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감독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 e스포츠 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없애겠다"
스타크래프트1(이하 스타1)과 스페셜포스 프로게이머를 보유한 'KT 롤스터'는 1999년 n016 온라인 프로게임단으로 창단해 올해로 12년째 e스포츠 게임단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 KT롤스터 스타1 프로게임팀
이 팀은 2010년 스타1 종목에서 위너스리그 우승과 프로리그 우승을 통해 '통합 우승'을 일궈낸 명문 팀으로 스페셜포스 프로리그에서도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KT롤스터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결승전에 진출해 '상해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 상태다.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해 6강PO부터 STX, 웅진, CJ를 차례로 꺾고 올라온 이 팀은 이제 SKT와 최종 결전을 앞둔 상태다.
KT롤스터 스타1 팀에는 한국e스포츠협회 종합 랭킹 1위를 기록중인 '최종병기' 테란 이영호와 '신형병기' 프로토스 김대엽을 비롯해 최근 기세가 무서운 4저그 '고강민, 임정현, 김성대, 최용주'가 속해있다.
특히, 이 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이지훈 감독은 게이머가 갖출 덕목은 '실력' 보다 '인성'을 중시하며, e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타1과 스페셜포스 두 종목에서 KT롤스터의 수장으로 팀의 목표를 설계하는 32살 이지훈 감독을 직접 만나봤다.
▶ 이지훈과 e스포츠의 인연, '피파'

▲ KT롤스터 이지훈 감독
저와 e스포츠가 맺은 첫 인연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닙니다. 지금은 스타1과 스페셜포스 감독직을 맡고 있지만 사실 저를 e스포츠로 입문시킨 종목은 축구 게임 '피파'입니다.
어릴 때 부터 스포츠와 게임을 좋아했는데, 특히 축구와 스타1이 저의 최고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 처럼 친구들과 함께 피시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는데 피파 대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들었죠.
대회 상금 500만 원이라는 문구를 보고 얼떨결에 참가해 봤는데, 그 당시 잘한다는 선수들을 제치고 8강까지 진출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엔 아무런 준비 없이 임한 첫 대회에서 본선 8강에서 떨어지면 '이 정도면 잘했지'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이상하게 승부사 기질이 생겼습니다.
이후 친구들과 함께 '피파' 연습을 계속했더니 다음 대회에서 바로 우승했습니다. 거짓말 같겠지만 그 후로도 쭉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 후 2000년에 피파종목을 주력으로 하는 'n016' 프로게임단에서 스카웃 제의가 와서 입단했습니다.
n016 게임단은 'KTF 매직엔즈'의 전신인데, 매직엔즈가 지금 'KT 롤스터'가 됐으니까 제가 KT 한 팀에만 무려 12년을 몸 담고 있는 거네요. 이만큼 오랫동안 한 팀에 있는 사람도 e스포츠계에는 별로 없을 겁니다.
▶ 피파의 이지훈, 수석코치 이지훈이 되기까지
2005년에 피파 선수 생활을 접고 군대에 갔다왔죠. 2007년에 제대를 했는데 당시 KTF 매직엔즈 팀에서 코치직을 제안하더군요. 달콤한 제안이었지만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있어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KTF 매직엔즈 측에서 제안한 방법이 사무국 인턴사원직이었습니다. 게임단 사무국 일인데, 당시 대학생으로써는 KTF의 사무직이라는 자리가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개월 정도 즐겁게 일했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저의 업무태도가 괜찮아보였는지 KTF측에서 또 한 번 수석 코치 제안하더군요.
선수들과 친해지고 사무국 일을 짧게나마 해보니 '그래도 이 쪽이 내 길인가?' 싶어서 게임단 코치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아, 또 이게 창피한 얘기일지도 모르는데, 사실 전 아직 '대학생'입니다. 교생실습과정이 남았는데, 3일은 무조건 해당 학교로 출근을 해야한다네요. 저도 정말 졸업하고 싶은데 교생 실습이 항상 프로리그 일정이 바쁠 때 있습니다. 3일 동안이나 팀을 떠나있을 수 없어서요.
▶ 이지훈의 '독이 든 성배', 프로게임단 감독의 길

▲ KT를 결승에 안착시킨 이지훈(가운데)감독과 김윤환(좌)코치, 강도경(우)수석코치.
제가 수석 코치 시절에, KTF에는 김철 감독님이 계셨습니다. 2년 동안 4번의 시즌을 거쳤는데 플레이오프 진출을 한 번도 하지 못했죠. 열정과 능력을 두루 갖춘 분이었는데 결과가 노력에 비해 좋지 않아 힘들어 하시는 모습에 저도 가슴 아팠습니다. 김 전 감독님의 사퇴 후, 그 후임으로 제가 임명된 거죠.
그 때가 2008년 7월이었는데, 처음엔 2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팀의 감독을 맡게돼 어린마음에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이 된 첫 시즌을 7위로 끝냈습니다. 포스트시즌에 6위까지 갈 수 있는데 못 간거죠. 이 때 또 승부사 기질이 가슴 속에서 끓어올라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찼습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코칭 스태프도 보충하면서 목표를 구체화 시켰어요.
'5년 안에 우승하겠다' '장기적으로 보고 팀을 천천히 끌어올리자' 등의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팀이 연패를 거듭했습니다. 이 시기가 인간 이지훈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독기 품고, 최대한 빨리 우승하겠다!'라고 이렇게 생각 했더니 팀이 급성장을 했습니다. 감독의 마음가짐에 따라 이렇게나 팀이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팀에 애정도 생겼고요.
주변에서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다' 라고 선배 감독님들이 많이 말씀하셨는데 이 때 깨달았습니다. 최고가 된다면 큰 명예를 누릴 수 있지만 최고가 되지 못하면 처절한 마음고생이 기다리고 있단 뜻이었죠.
지금, 결승에 오른 후에는 강도경 수석코치와 김윤환 코치, 그리고 웅진 코치였지만 지금은 한 식구로 KT 저그라인을 키워 준 김상훈 코치가 옆에 있어 마음 든든합니다.
▶ '감독님' 보다는 '선생님' 같은 지도자, 이지훈
2011년, 제가 감독이 된 지 딱 3년이 지났습니다.
2010년에는 광안리 우승도 해 보고, 이번 시즌(10-11)에는 리그 초반 꼴지도 하는 등 팀에 많은 변화가 있었죠. 현재는 바쁘긴 해도 팀 내 분위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 감독으로써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예 탈락하거나 결승에 직행하는 바람에 KT는 지난 5년 동안 6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이번 시즌이 저나 선수들에게 큰 경험이 될 수 있는 시즌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맘은 편합니다.
물론 선수들은 지치고 힘들어 저를 미워할 때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저도 선수 시절에 감독님, 코치님 탓하고 그랬는걸요. '선수들의 불만을 얼마만큼 최소화하고, 생활에 만족감을 줄 수 있는가'가 모든 게임단 감독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원스포츠인 농구와 야구에서의 '감독'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호랑이처럼 선수들 위에 군림할 수 있지만 e스포츠는 선수들의 감정흐름을 세밀하게 조절하고 파악해야해요.
특히, 게임은 놀면서 시작하죠.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게임이 좋아서' 프로게이머가 된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이런 선수들에게 혹독하게 연습 시키고, 혼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선수생활을 5년 동안 해 오면서 체육교육학, 체육심리학을 전공한 게 도움이 되더군요. 새삼 사람에게 있어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입 선수들을 뽑을 때 '인성'과 '꾸준함'을 가장 많이 봅니다. 착하고, 예의바르고, 꾸준한 친구들은 어딜 가서든 성공합니다. 저는 게임 못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인성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선수는 용납하지 않아요.
"프로게이머는 '게임만 하는 외곬수' 라는 인식, 없앨 겁니다."

▲ 웅진과의 준플레이오프 승리 후 인터뷰 중인 이지훈 감독
사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20대가 지나면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어떻게든 코칭 스태프나 게임 방송 진행자, 아니면 곧바로 사회에 나가야 하죠.
사회는 '기본'을 중시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맡은 선수들이 '프로게이머 시절에 게임을 잘했다는 것' 보다는 '기본을 갖춘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이영호 선수와 김성대 선수에게 고등학교 학업을 마치게 했어요.
중, 고교 자퇴 후 맹목적으로 이 길에만 매달리는 선수들도 있는데, 저는 게임이 아니더라도 어린 선수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식이 아직 '게임을 직업으로 한다'고 하면 외곬수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일부 대중들의 색안경을 벗기기 위해서라도 선수들의 일시적인 게임 성적 상승보다는, 기본적인 공부는 마쳐야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KT는 사이버대학과도 협약을 맺고 선수들이 원하면 입학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선수들이 20대 초중반이 됐을 때 가장 걱정하는 것이 '군대 갔다온 후에 어떻게 할까'라는 점인데, 미래에 대한 각종 걱정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선수는 훨씬 마음 편하게 게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 KT의 '호' 3형제, '홍진호, 우정호, 이영호'
팀에 '호' 형제가 셋 있죠. 아픈 두 선수(우정호, 이영호)와 은퇴한 한 선수(홍진호).
팀의 프로토스 선수 우정호 선수가 현재 급성백혈병을 앓고 있습니다. 아직 투병 중이지만 골수 이식은 받은 상태고 몸에서 얼마만큼 받아들이나 지켜보고 있는 상태죠. 몸에 맞는 골수를 찾기가 굉장히 힘든데 이식을 받아서 한 시름 놨습니다. 팬 여러분들이 조금만 더 응원해 주시고 기다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영호 선수는 현재 계속 경기에 참여는 하고 있습니다만, 치료 중입니다. 엑스레이 촬영을 해 봤는데 인대 쪽 문제는 없고 근육의 문제라고 하더군요. KT에 농구나 골프 같은 다른 프로 스포츠 팀이 있어서 추천 받은 국내 최고 의사들에게 치료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요.
향후 2~3년 간 계속 게임에 전념할 선수라 완치되기는 어렵겠지만 지속적으로 치료와 마사지를 병행하면 이 선수의 상태는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그리고 홍진호 선수, 이제는 은퇴했으니 전직 선수가 되겠군요. 2011년 5월까지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서 은퇴 만류를 했는데 본인이 의욕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죠. 그는 워낙 자유로운 성격이라 코치직을 하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안 한다' 하면 정말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호가 방송 해설직 쪽으로는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들었고 그래서 당장은 안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방송 프로그램에만 출연할 것 같고, 지인과 뭔가 개인적인 일을 하려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만약에 팬들이 계속해서 홍진호라는 선수를 찾고, 그리워하면 그 마음에 부응해서 나중에라도 방송으로 돌아 올 가능성은 있습니다. 정말 팬들을 위하는 사람이거든요.
▶ 이지훈의 2011년 8월 과제, '결혼과 SKT'
8월 6일 상해, SKT T1이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죠. 통신사 라이벌이다보니 아무래도 가장 신경쓰이는 팀이고, 이기면 가장 기분 좋은 상대죠. KT와 SKT가 붙는 날에는 유난히 사무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경기를 지켜본다고 합니다.
좋은 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또 선수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팀이라 본 받을 점도 많아서 꼭 이기고 싶네요. 박용운 감독과는 겉으로는 라이벌이지만 사적으로 만나면 얘기도 많이 하며 잘 지냅니다.
또, 8월 20일에 제가 새 신랑이 됩니다. 아직은 포스트시즌 중이고 결혼을 알릴 때가 아니라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승 직후에 최고의 결혼식을 맞이하고 싶어 조심스럽죠.
선배 감독님들이 "결혼을 포기하든지, 결혼 후 가정생활 포기하든지 하나만 하라"고 하시는데 제 아내가 될 사람은 이해와 배려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e스포츠 쪽에서 일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이해해 주지 못하면 관계를 유지하기 힘든데, 저와 라이프 사이클이 맞는 사람이고 잘 이해해 줘서 고맙고 다행입니다.
▶ 팬들과 선수들에게 이지훈이 전하는 말

▲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집합시키고 있는 이지훈 감독의 모습
안녕하세요, KT 롤스터의 이지훈 감독입니다.
팬 여러분들이 저희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이 이번 결승까지 올라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약팀으로 간주됐는데, 정규 시즌 중에 미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려서 팬여러분께 죄송합니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내부적으로는 항상 자신이 넘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영호 선수의 손목 상태도 많이 나아지고 본인의 경기 출전 욕구도 높습니다. 작년 프로리그에서 예상 밖에 우승이라는 큰 영광을 얻었는데, 이번 시즌에도 상해 결승전에서 더 큰 영광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또 우리 기특한 선수들, 시간이 촉박한 나머지 연습하느라 힘든데 웃고, 긍정적으로 지내줘서 항상 고맙습니다. 이번 시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시즌까지 함께 같이 발 맞춰 갔으면 좋겠고, KT는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내자, KT!
[서연수 기자 sys1emd@chosun.com] [ga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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