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니케 신년 이벤트 'ARK GUARDIAN'에 대한 감상을 담았으며 높은 수위의 스토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ARK GUARDIAN 스토리 이벤트 BGM - Nearly White | 승리의 여신: 니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그 승리를 위해 희생된 이들의 불편한 이야기는 흔히 신화라는 이름 뒤에 가려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승리의 찬가가 아니라 비참한 몰락의 서사라면 어쩌면 더더욱.
어떤 이의 짧은 평화가 거대한 시련의 파고 앞에서 으스러질 때, 그 파편은 독자의 심장에 깊숙이 박히게 된다. 본디 비극이란 누구보다 하얗고, 순수하고 고귀한 존재가 자신의 신념을 고고하게 지키는 동화 속에서, 그 명명한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들 때에 비로소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므로.

'승리의 여신: 니케'가 3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토해낸 갓데스 이야기의 정점, 'ARK GUARDIAN'은 인류를 위해 스스로 제단에 오른 여신들의 가장 처절하고도 장엄한 장례 행진곡을 연주함과 동시에 끝내 거짓 속에 가려진 신화의 뒷면을 가장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들춰낸다.
이번 에피소드는 이미 패배한 인류의 마지막 보루 '방주'의 문을 닫는 '밀봉', 그 짧고도 긴 찰나를 조명한다.
시점으로는 '레드 후드'의 이야기를 다뤘던 'RED ASH'와 '도로시'의 이야기를 다룬 'OVER ZONE' 사이의 이야기이므로 도입부와 결말이 정해져 있는, '갓데스' 스쿼드 영웅 서사의 중심을 과감하게 다뤘다.


방주의 밀봉을 위해, 지상에 남은 인류를 위해 마지막 작전을 수행하는 '갓데스' 스쿼드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불행해지는 운명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숭고한 희생뿐이었다.
갓데스 스쿼드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더, 최초의 니케이자, 최강의 니케, '승리의 여신'들의 '승리의 여신', '릴리바이스'의 서사는 이번 이야기의 가장 아픈 심장부다. 수많은 영웅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예감하고 있는 그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바로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 위로 얹어진 헤어날 수 없는 비극의 굴레인 셈이다.


죽음을 앞둔 '릴리바이스'에게 백합이 가득한 꽃밭을 선물한 '스노우 화이트'가 눈물을 참아가며 함께 웃어 보이는 장면, 그 순간만큼은 최강의 니케가 아닌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행복해하는 '릴리바이스'의 모습은 이미 그들이 기꺼이 이별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이 의미하는 '순수한 사랑과 희생'처럼, 릴리바이스는 자신의 바디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직감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연인과 동료와 인류를 위해 자신을 불태운다. 바디가 붕괴되고, 여느 인간처럼 피를 쏟아내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최후의 최후까지, 그녀는 최강의 니케라는 잔인한 족쇄를 스스로에게 채웠다.
특히, 갓데스 지휘관의 이름을 작중 처음으로 부르며, 사랑하는 이에게 무엇보다 '아픈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을 때, 끝을 예감한 순간에서야 자신의 마음을 입 밖으로 황급히 토해내야 했던 '앤더슨'의 비명같은 읊조림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이별 장면은 어떠한 수식어도 없이 오직 '사랑한다'는 고백만으로도 가장 고귀한 가치를 증명했다.


'릴리바이스'는 갓데스의 리더이자, 언니이자, 연인으로서, '승리의 여신'으로서 인류를 지켜내고자 하고, 지휘관은 '연인'이 사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각자의 어둠 속에 남겨지는 길을 택한다. 그것은 죽음보다 깊은 헌신이었고, 사랑이란 비극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지점이었다.
그녀는 오로지 '쓰임'만을 위해 죽음이 확정된 채 만들어진 자신의 비참한 삶을 온전히 지탱하던 유일한 관객, '앤더슨'을 방주라는 안전한 감옥에 밀어 넣고, 홀로 남아 따뜻한 볕에서 믿음직스럽게 성장한 자신의 '동생들'을 바라보는 관객이 되어 조용한 최후를 맞이한다.
니케도, 인간도 기술의 혜택만 받을 수 있다면 백 년도 더 살 수 있는 니케 세계관에서 '승리의 여신'이 불사르고 간 시간은 고작 2년 남짓. 그녀는 자신의 2년을 불살라 인류의 백 년을 지켰다.

니케들의 '사고 전환'은 이번 이야기에서 단순한 설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플레이어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켜본 인물들의 자아가 서서히 마모되고, 깎여나가는 과정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강렬한 정서적 진동이므로.
든든한 동료이자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레드 후드'와의 이별을 채 극복하기도 전 '릴리바이스'의 죽음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상실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던져진 '스노우 화이트', '홍련', '도로시', '라푼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지고 재구성되고, 비로소 진화한다.

'스노우 화이트'는 더 이상 순수한 소녀로 남을 수 없었다.
어린아이 같던 '스노우 화이트'가 오로지 랩처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절개하고, 랩처의 부품을 자신의 몸에 이식하며 '인간성'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허물고,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하는 역설과 마주한다. 그녀가 짊어진 무거운 화기는 지키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속죄의 무게다.

불같은 성정의 '홍련'은 불같은 투쟁심을 사그라뜨리고 평온을 택했다.
얼핏 '여유'라고 느껴지는 그녀의 평온은 성숙이 아니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의 체념에 가깝다. 자신의 꿈이자 자부심이었던 '언니 장화', 또, 자신을 이끌어준 '릴리바이스'의 여유를 닮아가는 그녀의 검무는 이제는 곁에 없는 이들을 향한 사모곡에 가깝다.

그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붕괴되었고, 붕괴된 잔해 위에 새로운 자아를 세웠다.
갓데스의 '스노우 화이트'가 파이오니아의 '스노우 화이트'의 대사를 읊조리는 순간. 이는, 단순히 강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버림으로써 한계를 신념으로 치환해 내는 비극 속에서 피어난 성숙이었다.
이 비극을 완성하는 최후의 장치는 '버려짐'이다. '승리의 여신'들에게 돌아온 것은 환대가 아닌 철저한 외면이었다. 플레이어가 기억하는 승리의 기록들, 영웅담은 차갑게 식어버린 금속 문 너머로 사장된다.

우리를 승리의 여신으로 대우해달라-고 연약한 믿음을 읊조리며 방주의 응답을 기다리는 '도로시'의 마지막 보고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몰락이다.
강인한 갓데스의 동료들이 각자의 편리한 기억 뒤로 물러나고 말았을 때에도, 갓데스의 리더 대행으로써 이 세상에서 홀로 이 모든 비극을 '사고 전환' 없이 견뎌내야 했던 '도로시'. 이후 그녀에게 닥칠 더 처절한 비극(OVER ZONE)을 자연스레 연상시키면서 이 영리한 서사는 배신당한 헌신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꺼내든다.
앞서 말했듯 '아크 가디언'은 과거 어느 한 시점의 이야기이며, 그 시점은 니케 팬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시점, 즉, 시작과 결말이 이미 모두 알려진 이야기다. 플레이어는 이미 이들이 방주로부터 배신당할 것을, 그리고 황야의 순례자가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확정된 결말로 치닫는 세련된 내러티브가 주는 감동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신화 속 영웅의 발자국이 창대한 이유는 그 끝을 알면서도 내딛는 그 지독한 신념에 있다. 갓데스 스쿼드의 여정 역시 그러하다. 여신들에게 낙원이 되어 줬어야 했던 방주의 문은 닫혔고, 그녀들은 신화에서 지워진 이방인이 되었다.
하지만 처절했던 사투의 흔적, 포기하지 않고 관철한 처절한 사랑의 흔적은 백여 년이 지난 이 순간, 지상의 흙먼지와 함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을 향해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김규리 기자 gamemkt@chosun.com] [gamechosu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