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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xbar | 2018-06-24 16:06
원래 조자룡이 계획에 있었으나 1편이 제갈량이었던 관계로 조운은 뒤로 미룬다. 사실 그리고 조운을 표현하기엔 너무 뻔한 내용만 있어서 좀 더 입체적으로 다루려면 좀 더 생각을 해봐야 겠다.
[조인 자는 자효. 사실상 연의때문에 가장 저평가 받은 인물이다]
3번째 인물평가는 조인이다. 사실 촉의 관우,장비의 대척점이라 할수 있는 인물로 능력뿐 아니라 조조핏줄 버프까지 타고난 빽과 능력이 둘다 정점을 찍었던 남자이다.
최근에 와서 위나라 최고무장이라 평가받는 장료보다 대놓고 더 강하다고 정사에 쓰여있는 인물로 실제로 조인이 패한건 말년에 주환에게 패한거 한 번 정도이다.
그에 행적은 스탯을 하나하나 재평가 하면서 따져보도록 하자.
현재 게임상에서의 스탯은 이러하다.
[사실 이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도 안나오는 수준]
이례적으로 조인은 실제 재평가 스탯을 올리고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것도 부족한가 싶을 정도이다..]
통솔89(재평가후 95): 기라성처럼 많은 위나라 무장들중에서도 전공을 보나 행적을 보나 단연 원톱에 드는 장수가 바로 조인이다. 사실 조인보다 뛰어난 무장은 삼국지 인물 전체로 따지고봐도 열손가락 안에 들것이다.
[하후돈 하후연 장합 장료 서황.. 이들의 정점에 선게 바로 조인이다]
실제 조조군벌이 성장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선봉에 섰고 패하는일이 없었다. 관도대전당시 여남의 유비를 박살내었으며 적벽전투 패전후 형주로 밀고 들어오는 주유를 위시로한 오나라 최정예군을 상대로도 1년이상 버텨내었다.
심지어 그는 나중에 재평가할 위나라 최고무장중 하나인 만총과 더불어 형주공방전에서 관우를 상대로 형주지역을 지켜내었다.
이런면을 볼때 조인의 통솔력은 가히 S급이라 볼만 하며 그래서 통솔력은 95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력86(재평가후95) : 조인이 남군에서 주유와의 공방전에서 전멸에 위기에 빠진 우금을 구해오기 위해 수십명의 부하와 함께 적진으로 돌격해 우금과 우금의 수하를 구해오자 병사들이 조인을 일컫길 '하늘이 내린 장수'라고 하였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만큼 삼국지내에서 개인의 무력이 정사에도 뚜렷하게 기록되는경우가 적은걸 보면 매우 의미깊은 부분이 아닐수 없다.
그렇기에 역시 무력도 S급커트라인인 95를 주려고 한다.
지력63(재평가후72): 그는 만총과 더불어 형주를 지켜낼때도, 남군공방전에서 주유를 상대로 할때도 언제나 적의 계략에 빠지는 법이 없었고 주변제장들의 말을 경청할줄 알았다. 이는 조인이 무관으로서 능력만 출중한게 아니라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만큼의 기본적인 지략도 존재한다고 생각할수 있다. 그렇기에 72로 소폭 상향조정 하였다.
다음번에 할 내용은 계획대로 조자룡을 갈지, 간손미를 갈지 아님 다른인물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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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폭풍
2018-06-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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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사 기준으로 할거면 애초에 저 무력이란걸 빼야 할듯. 저 시대땐 병사들과 장수들의 훈련도나 체력이나 장비의 차이가 엄청나게 현격했기 때문에 강력하긴 했겠지만 등자도 제대로 없는 시대에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는건 고른 영양 상태와 혹독한 훈련 받은 현대 군인이라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저 당시로 대입해보면 적의 잡졸들 한 열댓명 베어내면 대단한거라 보거든. 근데 아무리 사기가 중요하다지만 몇천명 몇만명 전투에서 열댓명 베어낸다고 전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까 생각해보면 난 아닐 것 같아. 근데 다치기라도 하면 자신의 수많은 병사들을 지휘 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장군들이 앞장서서 싸울 일이 몇번나 있었을까 생각하면 무력을 뽐낼 수 있을 상황은 아주 아주 제한적이고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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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폭풍
2018-06-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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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적의 난이나 지리멸렬 당했거나 혹은 소수로 적진을 돌파할때처럼 몇십의 소규모 군세를 부릴때나 무용이 쓸모가 있긴 할듯하지만 그런 예가 별로 없잖아. 내가 봤던 어떤 삼국지였나 기억이 안난느데 그 사람은 조운이 당판파 전투에서 연의로는 수십명의 장수를 베었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포위를 하지 못한 걸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돌파해 도망친거고 끽해야 졸병이나 부장들과 몇번의 조우가 있었을거라고 해석한 사람이 있었는데 난 그 관점에 찬성함. 담대함을 칭찬할 일이지만 신의 무용 이런 일화들은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하는 영웅 만들기의 일환으로 나온 이야기들이 대다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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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xbar
작성자
2018-06-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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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편에다가도 적었지만 무력은 게임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역사상으로 인물을 평가하는데 있어선 가장 마이너한 스탯이라고 명시를 해놨음. 마찬가지로 지력도 단순 계책과 묘계를 내는걸로 평가하는데는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문관을 평가하는 스탯으로 볼때 정치력보다 훨씬 마이너한 스탯인거임.
그리고 개인적으로 볼때 무력괴수 하나가 전쟁의 양도를 바꿀순 없지만 그런 장수하나가 있다는건 군사기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이런부분은 공손찬이나 손견, 손책과 같은 전투군주들이 (플러스효과만 따지고 볼때) 얼마나 큰 효과를 보는지가 여실하게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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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폭풍
2018-06-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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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밸겡서 전투에서 장수들의 무예에 대해서 돌파가 가능하냐 말할때도 말했지만 말이란건 그냥 달리기만해도 거기에 치이는 사람들은 치여 죽음.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앞에 서는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그리고 삼국지 초기에 모든 전투는 소규모 군벌들이 농민들을 징집해서 싸웠던 거였고 기병 앞에 자연히 장수 개인의 무력이 효과적일 수 있단 점은 인정해. 근데 결국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건 경제력이고 경제력 체계가 잡히는 시기가 되면 병사들의 무장도 바뀌고 훈련도도 달라지잖아. 삼국지 후기쯤되서 북벌 부분만 봐도 둔전병 제도로 설왕설래하거나 훈련관이 따로 있고 병사들을 년마다 교대하는 사실상 직업 군인 체제임 그럼 훈련도도 다르고 아예 기병을 상대로 쓰는 전략도 있을거고 그럼 장군이 일기당천 이런건 불가능하다 이거지.
여기서 이견이 갈릴 수 있는 포인트는 이런 체계가 언제쯤 시작되었느냐지 개인의 무력이 먹히지 않는 양상이 시대가 끝날때까지 갔다곤 생각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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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폭풍
2018-06-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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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초기에 공손찬이 대단한 지역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음에도 모든 이들이 공손찬을 두려워했던거나 조조가 중원을 제패할때 청주병의 힘이 절대적이었던거나 바로 이 훈련된 직업 군인을 가졌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봄. 한의 농경 경제 체제에서 나머지 군주들의 땅은 결국 농경지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노동력이었지 군사력이 아니었던건데 저들은 직업 군인의 초기 형태를 홀로 갖춘 상태였던거니까. 개인의 무력이 유효한거야 전투 규모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난 조조의 청주병 이후로 장수의 일기당천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