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손사레를 쳤다.
국내 1인칭 총싸움(FPS)게임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게임도 두 손을 털고 나왔던 시장이었다. 그런데 '감히' 2인자도 아닌, 흥행 실패작이 중국시장에 도전을 선언했다. 아무도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또 그런 시각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 격인 장인아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 PM은 이러한 외부 시선들을 개의치 않아했다.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그녀에겐 그것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피할 곳도 없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3년 현재 그녀는 물론 '크로스파이어'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던 찬밥 신세에서 지금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마이더스의 손',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흥행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장인아 PM, 아니 이제는 스마일게이트 그룹의 온라인 캐주얼게임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스마일게이트게임즈 대표가 중국에서 이룬 성과는 중국을 넘어 아시아 게임시장에서 신화처럼 회자되고 있다.
◆ 6년 만에 기획팀 대리에서 계열사 대표까지…
"그 때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네요. 굉장한 희열과 설렘으로 가슴이 벅찼던 시절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그게 현실이었을 때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동시접속자 수가 50만명, 60만명 점점 늘어나는데 기쁘기보단 무서운 마음이 들었어요. 텐센트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그 정도의 트래픽을 감당해 낼만한 서버나 엔진 등이 있을 리 만무했으니깐요. 중국 서비스 1년쯤 됐을 때에는 게임서버를 이틀 동안 닫아야했던 대형사고도 났었죠. 힘들면서도 보람찼던 건 맞지만 얼마나 가슴 졸였던 시간들인지,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네요.(웃음)"
최근 그녀의 집무실에서 만난 장인아 스마일게이트게임즈 대표의 첫인상은 소탈하고 꾸밈이 없었다. 연간 1조원(2012년 중국 기준)의 매출을 기록한 흥행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이끌고 있는 선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갈 만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화려한 미사어구를 섞어 '크로스파이어'의 성과를 추켜 세우기 보다 마치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담백한 어투로 스마일게이트 입사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장인아 대표와 스마일게이트의 인연은 2007년, 그녀의 나이 32살 때 시작됐다. 로시오(현 싸이칸엔터테인먼트)에서 애견 육성게임 '퍼피온'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중 서비스 종료와 함께 퇴사, 지인의 소개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대표를 만나게 됐다.
당시는 스마일게이트가 국내시장에 '크로스파이어'를 론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로,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제로에 가까웠다. 장 대표 역시 마음속으로 못내 '이름도 생소한 게임회사에 자신을 추천해 준 지인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고.
장 대표는 "사실 스마일게이트에 해외시장에서 성공해 보이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입사했던 것은 아니었다"며 "이전 직장에서 프로젝트 무산된 후 팀 전체를 들어내는 상황을 겪었는데, 사람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권혁빈 대표의 마음가짐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이름 없는 게임사라 면접도 성심성의껏 보지 않았는데, 면접 후에 조금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며 "한사람의 인력을 채용할 때 이 정도의 관심과 열정을 쏟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믿고 따를 수 있는 오너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앞선 직장들에서 프로젝트 무산으로 인한 팀 해체, 또 이로 인한 퇴사 등을 경험했었기에 권 대표의 진심이 더욱 피부로 와 닿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더욱이 장인아 대표가 이 회사의 임원이 아니라, 기획팀 막내급인 대리로 입사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 스마일게이트 성장 원동력은 '위기감'…귀를 열었더니 '대박'
그러나 권혁빈 대표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장인아 대표 입사 당시 스마일게이트 사정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던 때였다.
국내 온라인 FPS시장이 호황을 누리던 2007년 야심작 '크로스파이어'를 내놓았지만 이렇다 할 반향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참패했다. 장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멋모르고 덤볐다가 제대로 큰 코 다쳤다.
장 대표는 "게임은 개발과 사업이 50대 50으로 조화를 이뤄야하는데 당시엔 개발적인 부분으로만 접근을 시도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변칙요소로 자리 잡았다면 그냥 둘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 원리원칙만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기존 FPS시장에서 견고한 산을 쌓고 있던 '서든어택'과의 차별화 전략이 아닌 정면돌파을 선택했던 것과 상대적으로 고난도 콘트롤을 요구하는 게임성 역시 '크로스파이어' 한국 흥행실패의 원인이 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 때의 뼈아픈 경험은 고스란히 스마일게이트의 성장 밑거름이 됐다. 여기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구성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버무려져 성공의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실 스마일게이트 성공의 8할은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내 경우만 하더라도 30대 초반의 나이에 내세울만한 흥행 타이틀이 없다는 압박이 컸거든요. 중국 서비스를 앞두고는 게임성도 중요하지만 게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사실 '크로스파이어'는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높은 진입장벽으로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죠. 그래서 우선 우리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알리는데 초점을 맞추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게임에 처음 접속해서부터 플레이하기까지의 과정을 쉽게, 더욱 쉽게 뜯어 고치는 작업을 거듭했죠."
실제 '크로스파이어'는 중국 진출을 앞두고 게임 내에 많은 변화를 줬다. 우선 한국시장에서도 지적을 받았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로그인에서부터 게임접속, 플레이 방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이용자 중심으로 전면 개편했다.
플레이 패턴이 익숙한 개발자들은 왼손으로만 게임을 하도록 하고 평소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가정주부를 대상으로도 수차례의 테스트를 진행, 게임진행에 불편함이 없다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또 FPS의 공통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어지럼증과 총소리로 인한 투통 등을 개선하기 위해 고음역대를 사용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특히 중국의 낮은 컴퓨터 사양과 열악한 네트워크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서버구조를 기존의 P2P 대신 CS(클라이언트-서버) 방식으로 뜯어 고쳤다. P2P 방식은 빠른 동기화가 요구되는 FPS장르의 게임에 적합하지만, 중국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는 한명의 인터넷 속도가 느릴 경우, 다른 이용자들까지 렉을 겪을 수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2008년 7월 중국 서비스를 시작한지 3개월 만에 동시접속자 수 30만명을 기록한 데 이어 9개월째에는 100만명을 달성했다. 2011년 9월에는 300만명, 지난해 8월에는 동접 400만명의 신화를 써내려갔다. 중국을 포함한 북미, 남미, 동남아 등 글로벌 국가에서의 동접은 현재까지도 42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수를 고려하더라도 온라인게임 종주국인 국내 역대 최대 동시접속자 수가 62만6000명(메이플스토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실로 놀라운 수치다.
◆ "한국서 돈 벌 생각 없다…다만 '진심' 전하고 싶어"
이달 중순에는 국내 퍼블리셔와의 계약문제로 서비스 종료했던 이 게임의 국내서비스까지 재개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묵혀뒀던 체증도 해소했다.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나요? 국내시장에서 '크로스파이어'로 돈 벌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해외에서 어떤 좋은 성과를 내든 '크로스파이어'는 토종 한국게임이잖아요. 이용자수가 몇 명이든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죠. 거창한 차별화 전략이나 한국만을 위한 콘텐츠는 없습니다. 다만 '크로스파이어'를 사랑해주는 이용자 수가 10명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게임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비록 소수의 이용자라 할지라도 끝까지 '크로스파이어'를 즐겨주고, 서비스 재기까지 걸린 1년 반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준 이용자들에게 스마일게이트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다시금 돌아왔다는 게 장인아 대표의 이야기다.
실제로 '크로스파이어' 국내팀은 지난해 서비스를 종료할 때까지 게임을 즐겨준 이용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게임 테스트 및 서비스 일정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WCS '크로스파이어' 한국 대표 선발전 모집을 독려하는 등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는 "이젠 스마일게이트가 대형 게임사로 성장했지만 사실 돈만 많다 해서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크로스파이어'가 그랬고, 스마일게이트가 그랬듯 밑바탕에 진심과 열정이 깔려 있지 않다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큰 이벤트를 진행한다면 '크로스파이어'의 글로벌 동접을 두 배로 끌어 올릴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이러한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며 "지금은 기존의 이용자들이 불만을 갖지 않고 게임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과제"라고 덧붙였다.
◆ 스마일게이트게임즈로 더 큰 도전…크로스파이어 넘어 캐주얼게임 '맏언니'
장인아 대표는 스마일게이트에서 보낸 지난 6년의 시간을 '크로스파이어'와 동고동락해왔다. 인생에 있어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크로스파이어'와 관련된 일화도 빠질 수 없을 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장 대표는 스마일게이트그룹의 캐주얼게임을 책임지도 있는 스마일게이트게임즈 대표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지난 9월1일 설립된 스마일게이트게임즈는 '크로스파이어'를 비롯해 정식 후속작인 '크로스파이어2', 대전액션게임 '파이팅스타', AOS장르의 '펜타킬 프로젝트'를 개발중에 있다. 해외에서 외주개발중에 있는 프로젝트 관리와 함께 최근에는 해외업체와 유명 패키지게임을 온라인화 시키는 작업도 구상하고 있다.
"처음 입사해서 기획서를 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대표라고 해서 기획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도 누군가가 뭘 해주길 기대하기보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정말로 하고 싶다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로스파이어'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다양한 프로젝트로 더 큰 세상으로 뻗어 나갈 거예요.(웃음)"
[류세나 기자 cream53@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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