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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바 | 2018-12-02 00:03
1997년 1월 23일 : 한보철강 (현 현대제철) 부도 처리 확정
1997년 1월 30일 : 한보건설 및 한보그룹 최종 부도 처리
1997년 3월 20일 : 삼미그룹 부도
1997년 3월 21일 : 한보건설 법정관리 신청
1997년 4월 7일 : 한보 청문회(4/7 ~ 4/25)
1997년 4월 18일 : 진로그룹 부도유예협약
1997년 4월 22일 : 진로그룹 부도
▶ 한국경제, 희망 있다 - 송희영 경제과학부장, 조선일보 1997.4.24
1997년 5월 2일 :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20% → 23%)
1997년 5월 20일 : 대농그룹 부도유예협약
▶금융대란설(사설), 조선일보 1997.5.26
"최근 금융대란설이 금융가에 급속하게 퍼져 소문에 휩싸인 기업들이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들린다. 소문의 내용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금난을 겪고 있는 부실기업들이 6월에 무더기로 도산,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내용이라고 한다.(중략) 특히 당국은 툭하면 악성루머를 퍼뜨려 혼란을 야기시키는 전문적인 루머날조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해 차제에 이를 뿌리뽑아야 할 것이다.
1997년 6월 2일 : 한신공영그룹 부도
1997년 7월 2일 : 태국 밧 화 폭락
1997년 7월 15일 : 기아그룹 협조융자 신청, 사실상 부도, 청와대 확대경제장관 회의.
1997년 8월 14일 : 인도네시아 루피아 화 폭락
1997년 8월 15일 : 재경원 종금사에 외화자금 긴급지원 검토 (3억$이상)
▶ 부도는 약이다 ㅡ 김재호 기자, 조선일보 1997.8.23
1997년 8월 25일 :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 대책
1997년 8월 27일 : 무역관련 자본자유화 폭 확대조치 시행
1997년 8월 30일 : 재경원 증시 안정대책 발표
1997년 9월 1일 : 무디스 방한 협의(9/1 ~ 9/5),주식매매수수료 자율화 시행
▶ 증시, 위기 아니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시론) 조선일보 1997.8.23
1997년 9월 10일 : 산업은행 외환채권 발행(15억불)
▶ 한국,위환위기 아니다 ㅡ 주한 외국금융기관장 30명 설문, 조선일보 1997.9.11
▶한국, 경제위기 아니다 (캉드쉬 IMF총재 회견), 조선일보 1997.9.18
1997년 9월 19일 : ASEM 재무장관 회의 및 IMF/세계은행 총회 부총리 참석
1997년 9월 22일 : 진로그룹에 대한 6개사 법정관리를 신청
▶ 한국경제 건전한 편 ㅡ 세은 총재, 조선일보 1997.9.23
1997년 9월 29일 : 외환시장 개장 40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1일 변동폭 상한선인 964원까지 상승, 사실상 거래 중단
1997년 10월 15일 : 쌍방울그룹 부도
1997년 10월 16일 : 태일정밀 부도, IMF 조사단 한국방문
1997년 10월 17일 : 대만 외환방어 포기
1997년 10월 18일 : 외국환 관리규정 전면 개정안 발표(외자유입 관련 자유화 조치)
1997년 10월 20일 : 당정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근로자주식저축 1년연장, 한통주상장연기, 3년이상 투자 배당 소득분리과세)
1997년 10월 21일 : IBCA, 현행 국가신용등급 유지 발표
1997년 10월 22일 : 기아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1997년 10월 23일 : 홍콩 증시 폭락
1997년 10월 24일 : 미국 S&P사, 한국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1997년 10월 27일 : 강경식, 금융외환시장상황과 기아사태후속조치 등 보고, 미국 무디스사, 한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
1997년 10월 28일 : 미국 다우존스지수 하루 만에 7.2% 하락
1997년 10월 28일 : 주가지수 500선 붕괴, 미국 투자기관 모건스탠리, '아시아를 떠나라' 라는 보고서를 띄움. 주가 500선 붕괴, 강경식, 한국은행에 외환시장개입중단 지시(재판에서는 불인정)
1997년 10월 29일 : 정부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연기금3조 규모 주식매입, 채권시장개방확대, 기업구조조정)
1997년 10월 30일 : 외환시장 개장 8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1일 변동폭 상한선까지 또다시 폭등, 사실상 거래 중단
1997년 10월 30일 : 주유소 북새통
1997년 11월 1일 : 해태그룹 부도, 유가 인상
▶ 경제, 비관할 것 없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시론), 조선일보 1997.11.3
1997년 11월 3일 : 해태그룹 화의절차개시신청,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23% → 26%)
1997년 11월 4일 : 뉴코아 부도
1997년 11월 5일 : 불름버그, "한국 가용 외환 보유고 20억달러" 보도.
1997년 11월 6일 : 한국은행 실무진, 총재에게 IMF행 건의
캉드쉬 IMF 총재 "한국 금융시장은 동남아 국가와 같은 위기상황 아니다"고 언급하여 한국의 신용도가 회복된 것으로 예측
1997년 11월 7일 : 주가 최대 폭락
▶ 외국언론 '한국경제비관', 정부 '왜곡이다' 강력대응, 조선일보 1997.11.8
1997년 11월 9일 : 정부가 종금사 달러를 지원 검토
▶ 외국의 「한국 경제 때리기」 (사설), 조선일보 1997.11.10
"근거도 없이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거나 불확실한 외채통계를 함부로 인용하거나 한국의 은행들이 금방이라도 연쇄파산할 것처럼 대서특필하는 것은 언론자유의 차원을 넘는 것이다"
1997년 11월 10일 : 원화환율, 달러당 1,000원 돌파, 김영삼 대통령, 외환위기 심각성 인지, 환율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1,000원 돌파.
1997년 11월 14일 : 김영삼 대통령 IMF행 결심, 강경식 부총리,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청와대 보고에서 "미국 등 우방으로부터 돈을 빌려 보겠으나 여의치 않으면 IMF로 가야 한다"고 설명. 김영삼 대통령, 사실상 IMF로 갈 것을 지시.
▶ "IMF 구제금융 고려 안 해" ㅡ 재경원 관계자, 조선일보 1997.11.16
1997년 11월 16일 : 미셸 캉드쉬 IMF 총재 극비 방한,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
1997년 11월 17일 : AMF(아시아통화기금) 관련 차관회의(마닐라), 외국언론, 한국 IMF구제금융 요청 가능성 시사, 프랑스 경제 전문지 레 제코, IMF 한국에 400-600억달러 긴급지원 검토 보도 재경원 '사실무근'이라며 부인
1997년 11월 18일 : 한국은행, 정부에 IMF구제금융 요청 촉구
1997년 11월 19일 :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수석 경질, 임창렬 재경부 장관에게 신임 부총리 임명,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 발표 (환율변동폭 확대, 부실채권정리기금 확충, 부실금융기관 조속한 정리, 채권시장 추가 개방).
1997년 11월 19일 : 임창렬 부총리,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 IMF 언급 없음. IMF와의 이후 협상에 난행 요소가 됨. 강경식 김인호, IMF구제금융 지원요청사실을 오후 5시 기자회견에서 답하기로 하고 대통령 재가받음
1997년 11월 20일 :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 방한, 1일 환율변동폭이 2.25%에서 10%로 확대됨, 그러나 환율은 다시 확대된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 사실상 거래 중단됨
1997년 11월 21일 : 김영삼 대통령, 박태준 자유민주연합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조순 총재와 회담
1997년 11월 21일 :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 발표
참여정부 5년 조선일보 사설 제목
-경제 먹구름이 몰려온다
-우리경제 어디로 가고있는가
-한국경제는 시한부 생명인가
-상승하는 세계경제, 추락하는 한국경제
-내려앉는 경제에 서민은 아우성인데
-경제위기론에 음모설을 덮어씌우지 말라
-물건너간 경제회복, 정부는 무슨 말할건가
-누가 경제 완전회복 됐다는 거짓보고 올렸나
-경제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청와대경제 참모조차 이렇게 한눈을 팔고 있으니
-경제교육에선 자본주의 중국 사회주의 한국
-한국경제의 파수꾼은 지금 눈뜨고 있는가
-경제는 무사한가
-中,日은 잔치기분, 한국은 경제우울증
-대통령이 보는 경제, 국민이 보는 경제
-몽유병 걸린 한국경제
-주가폭락이 한국경제에 던진 과제
-우리가 살았던 지난 5년의 대한민국 경제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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