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시간댓글
|
|
바이에르라인 | 2018-02-08 08:26
2016년 11월 영국 첫 개봉 작품(원제 A United Kingdom)인데. . . 한국에선 뒤늦게 수입된건지 좀 늦게 개봉하는군.
보츠와나가 독립되기 전, 초대 대통령인 세레체 카마는 4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응와토 족의 추장이 된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대학을 나온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가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영국인 백인 여성 루스 윌리엄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세레체 카마가 베추아날란드로 돌아오자 그를 대신해 베추아날란드를 통치하던 숙부는 영국을 설득하여 그가 백인 여성과 헤어지든지 추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대하여 그는 이혼을 거부하고 추장 자리를 내놓고 국외로 추방당한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그는 5년간 국외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보츠아나 민주당을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들어간다. 그는 영국과 협상 끝에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 내고,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보츠와나를 이끌게 된다. 그러던 중 1980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그동안 그를 도와 보츠와나의 민주주의를 함께 이끌던 부통령 퀘트 마시레이가 잔여 임기를 이어받았고, 그 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8년 동안 집권을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광산의 발견되어 국가 재정수입이 많이 늘어난다.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은 권력자들이 광산 수입이 생기면 자신들이 챙겼지만, 보츠와나의 지도자들은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지 않고 이를 국가 기간산업의 발전에 투척하였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으며, 도로를 건설하는 등 국가의 경제 성장 동력을 이끌어 낸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62529
보츠와나는, 세계 3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거대 다이아몬드 광맥을 품고도, 독립 이래 단 한 번의 쿠데타나 내전, 전쟁을 겪지 않았다. 권력자의 독재와 부정부패로 말썽을 빚은 예도 없었다. 관광산업의 성장도 정치ㆍ사회적 안정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아공 민간 경제 싱크탱크 ‘브렌트허스트 재단’ 평가처럼, 보츠와나의 기적을 일군 건 한 마디로 정치였고, ‘신뢰할 만한 정부’였다. 그러니 그 정치 그 정부의 초석을 놓고 법치의 원칙을 구축한 두 정치인,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Srertse Khama, 1921~1980)와 2대 대통령 퀘트 마시레이(Quett Ketumile Joni Masire, 1925~2017)가 보츠와나의 최대 행운이었다.
http://www.hankookilbo.com/v/5aff432777f94b49940dfb1558784fa8
대단히 훌륭하셨던 분의 대단한 사랑 얘기인데.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14
바이에르라인
10,333
3,358,000
프로필 숨기기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