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주연과 조연,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게이머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특히, 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작품 밖에는 기획자,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은 게이머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선사하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들어 줍니다.때론 주인공, 때론 친구, 때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킨 개발자들까지 게임에 관련된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습니다.[편집자 주]

창작물에서 흔히 나오는 '떠벌이'의 속성은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약방의 감초처럼 극의 분위기를 밝고 가볍게 환기시켜주는 분위기메이커, 다른 하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을 놀리는 탓에 짜증을 불러오는 비하 캐릭터죠.
아주 가끔씩 위장전술로 떠벌이 캐릭터를 사용해서 뒤통수를 크게 치는 최종보스도 있긴 하지만 십중팔구 떠벌이의 종착지는 적당한 수준의 조연 또는 중간보스 정도가 일반적이죠.
그런데 여기에 어지간한 주연들 뺨치는 존재감의 떠벌이가 있습니다. 능력도 보잘 것 없고 입만 열면 호감도가 팍팍 깎이는 말만 골라서 하는데도 묘하게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고 시리즈 내내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개근상 수상자이자 주인공부터 최종보스까지 모든 역할을 그랜드슬램해버린 보더랜드 시리즈의 숨은 주인공 '클랩트랩'입니다.

판도라 행성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시열대 순서로 나열한다면 그에게 주어진 첫 역할은 보더랜드 1의 도입부에서 판도라 행성에 막 도착한 볼트 헌터들을 맞이하는 첫 NPC입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게임에서 처음 만나는 NPC의 숙명은 주인공과 함께 여정을 함께하는 파트너 혹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마을 사람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는 게 일반적인데요.
약간 특이하게도 이 시점의 클랩트랩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닌 양산형 안내 로봇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기에 출연빈도는 꽤 높지만 서사와 관련하여 큰 비중을 가져가지는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간호순'과 비슷한 포지션을 가져간다고 볼 수 있었죠..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해서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번개 맞고 오작동한 게 원인이라고 해서
심히 보더랜드스러운 나사 빠진 전개처럼 보였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말이죠
다만 1편의 엔딩에서는 가장 처음에 볼트 헌터들을 반겨주던 클랩트랩이 번개를 맞더니 메인 카메라의 색깔이 붉게 바뀌며 불길한 암시를 남겼고 1편의 DLC '클랩트랩의 신 로봇혁명'에서는 인간에게 지배당하고 억압받는 다른 클랩트랩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최종보스가 되어 볼트 헌터들을 가로막습니다.
다만 최종보스가 되었다고는 해도 근본이 클랩트랩이라서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이래저래 강력한 기계 몸을 제조하고 갈아타면서 볼트 헌터들을 압박한다는 계획은 그럴싸했지만 1편 종료 시점, 최고의 장비와 기술을 갖춘 볼트 헌터들을 상대로는 뻑하면 터져나가며 야라레메카스러운 허접한 모습만 노출하고 있죠.
그나마 최종보스전에 해당하는 MINAC(마이낙) 형태는 난이도가 좀 있지만 마이낙을 박살내고 나오는 본체 클랩트랩은 허약하기 짝이 없어 순식간에 차가운 바닥에 눕히고 리셋 버튼을 눌러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와중에 '익스떠미네이뜨'를 외치면서
영드 '닥터 후'의 우주 최강 후추통 로봇 '달렉'을 충실하게 패러디하는 중
그렇게 리셋 버튼이 눌리고 반란 사건으로 인해 1기만 남기고 모든 클랩트랩이 폐기 처분됐지만, 1편 DLC에서 살아남았던 마지막 반란분자이자 이제는 유일무이하게 된 클랩트랩이 인류 전체 대신 제조사인 히페리온으로 칼끝을 돌렸고 핸섬 잭의 폭거에 맞설 볼트 헌터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2편의 주된 내용입니다.
스토리 진행 관련 주요 임무를 맡기면서 이전보다 얼굴도 자주 비추고 복수귀 캐릭터로 비중을 챙겨갈만한 찬스도 있었지만 여전히 멍청하고 도발적인 언사를 자주 내뱉는 탓에 1편과 비슷한 굴러다는 조연 정도에 그쳤습니다. 최종결전에서 다리 대신 바퀴만 달려 있어 계단을 못올라간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빠지는 어이없는 상황은 덤이고 말이죠.

참고로 클랩트랩을 비하하는 모두에는 문제의 '핸섬 잭' 뿐만 아니라 '프리 시퀄' 게임 본편도 포함됩니다
정말 이딴 똥캐를 하겠다고요?
어쨋든 2편에서 핸섬 잭이 의도를 가지고 그를 살려놓았다는 이야기에 대한 떡밥이 풀리고 이를 다루는 후속작인 '더 프리 시퀄'에서는 아예 핸섬 잭과 함께 최종보스 출신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명예를 얻게 됩니다.
여기서 실은 플레이어였던 '볼트 헌터'의 시선에서 비춰지던 짜증나는 떠벌이 클랩트랩이 실은 모두에게 똑같이 미움받는 비하 캐릭터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게 되지만, 그래도 프리 시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된 클랩트랩은 게임적 허용으로 계단 오르기가 가능하며 플레이어의 실력 여하에 따라서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지옥의 기계병기가 될 수 있어 주인공다운 위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프리 시퀄을 기점으로 클랩트랩은 메인 스토리와 관련된 중요한 단서에서 거리가 먼 캐릭터가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내리막길만 남게 됐습니다. 2편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3편 시점에서는 망가진 동체를 땜질해가면서 연명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해결사 일을 오래 헀음에도 입지가 불안정한 것인지 주변으로부터의 대우가 좋지 못하고 그와 관련된 서브 퀘스트조차도 안구에 습기가 차오르는 불쌍맨 시츄에이션들이 가득합니다.

클랩트랩은 친구가 필요해요(광고)
특히 자신처럼 생각하는 로봇 친구가 필요해서 여성형 동형기 '베로니카'를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차였다는 에피소드는 아예 클랩트랩의 왕따 이미지에 쐐기를 제대로 박은 것인지 4편 시점에서 여기저기 친구가 되어달라고 이메일을 뿌리고 다니다가 스팸 메일을 보내는 악성 이용자로 분류됐다는 설정이 공개됐습니다.
제작진도 공식 트레일러에서 '친구 없는 클랩트랩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 보더랜드 4를 구매하라'는 약 한 사발은 한 것 같은 슬로건을 거는 한편 게임 내에서는 클랩트랩의 음성을 꺼버릴 수 있는 정신나간 옵션을 추가했는데요. 지금까지 쌓인 업보가 있다고는 해도 이제는 철저히 동네북 취급이 평균이 되어버린 클랩트랩에게 구원은 찾아올 수 있는 것일까요?
클랩트랩의 친구가 되어주실 분이 있다면 부디 음성을 끄기보다는 그의 넋두리를 들어주세요. 인내심 강한 볼트 헌터들도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클랩트랩 꺼라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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