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거대한 장애물, 고난과 역경, 성취해야 할 목표, 대자연, 수호자, 민족의 뿌리, 국가... 누구에게 어떤 의미이든, 많은 사람들은 정상을 향한 도전과 성취를 위해 산에 오른다.
흔히 사람들은 '게임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늘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불철주야 게임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예외가 있듯 게임개발자들 중에도 '아웃도어'파가 있다.
여기, 산이라는 대자연 속에서 뭔가를 찾는 게임 개발자들이 있다. 'Developer VS. Wild' 원정대는 게임개발자들의 등산 모임. 크고 작은 게임개발사 사람들이 모여 매주 우리나라 곳곳의 산을 누비고 있다.
어느 화창한 일요일, <게임조선>이 그들의 산행에 동행했다.
오늘 'Devoloper VS. Wild' 원정대가 오를 곳은 서울 남쪽에 있는 '청계산'. 이 산은 신분당선 판교 근처의 '청계산입구'역에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길게 뻗은 산줄기는 수원까지도 닿아 있다.
아침 9시, '청계산입구' 역에는 등산객들이 바글바글하다. 어린아이들부터 대학생, 젊은 부부, 어르신들의 등산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즐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목적지는 청계산 입구 앞의 굴다리. 원터골이라고 불리는 이 동네에서 '만남의 장소'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 이 굴다리가 집합장소
▲ 굴다리 밑에서는 인근 주민들이 산나물, 채소를 팔고 있다
금요일의 봄비, 토요일의 짧은 눈발 때문인지 이날 모인 원정대원은 많지 않았다. 원정대장인 바닐라브리즈의 오영욱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로드컴플릿의 배정현 대표, 플라스콘의 조영거 대표, 그리고 <게임조선>을 포함해 모두 넷. 우리는 따뜻한 어묵으로 배를 채우고 저만치 아득한 곳의 청계산 꼭대기를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청계산은 오르기 쉬운 편에 속하는 산으로, 이번에 선택한 코스는 청계산 입구로 올라가 매봉을 거쳐 원터골 옆길로 내려오는 길이다. 동네 뒷산처럼 아담한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정상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 입구는 무난한 언덕길이었다
가장 선두에서 걷는 건 촬영을 위해 앞서가야 했던 <게임조선>. 그 바로 뒤를 플라스콘 조영거 대표가 잰 걸음으로 따라 잡았고, 로드컴플릿 배정현 대표와 오영욱 원정대장이 든든하게 뒤를 지켰다.
조영거 대표는 그동안 차경묵 공동대표, 플라스콘 식구들과 함께 신작 '체인팡'을 출시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많은 블록을 연결(체인)시켜 터트리는 퍼즐 게임 '체인팡'은 최근 화제인 모바일 게임 플랫폼 '다음모바게'를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임을 내놓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한지도 불과 사나흘이 지났을 뿐이다. 지금은 어떤 기분일까?
"이제 다음 버전 준비해야죠. 티스토어나 이런 다른 마켓 버전, 앱스토어요?"
플라스콘의 '체인팡'이 '다음모바게'의 첫 라인업에 속한 까닭에 우리는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야기가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숨이 차오른다. 대화를 잠시 멈추고 걷는 데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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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앞서 가는 숙련된 조교(?) 조영거 대표
지상에서 제법 멀어졌을 때, 첫 갈림길이 나왔다. 우리가 향할 매봉은 왼쪽 갈림길을 따라가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원정대는 갈림길을 지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기나긴 계단을 올랐다. 묵묵히 산을 오르던 조영거 대표가 기운을 북돋우는 한 마디를 던졌다.
"여길 우린 매출 계단이라고 불러요. 계단 하나 올라갈 때마다 매출 천 만원씩 오른다고."
▲ 일명 '매출계단', 긴 계단이다
계단이 끝나니 작은 쉼터가 눈에 띈다. 잠시 쉬어갈 때다. 원정대장이 등산가방에서 1.5리터짜리 물병을 꺼내 놓는다. 그 물로 목마른 대원들이 목을 축인다.
"500밀리리터는 부족하고, 1리터는 안 팔잖아요."
원정대장은 일정 기간마다 돌아가면서 맡는다. 오영욱 원정대장은 조영거 대표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았다. 듬직한 인상의 오영욱 원정대장은 모바일게임 업계의 유망주 바닐라브리즈(대표 한다윗) 소속이다. 바닐라브리즈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자사 애플리케이션들로 누적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20억 원의 투자도 유치해 낸 회사다.
이미 결혼해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오영욱 원정대장이 묵묵히 원정대원들의 뒤에서 지켜보는 한, 원정대원들은 안심하고 산행을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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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든든한 원정대장의 뒤태
쉬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다 선두를 놓치고 배정현 대표와 나란히 걷게 됐다. <게임조선>이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부산 'ICON2011'에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스콘에 취재 갔을 때, 'Man VS. Wild'를 패러디한 'Developer VS. Wild' 영상에 그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한참을 웃으며 반가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 영상은 <게임조선> 독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배정현 대표의 회사 로드컴플릿은 아직 바쁘다. 플라스콘과 마찬가지로 신작 '범핑베어'를 '다음모바게'에 출시하기 위해 한창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 '게임개발자VS자연' 영상
'범핑베어'는 자신의 곰과 근처의 다른 이용자의 곰을 데이트시킬 수 있는 위치기반 서비스를 접목한 게임이다. 원래 해외에서 영어로 서비스했던 게임을 국내에 선보이기 위해 언어부터 색상, 시스템 등을 모두 손보고 있다.
"이제 게임의 목표가 좀 더 간결해질 거에요. 랜덤으로 정해지던 곰의 외모를 직접 정할 수도 있고, 곰 한 마리를 더 오랜 시간 키우며 다양한 걸 시도해볼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이전 버전은 상용화게임치고 너무 유료 콘텐츠가 약하다는 평을 받았었는데, 이번 유료화 모델은 중국 대형 게임사로부터 호평 받기도 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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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체인팡', 오른쪽 '(구)범핑베어'
정상까지 15분쯤 남았을 무렵, 무난했던 등산길이 겨울의 산길로 돌변했다. 그늘진 산비탈길에는 녹지 않은 눈과 얼음이 잔뜩 남아 있었던 것. 고도가 높아질수록 얼음이 늘어났다.
오랜만의 산행에 제대로 된 장비조차 챙겨가지 않았던 <게임조선> 기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나뭇가지와 밧줄에 의지에 아슬아슬한 산행에 도전해야 했다. 장비를 가진 원정대원들도 조금은 고전하는 모습이다.
▲ 스틱에 의지해 미끄러운 길을 헤쳐 나갔다
힘든 빙판길을 따라가다 보니,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듯 원정대의 앞 두 개의 신기한 돌이 나타났다.
하나는 '돌문바위'. 청계산의 정기를 담고 있다는 이 바위는 암석이 비스듬하게 세워져 마치 문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항상 이곳에서 염불을 한다는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정대원들은 돌문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청계산의 정기를 한껏 받고 위로 향했다.
▲ 돌문바위 표식
▲ 도는 방향이 정해져 있어 거꾸로 돌면 혼난다.
다음은 '매바위'. 하늘에 닿을 듯한 곳에 작은 암석이 놓여 있다. 이 곳에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랐기 때문에 장비 없이 도전했다가는 옆의 가파른 계곡으로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매바위' 근처는 가장 어려운 길목이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미끄러져 다칠 판이지만 우리의 대화는 계속됐다. '게임'과 '게임업계', 좋아해서 일로 삼은 이 화제는 언제 이야기해도 날 새는 줄 모를 소재다.
"애플이 게임간 통화를 허가한다는데, 예를 들면 '체인팡' 캐시를 '범핑베어'에서 쓸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게임을 여러 개 가진 회사가 유리할 것도 같지만 애플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
▲ 매바위
'매바위'를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매봉'의 정상이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아직 얼음철갑을 두른 소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살며시 눈을 흩뿌린다. 저 멀리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최근 비가 내렸던 덕분에 먼 곳까지도 선명히 보였다.
매봉 정상 비석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등산객들을 등지고 우리도 기념 사진을 찍었다.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는 마음을 담았다. 새로운 게임을 만들 때마다 이번 산행처럼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끝내는 무사히 성공할 터다.
▲ 정상에서 다 함께
비문은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다.
"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되노라"
사진을 찍자마자 원정대원들이 어디론가 바삐 움직인다. 눈 투성이의 험난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는 대원들을 따라 구르듯 내려가보니 작은 천막 앞에 줄 서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 산 정상의 막걸리 집이다.
우리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따뜻한 삶은 계란도 하나 까먹었다. 막걸리 빛깔이 참 곱고, 맛은 시원하고 달콤하다. 힘겨운 산행 후에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 또한 등산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 험한 길목을 내려온 곳에
▲ 사람들이 모여 있는 까닭은,
▲ 이 막걸리 한 잔의 상쾌함 때문이다
이제 막걸리의 여운을 느끼며 산을 내려가야 한다. 이때, 조영거 대표가 잠시 멈춰 섰다.
"잠깐만요, 저 아이템 착용 좀 하고..."
그가 꺼내든 것은 등산용 아이젠. 등산화에 착용해 빙판길 미끄럼을 방지해주는 것으로, 자동차의 '체인'이랑 비슷한 등산용품이다. 한 쪽 발에 아이젠을 착용한 조영거 대표가 나머지 한 쪽을 <게임조선>에게 선뜻 건네주었다. 호의에 감사하며 오른쪽 발에 아이젠을 착용하니 빙판길의 난이도가 절반은 쉬워진 기분이다.
▲ 신고 한 발 내디딘 순간, "어머나, 이건 사야해!"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셜록홈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유명 추리 소설인 '셜록홈즈'는 최근 저작권 시효가 만료되어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대원들은 게임개발자들답게 '셜록홈즈'의 게임화는 어떻겠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지금까지 나온 콘텐츠들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누군가 영국, 미국, 일본의 '셜록홈즈'를 비교한 걸 봤는데, 일본만 달라요. 미소녀야..."
▲ 내려오는 길엔 원정대장이 앞장서 길을 텄다
내려가는 구간도 오르막길처럼 빙판길이 이어졌다. 누군가 딛고 간 길도 반쯤 녹은 얼음 탓에 안전하지만은 못했다. 배정현 대표는 스틱을 가지고 눈 사이를 헤쳐나가며 '길 아닌 길'을 지나는 과감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정대장은 보다 안전한 길로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 갈림길에 선 대원들을 안내했다. 그곳은 양지바른 계단길인데다 바람도 세차게 불지 않았다.
다만, 그 길에는 흙탕물로 뒤범벅된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삶이든 등산이든 늘 깨끗한 길로만 다니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빙판길에 넘어질 위기를 맞느냐, 진창을 헤집고 나아가느냐,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발 밑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아래로 향할 때, 견공들이 여럿 나타났다. 대형견도 아닌 작은 애완견들이 주인을 따라 눈 쌓인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강아지도 할 수 있는 등산에 쩔쩔 매는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조금 더 기운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눈 밑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용감히 지나가본다
▲ 저를 찍는 줄 알았던지 빤히 바라보았다
원정대원들은 아직 청계산도 다 내려가지 못했는데도 다음 산행지에 대해 고민했다. 북한산도 오르고 싶고, 수도권을 떠나 더 먼 곳의 산지를 밟아보고 싶다고도 했다.
"우리 매번 이렇게 오르내리는 것보단 종단도 한 번 해보죠, 이의정 대표님이 계셔야 하는데..."
이들이 그리워 하는 '이의정'이란 인물은 애드프레스카의 이의정 대표. 그는 해박한 산행 지식과 근성으로 원정대원 사이에 유명하다. 이번에는 발목을 다쳐 참가하지 못했다. 애드프레스카는 애플리케이션 크로스프로모션 기업으로 게임업계와도 연이 깊다.
그 외에도 원정대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다. 모두가 게임개발자인 것도 아니다. <게임조선> 같은 기자도 있고 대형 게임사 직원도 있다. 원정대에겐 명함보다 산에 오르기 위해 모인다는 공통된 목표가 중요한 모양이다.
▲ 무사히 등산을 마친 원정대원들
왼쪽부터 조영거 대표, 오영욱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배정현 대표
내려가는 데는 올라갈 때와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해가 중천이다. 인근 식당에서 닭한마리에 원기를 북돋우는 인삼을 넣어 든든히 배를 채웠다. 막걸리 한 잔 곁들이는 건 기본 센스다.
우리는 오늘 나눈 많은 이야기를 산에 남기고 각자의 돌아갈 곳으로 향했다. 헤어짐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이번 산행도 언제나와 같은 일상일 뿐이고, 이미 이겨낸 한 차례의 시련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이 게임개발자들의 거침 없는 산행은 계속될 것이다.
[이현 기자 talysa@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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