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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펌,역사스포)명량해전에 대한 새로운 연구

nlv199_346 월현콩 | 2014-07-30 11:46

2011년 4월,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지 14권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명량해전 당시 조류에 대해 연구한 것인데요. 참 흥미롭네요.

기존의 연구들은 아무래도 시간도 오래됐고(65년, 77년) 사학자 주도라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역사 연구가 이래서 어려운 거죠. 그냥 사료 판다고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_-; 거의 전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학문들과 연계해야 되죠. 

이번 연구에서는 국립해양조사원과 연계해 6개월간 명량의 유속을 조사하고 이래저래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계산해서 새로운 결론을 얻어냈다고 합니다. 기존의 연구들과는 미묘한 차이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죠.

기존의 명량해전에 대한 인식과 비교해볼 경우 이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오전 6시 반을 기준으로 썰물에서 밀물로 바뀝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요. 기존 명량해전에 대한 얘기에서는 이순신이 명량이라는 장소를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조류와 지형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군이 출진했을 걸로 추정되는 시각은 이와 비슷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은 이 밀물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어느정도까지 알았을진 몰라도 이걸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명량까지 진출했다는 것이죠. 모르고 갔을 가능성은 적을 거 같습니다. 근처 주민들을 이용하면 이 정돈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조류는 기존에 비해 더 빨랐습니다. 

참고로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님은 명량해전의 장소를 명량이 아닌 우수영 앞바다로 잡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걸로 생각할 경우 일본군은 이순신의 작전에 말려든 게 아니라 이걸 이용해 빠르게 우수영 앞바다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여기에 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수군은 "명량의 유속이고 뭐고" 130척이 상선 한 척을 완벽하게 포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순신은 "지형이고 뭐고" 유리한 점 하나 없이 그냥 적에게 맞서 싸웠다는 거구요."라고 들었죠. 좀 웃기게 말하긴 했습니다만 이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일단 이 주장의 가장 큰 근거인 난중일기의 "우수영을 나서자마자 적이 우리를 둘러쌓다"는 게 정말 우수영 앞바다로 나가자마자일지 의심되니까요. 이런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우수영 앞바다설에 힘을 좀 실어주는 편입니다. 당시 유속이 기존의 연구보다 더 빨랐다는 거니까요. 이민웅 교수가 제시한 건 당시의 유속을 명량에서 버틸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말 명량까지 나가서 싸웠다면, 기존의 학설보다 더 빠른 걸 격군들이 힘으로 버텼다는 얘기가 됩니다. (...) 뭐 저로선 그 쪽 문제는 제대로 모르니 판단을 내릴 수가 없군요. 자이체프님 명량 가실 때 같이 가면 안 되나요 ㅠㅠ

아무튼 장소가 어디든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일본군은 여기에 말려든 게 아니라 이걸 이용했습니다.

해전이 시작된 걸로 추정되는 건 오전 11시, 조류가 바뀌어 (썰물) 조선군에 유리하게 된 걸로 추정되는 건 1~2시 무렵입니다. 이 논문에서 추정하는 조선군의 반격시점 역시 이 때입니다. 기존의 결과에 비해 좀 빠른 타이밍이죠. 여기서는 조선군의 반격시점 (안위야! 할 무렵)과 명량을 다시 넘어가 일본군을 쫓아낼 시점을 이 때로 잡습니다. 간단히 기존의 연구에선 조선군에 불리할 때부터 반격했다면 여기선 반격할 무렵에는 조선군에 이미 유리해졌다는 것이죠. 적 선봉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잡은 것 역시 아군에 유리해진 이유로 잡고 있구요.

그 이후 대치하다가 다시 밀물이 오자 명량(과 우수영)을 버리고 후퇴했구요. 일본군은 이후 무안까지 진출했다가 다시 후퇴.

참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더 진행될지가 정말 궁금하군요. 

일단 명량을 전장으로 택한 이유,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선군에 유리하니까. 하지만 일본군 역시 이걸 노렸다면 이건 나름 허를 찔린 겁니다. 전장이 정말 우수영 앞바다라면 더 그렇죠. 이 곳이 유리하다곤 생각했겠지만, 일본군이 딱 그 틈을 노려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겠죠.

조선군이 불리했을 타이밍이 좀 줄어들지만, 바꿔 말하면 이순신은 그 불리한 시간을 혼자서 맞선 겁니다. 아니 무슨 통제사 상선에는 프로토스 보호막이라도 둘렀답니까. 일본배가 아무리 작다 해도 혼자서 (배흥립 같은 임진년부터 같이 싸워온 장수들까지 도망간 마당에) 싸운 겁니다. 그리고 이걸 적용하면 늦게나마 다가온 안위 등의 배도 좀 유리해질 것 같으니까 온 게 됩니다. 

이걸 감안하면 그가 일기에 남긴 "천행"이라는 말이 더 크게 다가오네요.

나름대로 생각을 해 놓긴 했지만, 전투 당시에는 진짜 그냥 죽어라 싸우면 이긴다, 근거는 없다, 나만 믿어라 해서 죽어라 싸우고 나니까 진짜 그냥 이겨버린 겁니다. 일본군 역시 병력만이 아니라 조류에서도 자기들이 유리하다, 이순신을 죽이자 해놓고 정말 유리한 상황에서 밀고 또 밀었는데도 안 된 거구요.

내 참... 어쩌란 겁니까 -_-; 진짜 우수영 앞바다라고 하면 조류를 타고 쉽게쉽게 도착했던 일본 수군이 그렇게 갈갈이 찢겨나간 건 그저 단 한 사람, 그것도 고문이랑 어머니 돌아가신 것 때문에 몸이고 멘탈이고 완전히 망가진 단 한 사람 때문인 거 아닙니까 -_-;; 사기를 쳐도 정도가 있죠.

...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 버렸으니... 

결론을 어디로 내든 역시 장군님 만세 (|-_-)|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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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력 만으로도 먼치킨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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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v44 빌머레이 2014-07-30 11:52 0

핵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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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v44 빌머레이 2014-07-30 11:52 0

아니지 핵쓰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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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tt 2014-07-30 11:59 0

갓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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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v158_8342 TheRogue 2014-07-30 12:01 0

레이드 하다보면 막트에 존나 개씹 집중해서 잡자나

그거랑 같은 맥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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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v78 워렌스판 2014-07-30 12:22 0

이순신 1척 vs 100여척으로 버티다 나머지 12척이 온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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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v24 차차차노래방 2014-07-30 12:27 0

폰트가 너무 작아서 눈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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