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종목에 걸쳐 다양한 선수를 배출해내며 지금까지 그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한 게임대회에 그치지 않고 스포츠의 일환으로 정착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 방송중계였고, 그리하여 수도 없이 많은 경기들이 TV를 통해, 모바일 기기를 통해,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죠.
e스포츠 방송 경기는 그 역사가 짧지 않은 만큼 다양한 에피소드와 명경기가 있었지만, 그만큼 사건사고도 많았는데요. 그 중에서도 방송불가급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방송사고들을 모아봤습니다.
■ 이게 다 온풍기 때문인 것 아시죠? 1. 23 정전사건

무려 실제 방송 화면
2010년도 NATE MSL은 역대 스타 프로리그중에서 가장 평가가 나쁜 대회였습니다. 오직 흥행만을 생각한 막장스러운 맵 밸런스와 공정성이 결여된 대진표 선정과 반대급부로 대회 시작 전까지 스폰서십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등 리그 운영 이슈로 이런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나마 풍파를 겪는 가운데 당대 최고의 프로게이머 라인업으로 꼽히던 '택뱅리쌍'중 리쌍(이제동-이영호)의 결승전이 성사된 것이 그나마 팬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었지만 결승전 장소는 개인리그 역사상 가장 작고 초라한 곳을 섭외했고, 모든 스타리그의 팬층이 아니라 오로지 게임단 관계자와 선수들의 개인 팬클럽 회원들만 대상으로 1000명을 입장케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을 펼쳐 욕을 바가지로 먹었죠.

아 ㅋㅋ 온풍기 때문이라고요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바로 1.23 정전사건입니다. 그 작은 규모의 경기장에서 결승전을 치르면서 전력 이용량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 탓에 경기 도중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하필이면 그 정전이 터진 타이밍이 양측 선수가 1:1의 세트 스코어로 박빙이던 상황이라 3세트의 경기 정황을 보고 심판이 이제동에게 판정승을 내리자 이영호와 그 소속팀인 KT롤스터는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난장판이 벌어지고 맙니다.
결국 안좋은 방향으로 과열된 분위기가 진정된 후, 결승전을 재개하여 이제동이 3:1로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이미 결승전은 제대로 망가진 상태였고, 경기 운영 측에서는 사건의 원인에 대해 '선수 측에서 사용을 요청한 온풍기의 과열로 인해 정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가 이젠 하다하다 선수한테 책임을 전가하냐며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됩니다.
이 사건 이후로 담당 PD가 징계를 받아 좌천되는 것은 물론, 사건의 주범(?)이었던 '온풍기'는 한동안 스타판에서 최고의 아웃풋을 뜻하는 '본좌'로 등극하여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처지입니다.

얼굴이 가려진 사람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으로...
■ 꺾이지 않는 부상투혼. 고병재 판넬 붕괴 사건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
2014년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4라운드, 1주차 3경기가 진행 중이던 넥슨 아레나에서 한 선수가 경기 도중 선수 부스의 구조물이 무너지며 머리 부상을 입습니다. 바로 CJ 엔투스의 고병재였는데요. KT 롤스터에 맞서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주성욱에게 1승만 따내면 팀의 승리가 확정되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건의 원인은 경기장인 넥슨 아레나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었는데요. 대치하고 있는 선수들의 부스가 다른 경기장에 비해 시야각이 트여 있고 독립성이 다소 부족한지라 통칭 '눈맵'이라 불리는 훔쳐보기 등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1:1 경기 상황에서는 시야 차단용 판넬의 설치가 필수 불가결이었습니다. 이러한 임시방편은 당연히 내구도의 부족으로 경기 도중에 판넬이 쓰러져 모니터를 넘어뜨리고 선수를 급습하는 것으로 이어졌죠.
별다른 전조 없이 갑자기 사건이 터졌고 선수의 머리에 직격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경기를 중단하고 병원으로 이동할 정도의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고병재 선수는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 하는 와중에도 화를 내기보다는 침착하게 ppp(게임 일시 정지 선언)을 한 뒤 휴식을 취하고 복귀하여 승리를 쟁취, 팀에게 소중한 1승을 안겨주며 부상투혼이라는 별칭이 붙으며 스포츠맨십에 찬사를 받았습니다.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을 우려하여 선수의 의사를 확인했고 고병재는 여기서 경기를 속행하여 승리합니다
■ 어르신도 반가워하는 MC용준, 광안리 취객 난입 사건

그야말로 갑툭튀
때는 바야흐로 07년도 신한은행 프로 팀 리그 전기, 스타 팬들에게 리그 결승전 장소를 말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그 곳 '광안리 해수욕장'에서도 황당한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칸과 르카프 오즈의 결승전의 오프닝 무대에서 각 팀 관계자들이 인사를 하고 캐스터 전용준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거나하게 취한 어르신이 난입하여 카메라를 가렸고 전용준 캐스터에게 친근함을 표하며 '어이구! 오랜만이다, 어이구야'라면서 인사를 건넸고 보안 요원의 인도로 실려 나가면서 큰 사고 없이 소동은 마무리 됐습니다.
어르신은 '스타리그 결승전' 무대 인사 현장을 '전국노래자랑'으로 착각하여 반가운 마음에 취한 상태로 올라갔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무기가 될만한 소지품은 일절 없었고 사건 당시 용준좌는 늘 그렇듯 오랜 방송활동 경력에서 나오는 의연한 대처로 어르신의 인사에 화답한 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스타리그를 좋아하신다면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기에 민형사 고발이나 이로 인한 경기 지연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OGN 특집 프로그램 '랭킹쇼'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 1위로 뽑혔다고 하니까 그만큼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시청자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 토일렛 이슈는 중대사항이다. '큐베' 이성진의 경기 중단 사건

퍼즈가 걸린 순간에는 다들 무슨 중대한 문제가 생겼나 걱정을 하는 눈치였지만
2017년 LCK(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시즌, SKT T1과 삼성 갤럭시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3세트 도중 삼성 갤럭시의 탑 솔로 라이너인 '큐베' 이성진이 경기 중단을 요청합니다.
중요한 무대에서 2세트를 내리 지고 패색이 짙었던 삼성에서 퍼즈를 걸었던데다가 당사자인 큐베 선수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기 때문에 선수 부스 안의 현장 상황을 모르는 시청자와 관계자들은 중대한 인게임 이슈로 인해 경기가 지연됐고 경우에 따라서는 크로노 브레이크(시간 되돌리기)를 통해 재개해야만하는 큰 문제가 발생했음을 예측했습니다.
상대팀인 SKT T1의 운타라(박의진 선수)는 일시 정지 사유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황당하게도 정지 사유는 큐베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였습니다. 큐베 선수는 대회 규정에 따라 벌점을 받는 것을 확인받고 멋쩍은 표정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요. 후일담에서 이야기하기를 이미 2:0으로 경기를 리드 당하고 있던 상황에 3세트도 잘 풀리지 않아 그대로 스윕당할 것을 예상하고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페널티를 받는 것에 대해 앰비션은 화가 났지만 생리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는 주장에 결국 벌점을 받는 것을 감수하고 큐베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했고, 비록 그 날 삼성 갤럭시가 경기에서 패배하며 상위 라운드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해당 년도의 월드 챔피언이 됐다 보니 '토일렛 이슈'로 액땜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긴 합니다.
참고로 생리적인 문제로 게임이 일시정지된 경우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인 강민,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인 선호산의 사례도 있었는데요. 강민은 데뷔전이라는 당시 상황에 따라오는 긴장감과 문제를 빠르게 해결했다는 이유로, 선호산은 감기에 걸려 물을 많이 섭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정이 알려지면서 헤프닝을 스무스하게 넘겼지만, 큐베의 경우 넥슨 아레나 경기장은 따로 대기실과 편의시설로 통하는 선수 전용 통로가 없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관객들 앞을 지나가야만 했기에 해설진과 관객들의 무수한 박수 세례를 받으며 화장실을 다녀오는 벌(?)을 받아야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은근슬쩍 놀려먹기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중계진들
■ 번외편. 치킨을 주문했는데 배달이 오기도 전에 경기가 끝났어요. 삼연벙 사건
방송사고는 아니지만 팬들에게는 방송사고급 참사로 기억되는 경기가 하나 있습니다. e스포츠에서는 레전설로 기억되는 '1이 2에게 3하는 것', '삼연벙'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2004 EVER 스타리그 준결승 2경기입니다.
해당 경기는 최고의 라이벌리였던 임요환과 홍진호의 대결이라는 것도 있지만, 직전 1경기에서 최연성과 박정석이 5꽉 풀세트 혈전으로 팬들에게 제대로 눈호강을 시켜줬기에 다들 '임진록'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은 상태였습니다.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치킨을 시켜놓고 대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관련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축제판이었죠.
그러나 당일 결과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임요환은 1세트는 14분 46초, 2세트는 3분 43초, 3세트는 4분 13초로 도합 22분 42초만에 홍진호를 넉아웃시켜버립니다. 이는 스타리그 역사상 5전제 총 경기시간이 가장 짧았던 대진 1위로 기록되어 있으며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OGN 캐스터/아나운서들의 코멘터리에서도 당시 삼연벙이 얼마나 큰 이슈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당일 미리 치킨을 준비해둔 사람들은 치킨을 반도 못 먹었는데 경기가 끝나있고, 경기 시간에 맞춰 치킨을 주문한 사람들은 배달이 오기도 전에 경기가 끝나있었다는 간증(?)이 속출했고 양 선수의 팬덤이 격하게 충돌하고 커뮤니티가 불바다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지금에 와서는 규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고 승리를 추구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삼연벙'은 냉정한 프로의 세계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로서 언급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당시 기조 상으로는 팬서비스에 가까운 꽉찬 혈투를 원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라서 방송사고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은 것이죠.
[게임조선 편집국 gamedesk@chosun.com] [gamechosu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