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의 자회사 SCE(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구타라기 겐(久多良木健) 사장은 TV의 네트워크 패권 탈환을 예견하는 TV진영의 대표주자다. PC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만능기계’이긴 하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게다가 부팅하는 데 몇 분이 걸리는 등 다루기 까다롭기만 하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 언론 중에선 처음으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구타라기 사장은 “앞으로 가정 내의 인터넷은 PC 아닌 TV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 스테이션(중계기지) 기능을 TV에 물려준 뒤, PC는 제2선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임 역시 PC보다 TV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예언한 그는,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소니의 비디오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의 후속기종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언론에 ‘플레이스테이션3’의 개발 포기를 밝힌 것은 처음이라고 소니측 관계자는 귀띔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신에겐 ‘소니의 이단아’ ‘혁명아’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 등 별명이 많다. 일개 일선 기술자로서 홀로 ‘게임회사를 맡겨달라’고 제안, 결국 성공했다고 알고 있다. 보수적인 일본기업에서는 각별한 행동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80년대 초에 가정에서 TV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닌텐도와 공동으로 게임개발을 하자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단독으로 게임기 개발을 주장한 끝에 결국은 10년쯤 지나서 당시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소니 사장으로부터 ‘그렇게 하고 싶다면 증명해 보라’는 허가를 받았다. 애초에 게임기 개발을 하자고 했을 때는 ‘소니 같은 대(大)회사에서 장난감 사업을 하겠느냐’는 얘기를 들었었다.”
―관료적인 일본회사에서 적극적으로 게임기 개발을 주장하고, 결국은 성공해낸 실질적인 벤처기업가로 알고 있다. 평소 벤처기업가로서 사원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 주고 있는가?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꿈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벤처의 기본이다. 그러나 벤처도 여러 가지다. 내 경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벤처보다는 소니라는 대기업의 자산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 과정에서 여러 다른 회사로부터도 좋은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벤처보다는 이왕이면 여러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평소 사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당신은 후발주자로서 당시 게임기업계를 주도하던 세가나 닌텐도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특히 영화를 볼 수 있는 DVD기능은 게임기의 기존 상식을 뒤엎었다는 평가다.
“음악·게임·영화 등 여러 가지 엔터테인먼트를 하나로 융합한다는 생각으로 게임기를 개발했다. 이 때문에 당시까지는 차세대 매체였던 DVD롬을 장착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나온 후 DVD란 매체가 더욱 많이 이용되고 있고, DVD라는 미디어와 상승(相乘)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PC가 사무환경을 통합한다면 가전기구도 TV를 중심으로 통합될 것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며칠 전 일본에서 「X박스」를 발매했고, 소니도 한국에서 ‘플레이스테이션2’를 내놓았다. 또 함께 경쟁하던 세가는 게임기 판매를 중단하며 일단 무너진 상황이다. 세계적인 게임기 전쟁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
“우리는 세가가 ‘이젠 별도의 게임기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편한 상황’이 됐을 뿐이라고 본다. 세가가 원래 하려고 했던 것도 소프트웨어 개발이지 게임기 개발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무실에서만 사용되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라는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든 기계다. 우리와 비교하면 플레이스테이션이 좀더 ‘가전’기계에 가깝다는 데 비해 X박스는 좀더 ‘컴퓨터’에 가깝다는 차이다.”
―그러나 결국은 인터넷의 발달은 PC를 중심으로 이뤄지리라는 견해가 한국에서는 많다.
“한국인들은 PC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게임기 시장은 PC게임 때문에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젠 마이크로소프트도 판단의 잘못을 인정하고 게임기 시장에 진출해 있지 않은가. PC는 만능기계이지만 다루기 힘들고, 역시 PC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문기계가 더 잘 할 수 있다. PC로 TV를 볼 수는 있지만, 실제로 누가 컴퓨터로 TV를 보겠는가.”
―게임기 위주로 성장해온 SCE로서는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가?
“현재 우리는 1년에 1800만대의 플레이스테이션2를 팔고 있는 반면, PC게임 시장규모는 미미하다. 결국 사무실이 아닌 일반가정은 TV 화면과 리모컨으로 간단히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다. 특히 초당 15메가바이트를 전송할 수 있는 고속통신망이 깔리면 게임기는 없어질 것이다. 2005년까지는 지금 같은 게임기가 나오겠지만, 그 이후에는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한 게임기는 없어질 것이다.”
―게임기 회사 사장이 ‘게임기의 종언’을 예언하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플레이스테이션3’는 개발하지 않을 생각이다. 만든다고 해도, 그것은 지금과 같은 게임기는 아닐 것이다. (TV수상기를 통해) 다운을 받을 수 있는 게임기(플러그인)가 될 수도 있다.”
―결국 구타라기 사장은 ‘게임기’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미래의 게임시장을 내다보고 준비 중이라는 얘기인데, 이 경우 SCE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게임기가 없어질 경우 가정을 통합하는 하나의 가전네트워크가 생기고, 소니그룹 전체도 사업부문에서 큰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SCE는 이 때가 되면 세가처럼 소프트웨어 생산에 주력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플레이스테이션2가 발매됐다. 한국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94년부터 한국 진출을 검토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입시경쟁이 치열해서 게임기가 안 팔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3년 전에 처음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다. 물론 PC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 게임(게임기 게임)과는 차이가 있지만, 시장 자체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게임 회사들의 잠재력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게임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는 게임의 내용이 지나치게 일본적인 것이 많았기 때문인 것도 한 원인이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일단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가 최근 일본에서 대 히트 치고 있듯이, 일본 게임도 한국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개발을 적극적으로 장려할 생각이다. 이미 우리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한국으로 가서 개발자들을 위한 모임을 열고 있다. 이런 것은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는 없었던 특별한 경우다.”
( 東京=崔洽특파원 pot@chos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