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처상향좀 | 2013-08-08 21:47
런처상향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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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여황
2013-08-1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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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김용환은 할아버지 김흥락의 영향을 받아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고자 1908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하여 김현동(金賢東)과 함께 적정(敵情) 탐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1911년에는 김상태(金尙台) 의진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11년 경상북도 순흥 상단곡 전투에서 김현동이 부상을 당하자, 그를 업고 예천군 유천면 중평리로 돌아왔다. 또 만주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거액의 군자금을 제공하였다가 일본 경찰에게 세 번이나 체포되어 고초를 치렀다.
1919~1920년경 김용환은 김원식(金元植)과 함께 만주 망명길에 올랐으나, 신의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다시 안동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921년에는 의용단에 가입하여 경상북도 지단(支團)의 서기로 활약하였다. 의용단은 김찬규(金燦奎) 등이 만주 길림의 군정서(軍政署)와 연결되어 군자금을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독립군 지원 단체였다.
주로 경상도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의용단은 경상북도 안동을 비롯하여 영천(永川)·군위(軍威)·영일(迎日)과 경상남도 창녕(昌寧) 등지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친일 부호들의 외면으로 인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1922년 12월 28일 김용환은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