 다 여신의 말을 따른 결과인데 말이죠. 그래서 모리안의 평가는 키홀만도 못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결국 모리안은 신보다 더 세진 밀레시안에게 물리 교육을 당한 후 얌전히 은둔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모리안은 잦은 스토리 변경의 희생양입니다. 하필 위에 보여드린 표독한 표정으로 밀레시안을 죽이려 드는 장면이 너무 인상깊어서 그만... 원조 여신 모리안이 재평가 받는 날이 올까요?
■ 마비노기 영웅전

마비노기 영웅전에서도 모리안은 여신으로 등장합니다. 마족의 신인 키홀과 반대로 인간의 신으로 말이죠.
마비노기의 간판 캐릭터가 나오라면 마비노기 영웅전의 간판 캐릭터는 여신의 무녀 '티이'일 것입니다. 평소엔 여관 일을 도우면서 날씨가 좋을 땐 한 폭의 그림처럼 잠들곤 하는 미소녀죠. 그리고 가끔 모리안이 입은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많은 무녀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무녀가 아니라 '예언의 무녀'였죠. 에린에 속한 예언의 무녀는 언젠가 에린으로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주 잠드는 이유도 사실 잠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에린으로 사라지는 현상이었죠. 이 사실을 알게된 티이의 소꿉친구 카단은 티이를 지키기 위해 에린을 강림시키려고 합니다. 티이가 에린으로 떠난다면 이곳을 에린으로 만들어 티이를 곁에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마침내 에린 강림이 시작되자 티이의 존재는 사라지게 됩니다. 에린을 강림시키는 것은 사실 신들의 봉인을 푸는 것이었고, 에린의 봉인이 풀리는 동시에 모리안의 봉인이 풀리면서 티이의 존재는 사라지고 모리안이 강림했기 때문입니다. 티이를 구하려고 했던 일들은 사실 티이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었죠. 자신의 손으로 티이를 사라지게 만든 카단은 결국 절망에 빠져 악신의 힘에 물들고, 마신 키홀로 거듭납니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스토리는 운명을 거스르는 두 사람, 세계를 지키려는 영웅과 티이를 되돌리려는 카단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리안은 이 비극의 한 가운데서 이들의 비극을 한층 더 안타깝게 만드는 존재죠. 마비노기의 모리안과 또 다른 의미로 게이머의 PTSD를 자극하는 여신이 되었습니다.
■ 마비노기 모바일

마비노기 시리즈 최신작인 마비노기 모바일에도 모리안이 등장합니다. 마비노기 모바일의 메인 스토리는 마비노기와 큰 줄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그 유명한 "들리나요?"를 속삭이며 등장하죠.
마비노기 스토리를 공유하긴 하지만, 마비노기 모바일의 세계관은 원작과 꽤 다릅니다. 마비노기 속 교회는 보통 사랑의 신 라이미라크 교단 소속이지만, 마비노기 모바일에 등장하는 교회는 모리안을 섬깁니다. 그리고 마비노기 G1 '여신강림'에선 제목처럼 여신이 강림해 포워르의 신 키홀을 막아서지만, 마비노기 모바일에선 글라스기브넨을 처치한 이후에도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티이가 그대로 등장하는 것도 눈여겨볼 일입니다. 마비노기 영웅전과 다르게 무녀가 아닌 평범한 소녀로 등장하지만, 주인공과 카단 앞에서 자주 잠들고, 신성한 힘을 이용해 타르라크를 치료하는 등 신비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게임 외적으론 티이와 모리안, 카단과 키홀의 성우가 같아 더 불안하게 만들죠.
마비노기 모바일의 스토리가 아직 초반인 만큼 모리안에 대한 평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다만, 에린을 지키는 여신으로서 적들에게 냉혹한 존재라는 설명이 눈에 거슬립니다. 전쟁의 여신으로서, 그리고 에린의 수호신으로서 이번에도 사고를 치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마비노기 영웅전 때처럼 비극의 주인공이 될까요? 밀레시안과 영웅들의 멘탈을 얼마나 부숴버릴지 기대됩니다.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