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의 기다림이 있었다. 23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둔 프로듀서가 말하길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테니 힘을 모아달라'
프로듀서를 믿고 그가 지금까지 만든 게임을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들 그 프로듀서를 응원하며 긴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20달러짜리 페퍼로니 피자였다. 기자가 2016년 가장 인상깊은 게임으로 꼽은 주인공은 바로 '마이티No.9'이다.
◆ 그 게임이 우리를 현혹한 과정
기자는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좋아한다. 플레이 도중 착착 감겨오는 손맛과 어려운 스테이지에 불타오르는 도전 욕구, 클리어했을 때의 성취감 등을 정말 좋아하기에 콘솔, 아케이드, PC/온라인 게임을 불문하고 오래 붙들고 두들기는 것들은 결국엔 다 액션 게임이다. 때문에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던 캡콤의 '록맨 시리즈'는 본인에게 있어 감히 인생게임이었다고 자부할만한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리즈들이 하나둘씩 완결 나거나 중단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시리즈가 명맥이 끊어져 가는 중에 록맨 10이 발매된 2010년 말 록맨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프로듀서 이나후네 케이지의 퇴사와 함께 '록맨 DASH 3'의 개발 중단 소식을 듣고 기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록맨 팬들은 캡콤을 원망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사실상 전 시리즈가 오와콘(끝난 콘텐츠) 취급받고 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나후네 케이지가 록맨 풍의 런앤건 액션 게임을 만든다더라'는 소식이었다. 금세 그가 차린 회사 콤셉트가 킥스타터에 올려둔 프로젝트 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고 홍보 비디오에서 말한 내용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나후네 케이지라고 합니다. 23년간 캡콤에서 일했으며 귀무자, 데드 라이징 그리고 록맨 등 다양한 게임을 개발해왔습니다. 현재 콤셉트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皆さんの力が必要です)"
▲ 이 때까지만 해도 '엉엉, 날 가져요!'라면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었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선택한 킥스타터는 크라우드 펀딩의 일종이다. 예술가, 음악가, 영화 제작자, 디자이너를 비롯한 모든 창작활동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게임도 포함되어 있다.
이 킥스타터를 통해 많은 개발자들이 순수하게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구현하는데 도전했으며 후원자(Backer)들은 이러한 개별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후원금과 응원의 말을 남기며 이들을 지지하는 식으로 좋은 게임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
▲ 솔직히 좋은 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얼마든 투자할 용의는 여전히 있다.
이렇게 킥스타터를 거쳐 만들어진 '언더테일'은 대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당초 5,000 달러(한화 기준 약 600만원 전후)만 모을 생각이었던 제작자 토비 폭스는 10배를 넘긴 금액을 후원받은 것도 모자라 출시 후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으며 2015년 8개의 GOTY(올해의 게임)을 수상하여 6위에 등극하는 등 극찬을 받았다.
▲ 아마 제작자인 토비 폭스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위쪽에 언급한 내용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바로 '언더테일(Undertale)은 이 킥스타터로 대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는 부분
◆ 다들 저리 비켜 이 구역의 기부왕은 바로 나야!
후원 당시만 해도 마이티no.9(마넘나)는 투자해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는 게임이었다. 록맨 시리즈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을뿐더러 마넘나의 개발이 진행 중인 와중에도 록맨 제로 시리즈의 개발을 담당한 인티 크리에이츠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한 '푸른 뇌정 건볼트'가 제법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제작진이 만들고 있던 마넘나에 거는 기대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 팬들에게서 후한 점수를 몰아받았다곤 해도 상당히 선전한 건 사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은 기부경쟁에 더욱 불을 붙였다. 본래는 게임 소프트를 획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 20달러만 후원한 사람들이 더 많은 기부를 통해 특전을 얻으려고 돈을 왕창 쏟아붓기 시작한 것이다.
록맨을 하던 당시 어린이, 청소년이었던 그들이 다 큰 어른이 돼서는 몸과 마음처럼 엄청나게 성장한 경제력으로 지원사격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마넘나의 킥스타터는 3,845,170달러라는 어마무시한 액수를 끌어모았고 이나후네 케이지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1만 달러를 후원한 슈퍼 후원자도 무려 4명이나 있을 정도였다.
팬들이 이 게임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는지 알 수 있겠는가?
▲ 지금 이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지 인터뷰나 한번 해보고 싶다
기자도 마음 같아서는 훨씬 더 투자하고 싶었지만, 당시 영 좋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많은 금액을 할애하기 힘들었고 정말 좋아하는 시리즈라면서 딱 게임 소프트만 얻을 수 있는 20달러만을 후원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했다. 그 결과 필자는 20달러를 주고 페퍼로니 피자에 그친 현명한 소비자가 됐다.
▲ 전문 체인점에서 파는 페퍼로니 피자가 2만원 전후다. 마넘나의 양심적인 가격에 감탄해보자.
◆ 그렇습니다. 이 게임은 망했습니다.
▲ 마이티No.9 인트로 스테이지 플레이 영상
킥스타터와 같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나온 게임이 모두 갓겜이면 좋겠지만, 그 결과물이 전혀 아니올시다 수준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필자가 처음으로 펀딩에 참여한 프로젝트는 멈춰버린 록맨 시리즈의 부활에 품고 있던 기대감에 제대로 뒤통수를 때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게임에 대해 지적할 내용이야 많지만, 일단 플레이어 입장에서 가장 열 받는 이유는 게임의 질적 완성도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모금액을 오롯이 개발에 모두 투자했나 아니냐의 이슈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고 개발 외적으로도 분명 자금이 필요하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마넘나는 게임의 완성도 부분에서만큼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됐다.
▲ 우리가 원했던 것
▲ 실제로 나온 것
최초로 공개한 콘셉트 아트에는 '이 페이지에 올라온 모든 이미지는 콘셉트 아트일 뿐이며 실제 게임의 내용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분명 명시되어 있지만, 콘셉트 아트는 후원자들이 원하는 완성도의 표준에 가까운 물건이다. 모금액을 봐서라도 더 나은 그래픽과 사운드를 보여주는 게 당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출시연기를 하며 추가 모금까지 한 물건이 저렇게 나왔으니 화가 안 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물론 록맨 시리즈에 대한 팬심으로 후원을 한 사람이 아닌 일반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저게 그리 화낼 정도의 완성도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 게임을 구매한 대부분은 그 후원자들이었으며 일반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간간히 발생하는 텍스쳐의 깨짐이나 과 같은 현상은 공통적으로 지적당하는 부분이다.
▲ 그는 불후의 명대사 "뭔 판단잉교, 돈을 시궁창에 내버릴끼가?"를 직접 실현했다.
◆ 그 안에 록맨의 혼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다
너무 두들기기만 했으니 그래도 좋았던 점을 꼽자면 록맨스러운 분위기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칭찬 같지 않게 들리긴 하지만, 스테이지 내내 깔려있는 뭐 같은 급사구간이라던가 일반 자코(졸개)들의 디자인이나 공격형태를 보면 이 게임은 심히 록맨스럽다.
▲ 가시 트랩, 낙사, 압사 등 즉사 패턴이 판치는 걸 보니 정신적 후속작이 맞긴 맞다
지상/공중 대시의 사용 횟수 제한이 딱히 없어서 게임 템포가 클래식 록맨에 비해서는 빠르기 때문에 위화감을 느낄 수 있지만, 적재적소에서 특수무기를 잘 활용해야 지나갈 수 있는 구간이 많으며 적당히 산화하면서 패턴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보스전이 정말 재미있다. 사운드 플레이가 강하다면 보스의 대사를 듣고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록맨 클래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심지어 <록맨 X 시리즈>처럼 뻔한 반전, 이로 인해 살짝 구멍 난 스토리, 대놓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떡밥도 들어가 있다. 좋은 부분이건 안 좋은 부분이건 확실히 닮은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뭐 록맨 시리즈의 뻔한 클리셰를 벗어나려는 시도도 나쁘진 않았다고 본다
◆ 올해의 게임을 털어내면서
마넘나의 발매까지 3년을 가까이 기다렸었다. 당연히 느낀 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사연도 많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필자가 생각하는 이 게임은 "팬들에게 추천했다간 욕을 먹을 게 뻔하고 일반인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구매하라고 추천하기엔 애매모호한 물건"이다.
▲ 마니아들에게만 팔릴 법한 물건이 마니아들에게 외면받는다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는 것
기대를 한 만큼 실망이 컸기 때문인지 올해 내내 이 게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고 주변의 겜덕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이번 기사를 통해 허심탄회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만큼 이 녀석에 대해서는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내년에는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 물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