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 출신으로, 상호군 김오문의 딸로 태어났다. 1427년, 자신보다 네살 어린 세자 향(후일
문종)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리되자 다급해진 휘빈 김씨는 세자가 자신에게 빠져들게 할 방책을 찾다가 갖가지 방술을 알게 되었다. 세자를 수발드는 궁녀들의 신발을 훔쳐내 그것들을 태워 재로 만든 다음
세자가 마시는 술에 그 재를 몰래 넣어 그걸 마시면 세자가 수발드는 궁녀들은 깨끗이 잊고 세자빈만 찾게 된다는 황당한 비방을 실행했는가 하면
뱀이
검열삭제할때 나오는 기운을 손수건에 묻혀서 그 손수건을 지니고 다니면 색기가 일어나 세자를 혹하게 할수있다는등의 갖가지 기기묘묘한 비방을 찾아다니고 그걸 실행에 옮겼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 모든 비방을 행한 일이 딱 들키고 말았는데, 원인인즉 세자를 수발들던 궁녀들이 자신들의 신발이 사라지자 비방을 행한것 때문이 아닌가라고 의심했고, 세자빈의 궁녀를 추궁하다 못해 결국 중궁전 상궁에게 모조리 고해바쳐서 파문이 일어났다! 결국 소헌왕후가 직접 세자빈의 궁녀를 국문해 세자빈이 온갖 해괴한 비방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어찌보면 현대인들의 관점에선 이해하기 힘든 일일수도 있으나, 세종이 이리도 엄격하게 처리한 이유는 유교적 도덕질서를 강조한 세종이 며느리가 투기를 하고 갖가지 해괴한 비방을 행한것 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기에 폐서인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을것이라 보인다. 하지만 세자가 세자빈을 돌보지 않은것도 책임을 피하긴 힘들 듯. 조선시대이니 세자한테는 별 책임을 안 물었지만.
(1414-1436)
조선 세종대왕의 두번째 큰며느리. 세자 향(후일
문종)의 두번째 부인이다.
봉여의 딸로
휘빈 김씨가 투기와 해괴한 방술로 인해 세자빈의 체통을 잃었다는 이유로 퇴출된 후 두번째로 들인 세자빈이었다. 휘빈 김씨의 전철을 생각해서 양순한 여인을 골라 세자빈으로 간택했고 소헌왕후는 직접 상궁을 지정해 순빈 봉씨에게
열녀전을 가르치게 하여 세자빈으로서의 심성을 기르는데 주력했다. 또 세자도
한 짓이 있던지라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세자빈을 들여다보는 등 나름 애를 쓴다고 쓰긴 했는데...
처음에는 별 탈이 없었지만, 슬슬 세자가 세자빈을 다시 멀리하기 시작하고 순빈 봉씨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세자는 도통 여자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인데 봉씨가 그런 세자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앵기면서 세자의 정나미를 떨어지게 만들었다.
단종의 친모였던 승휘 권씨(후일의 현덕왕후 권씨)가 세자를 배려하면서 편안하게 만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애당초 남자를 어떻게 사로잡을지에 대한것은 잘 몰랐던 모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자도 잘한 건 없다세자가 점점 세자빈을 등한시하면서 순빈 봉씨의 패악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세자빈의 체통도 잊고서 술에 쩔어 살았는가 하면 열녀전을 가르치던 상궁을 두들겨 패고 희롱하는등의 추태도 일어났다. 변태적 성향이 있었는지 화장실에 몰래가서
일보는 궁녀들을 훔쳐보았는가 하면 스카톨로지? 스스로 화장실에서 몰래 궁밖을 엿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순빈 봉씨가 세자의 아이을 갖지 못하자 당연히 별을 못보는데 딸 수가 있나 우려하던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고심 끝에 세자의 후궁 3명을 들이기로 결정한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승휘 권씨. 앞서 말했듯이 승휘 권씨는 세자를 편안하게 배려했고 여자를 두려워하기까지 하던 세자도 승휘 권씨에겐 마음을 열었는지 이후 권씨가 덜컥 회임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왕실 입장에선 원손이 태어날 수도 있는 경사였으나, 순빈 봉씨 입장에선 세자가 멀리해서 죽겠는 마당에 승휘가 회임을 했으니 위기감이 안들 수가 없었을터. 그래서 순빈 봉씨는 어거지로 세자를 데려와서 동침한뒤
자신도 회임을 했다고 구라를 치기 시작했다. 세자빈이 회임을 했다고 하니 당연히 세종대왕은 엄명을 내려서 세자빈에게 각별하게 대우를 하게 지시를 했다. 그렇게 순빈 봉씨는 챙길 건 다챙기다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양로연 개최로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잠시 멀어진 틈을 타서
유산되었다고 보고해서 가짜 임신쇼를 끝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선, 쇼가 아니라 상상임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처음엔
임신인 줄 알았는데 상상임신임을 알게 되자, 그걸 사실대로 밝히기가 뭐해서 시간을 끌다가 유산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승휘 권씨는
세자빈 입장에선 다행이도? 딸을 낳았으나, 이 시기 순빈 봉씨에겐 세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 이유는...
동성애의 세계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즉,
레즈비언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순빈 봉씨가 레즈비언의 정체성에 눈을 뜬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설이 지지를 얻는다. 첫번째는 자신의 시종이던 소쌍이라는 궁녀가 승휘 권씨의 시종이던 단지라는 궁녀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걸 알게된 순빈 봉씨는 소쌍에게 엄명해서 동침하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킨 것. 두번째는 반대로 소쌍이 순빈 봉씨를 유혹한 것으로 봉씨가 안마를 부탁했는데 안마를 빙자한 타고난 손기술로 봉씨를 생애 최초의
오르가즘에 달하게 한 게 원인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레즈비언 행각이 순빈 봉씨를 파멸로 몰고가게 된다. 소쌍과 그렇고 그런 사이이던 단지는 소쌍을 순빈 봉씨에게 뺏기자 격분해서 난리를 피우다가 중궁전 상궁의 귀에 들어갔고 보고를 받은 중궁전 상궁이 추궁하자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된 것. 상궁으로 부터 보고를 받은 소헌왕후는 큰 충격을 받았고 소쌍과 단지를 국문해서 모든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안 세종대왕도 충공깽이긴 마찬가지(...).혹설론 세자가 공부하는 곳 뒤편에서 둘이 자기 윗전을 두고 싸워서 세자가 알게 된 거란 소름 돋는 이야기도 있다.
당연한 결말로 세종대왕은 순빈 봉씨를 폐서인하고 궁밖으로 내쳤다. 친정으로 돌아간 그녀에게 기다리고 있던건 아버지 봉여의 칼날이었고 그대로
아버지에게 살해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게 된다. 다만 기록에 따라 봉여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든지 자결을 권하게 했다는 기록이 다르게 남아있다. 하여튼 그녀는 이렇게 짧은 삶을 끝냈고 애비인 봉여도 딸이 죽고나서 스스로 자결했고 세종은 두 사람의 장례를 치뤄주게 했다...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록에 의하면 사실 아버지 봉여는 그녀가 폐출되기 3개월 전 병사했으며 정작 그녀는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쌍과의 레즈비언 행각으로 미루어보면 그녀의 문제는 혹 섹스중독 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즉, 본래
레즈비언이었다기보다는 세자와의 소원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성욕을 채울 상대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게 아닐까라는 것. 현대라면 정신과 치료나 심리 치료를 통해 극복할 문제일지도 모르나, 유교적 도덕만을 강조하던 조선시대의 현실에선 용납되기 힘들 문제였을 터이다. 남성들이야 얼마든지 자신의 성욕을 채울 상대를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녀에겐 그런 것도 허락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훈민정음을 만들고 온갖 발명들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세종대왕에게는
흑역사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휘빈 김씨나 순빈 봉씨나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연히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테니아들이 고자기질이 있었던 게 원흉아닌가?그래도 사극
대왕 세종에서 등장하기도 했고, 한국역사관련 재연방송프로그램에도 한번씩은 등장하는
필수요소.
고우영의 수레바퀴에서도 등장하는데 여기선 봉여가 봉씨에게 "이 애비는 알아서 하겠는데 그래, 따님은 어찌하겠는가?" 라는 말을 하여 순순히 자결을 권유하게 하고 자신도 목을 메는 것으로 그려냈다.
워낙 파란만장한 삶이었어서 그런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물도 휘빈 김씨에 비하면 좀 있다. 2011년에는
미실의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김별아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채홍을 썼다. 참고로 '채홍'은 '무지개'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