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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자 친구보다 컴퓨터게임이 좋아요"...이현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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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공사장에서 SCV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네!" 여성 게이머 이현주(23)씨가 PC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우연히 길을 가던 중 공사장을 쳐다보면서 외친 말이다.

SCV는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에서 집을 짓거나 자금이 되는 미네랄을 수집하는 캐릭터(인물). 흔히 유닛이라고 불린다. 그녀가 얼마 나 깊이 게임에 빠져들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 증후군'이라고 할까.

그녀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언제부턴가 프로토스, 캐리건, 저그, 미네랄, 테란 등 스타크래프트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 생활용어가 되버렸다"고 말한다. 사실 그녀가 여성 게이머의 길로 들어선 이유도 바로 스타크래프트 때문이었다. 학교 친구들이 스타크래프트 에 대해 이야기하면 자신만 이해를 못해 왕따 당하기 일쑤였다.

 

"연극을 같이 하는 남자 친구들이 이상한 단어들만 계속 사용해 무척 답답했고 화가 났어요."

그녀는 J대 연극학과 4학년으로 배우 지망생이다.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사회적으로 화제를 일으킨 작년내내 연극연습 때마다 곤혹을 치뤘다고 한다. "연극 내용 중에 게임 이야기만 나오면 남들 다 아는 저그, 테란 등 스타크래프트의 기본 단어조차 몰랐죠. 한마디로 따돌림 당하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올 1월부터 PC방에 출입하면서 완전히 변신했다. '스타크래프트가 뭐길래'라며 시작한 초보자가 하루밤을 꼬박 새우는 것은 기본이고 몇 달 동안을 PC방만 출입했을 정도다. 지금도 하루 평균 5시간은 스타크래프트에 매달려 산다.

 

"요즘은 오히려 스타크래프트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이 게임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돼요"

그녀는 지금 당당한 여성 프로게이머다.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스타크래프트 프로조직인 슬기팀의 구성원이며 게임 플레이 할 때 사용하는 개인 ID인 spring(sg)만 보면 슬금슬금 도망가는 남자들도 생겨났다. 그녀와 대결해 패한 남자 게이머가 뭉개진 자존심 때문에 흥분하는 모습도 이젠 새삼스럽지 않다.

 

서울시내 PC방 가운데 공짜로 들어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도 4∼5군데나 된다. 서울에서 활약하는 20여명의 여성 게이머 가운데 상위에 랭크하는 뛰어난 실력 때문이다. 그녀는 "PC방 사장들은 여성 고수가 와서 플레이해주면 손님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오히려 대 환영"이라며 자랑삼아 말한다. 아직 선배들과 함께 지방순회는 다녀본 적은 없으나 곧 투입될 예정이다. 요즘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의 PC방 초청으로 스타크래프트 대결 시범이 열리면 동네에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이들의 게임 솜씨를 구경하기 위해 지방 게이머들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진풍경이 종종 연출된다.

 

지방 순회는 PC방 주인들이 쥐어주는 사례비도 짭짤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프로게이머들이 선호한다. 요즘도 그녀는 팀원들과 함께 이달 들어 풍성하게 열리고 있는 게임 경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작전과 전략을 짜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취재를 하면서 이현주씨가 과연 계속 프로게이머의 길을 갈 것인가 궁금해졌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장래 직업에 대해 섣불리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지만 스타크래프트란 게임 하나가 제 생활에 변화를 준 것은 사실이며 지금은 그 자체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부터 꿈꿔왔던 연극배우의 길을 포기할 순 없지만 여성 프로 게이머에 대한 욕심은 마냥 진지해 보였다.

 

또 다른 여성 게이머 방선애(20)씨도 어느날 갑자기 PC게임 하나가 그녀의 생활 자체를 바꿔놓은 경우다. 오래 전부터 사귀어오던 남자 친구가 매일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던 것 이 여성 게이머의 길에 접어든 계기였다.

"게임 때문에 잠도 안자고 전화를 걸면 귀찮은 듯 피하는 친구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그러던 중 올해 2월 우연히 남자 친구를 쫓아 PC방에 가게 된 것. 처음엔 게임 플레이 방법조차 몰라 짜증만 났지만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면서 남자 친구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스타크래프트에 흠뻑 빠져 하루도 안빠지고 게임에 열중하거나 3∼4일에 한번씩 밤을 세웠다. 어느날부턴가 입장이 바뀌어버렸다. 남자 친구가 오히려 자신과 만나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정말 친구보다 게임이 더 좋았어요."

그녀는 정말로 여성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한다. "아직 프로는 아니지만 빨리 실력을 쌓아 선배들처럼 지방순회도 다니고 제 이름으로 된 책도 내고 싶어요"

 

지난 5월부턴 아예 신촌에 있는 슬기방이란 PC방에 아르바이트로 취직해버렸다. 오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가게 운영을 도와주며 초보자에겐 플레이방법까지 가르쳐준다. 그리고 근무시간이 지나면 혼자 맹연습에 돌입한다.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스타크래프트와 씨 름하면서 말한다.

"게임은 한갖 놀이도구가 아니예요. 게임 속엔 사랑과 슬픔 기쁨이 녹아있는 한편의 거대한 드라마이자 종합작품입니다."

그녀는 "게임 도중에 채팅을 하면서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거나 남자가 여자에게 졌다고 자존심 상해 흥분하는 것도 우습다"고 덧붙였다.

 

국내엔 여성 프로게이머란 단어조차 생소하지만 이현주·방선애 씨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당당히 표현하는 신세대 여성들이다. 아직 프로게이머의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해 직업으로서 불안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건전한 게임산업이 자리잡고 좋은 게임들이 계속 선보일 경우 신세대들에겐 선망의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여성 프로게이머의 등장은 스타크래프트가 낳은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현상임에 틀림없다.

(강준완 게임조선 팀장 ga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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