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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nness | 2014-03-01 18:17
너무나도 유명한 폴란드의 윙드훗사르 그리고 숫적 열세나 전세의 암울함 마저도 그들의 돌격 한번으로 뒤집어 버렸던 많은 전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3천vs1만 스웨덴군의 전투인 키르홀름 전투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여담으로 대세게임 LOL(리그오브레전드)에서도 윙드훗사르모티브의 캐릭터가 있다네요.저는 롤을 안합니다.멘탈이 하그리브스 부상빈도급이거든요.
(이름은 중국뉘앙스고 폴란드의 윙드훗사르 갑옷을 입었지만 말은 타지 않나보네요 .정체가뭐냐)
돌아와서 어쨌든 정말 유명해서 여기저기 나오지 않는 곳이 없는 훗사르.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형식상 간략 소개
후사르((IPA: /həˈzɑːr, həˈsɑːr/, or /hʊ-/)라는 단어는 헝가리어의 후사르(huszá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후사르라는 단어는 원래 세르비아어로 도둑, 약탈자를 뜻하는 구사르(gusar; 킬릴문자로: гуса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위키
'후사르'(Hussar) 는 유럽의 수많은 종류의 기병들 중 15세기 헝가리의 경장기병들을 원형으로 하는 기병들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헝가리 어로 단수형은 huszár, 복수형은 huszárok 라고 하며, huszár 라는 헝가리 어 단어는 중세 라틴어 cursarius 에서 유래된 세르비아 어
husar('해적' 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고 hussar 라는 단어는 1532년에 생겼습니다
-Webster's Nineth New Collegiate Dictionary(Merriam Webster 출판
이어서 바로 키르홀름 전투발발전 대략의 스웨덴군의 진군로와 형세
리가 시가 스웨덴에게 넘어간다면 게임 끝 상황.
이미 피켈(Fickel)에서 코드키에비츠는 스웨덴군을 평지로 끌어내려 무던히도 경기병들을 돌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적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지만,
신중한 레나르트손은 꿈쩍도 않았고 진영 안에 틀어박힌 채 기병대가 접근하면 머스킷 일제 사격 대응뿐. 수 차의 시도 끝에 폴란드군은 200명 정도의 피해를 내고 유인 작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카를 9세는 만스펠트의 병력과 합류해서 리가 시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면, 폴란드군이 어쩔 수 없이 쫓아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었을 때, 11,000명의 병력으로 폴란드군을 압도하려는 생각이었다.1604년의 바일리 카미엔전투의 완벽한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스웨덴의 왕 카를 9세. 키르홀름 전투 당시 55세로, 평균적인 장군 이상의 능력을 가진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코드키에비츠라는 걸출한 적장을 만난 것이 가장 큰 불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웨덴군의 보병대. 파이크병이 앞에서 기병 돌격을 막고 머스킷병이 사격을 하는, 스페인 테르시오 형태의 방진이었다.)

이 배치만 보아도 카를 9세가 폴란드 윙드 후사르의 위력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지가 잘 드러난다. 일반적인 회전 (會戰) 진형은
중앙부의 보병과 양익의 기병대로 이루어진다. 화력과 방어력에서 우세한 보병대가 중앙에서 적진을 뚫고, 기동력과 충격력이 우수한 기병대는
양익에서 적을 우회하여 포위를 시도하는 것이 예부터의 병법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카를 9세가 친 진형은 극단적인 수비형 배치였다. (마치 스페셜 원의 그것과 같다.안티풋볼?ㄴㄴ 이기면 장땡)
스웨덴군의 배치는 거의 극단적인 수비형 배치였고, 폴란드군의 배치는 양익 포위를 노리는 배치였다.
(전쟁시뮬 게임 할때 난 기병위주에 소수병력인데 나보다 병력도 훨씬 많고 병과상성도 앞서는 장창병들 뒤에 머스킷병들 세워두고 지형적으로도 우세한
고지에서 방진으로 수비만 하고있다!!간디가 문명하다 모피 안준다고 선전포고하는 하는 것 쯤이야"모피 안주면 국가간 전쟁발발은 당연한거 아니야?"
라고 느껴질 것이다.모피모피모피)
모피는 그만하고...어쨌든3배가 넘는 병력이 수비형 배치를, 소수의 병력이 양익 포위;를 노리는 배치라니... 소수가 포위?어감도 이상하기 짝이없다.
폴란드군의 좀더 자세한 배치를 보자면 코사크 경기병. 윙드 후사르가 폴란드군의 주력 (기병 약 3,000명 중 1,500명)인 것은 분명했지만,
코사크 경기병 역시 900명으로 상당수를 차지했고 그들은 코드키에비츠가 의도한 좌익에 중점을 둔 양익 포위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좌익의
주력으로 편성되었다.)
반면, 우익에는 600기의 강력한 윙드 후사르를 배치하여 유사시에 양익 포위를 노렸다. 하지만 문제는 중앙부가 너무 얇다는 것이었다.
보병이 1,000명 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1,300명의 병력으로 8,200명; (적이 보병대를 중앙에 배치한다는 가정 하에서) 에 이르는 보병대를
상대로 맞싸워야 했던 것이다.
코드키에비츠는 병력을 실제보다 적게 보이게 하기 위해 깊은 종심으로 편성했으며 기병대의 일반적인 유인 기동을 통해 스웨덴군을 꾀어내려 했지만,
카를 9세의 스웨데군은 꿈쩍도 않고 대포와 머스킷으로 간간히 응수할 뿐이었다.때문에 코드키에비츠는 큰 모험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
좌익의 돔브로바 휘하의 경기병대를 실제로 후퇴시키는 한편, 전군을 행군 대형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스웨덴군에게 그들이 ‘실제’ 후퇴를 하는
것처럼 연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폴란드군의 사기를 고려하여, 일부 군속(軍屬) 들에게 말을 몰고 북쪽으로 달려가 자욱한 먼지구름과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남쪽으로 내려오게 했다.이는 실제 후퇴하는 진형으로 후미에서부터 압박을 받은다면 진형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압도적인 숫자에 괴멸
당할 수 있는 형세였기때문이다.

(전투의 시작. 드디어 폴란드군 좌익의 거짓 퇴각에 드디어 스웨덴군이 말려들었다. 스웨덴군은 방어형 진형을 공격 진형으로 전환하여 진격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카를1세는 미끼를 물었다. 1열의 보병대 (4,500명) 가 서서히 진격하기 시작했고, 뒤를 이어 2열의 기병대 (1,400명) 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양익을 편성했다. 보병대는 레나르트손 제국 원수가 지휘했고, 우익은 만스펠트 백작이, 좌익은 헨리 브란트 (Henri Brandt)가 지휘했다. 이어 뤼네부르스키
휘하의 보병 3열 (3,700명)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카를 9세의 기병 4열 (1,100명) 도 좌우로 갈라지면서 진격하기 시작했다. 엄밀한 수비형 대형이었던 스웨덴군 진형이, 보병대를 중앙에, 양익에 기병대를 둔 전형적인 야전형 대형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스웨덴군의 진격을 지켜보면서 폴란드군 기병대는 조용히 서서 랜스를 치켜 올리고 있었고 500미터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
300명의 윙드 훗사르는 8,200명의 적 보병대를 상대로 전설적인 돌격을 시작했다.

(중앙부의 보병 전열을 향해, 보이나의 후사르가 돌격을 시작했다)
갤럽으로 달려간다면 30초 안에 주파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말은 금새 힘이 빠져 버려 2차, 3차 공격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후사르들은 적에 접근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약 75미터 정도는 걷고 (약 6-7km/h), 75 미터는 트롯으로 진군했다.
트롯(Trot) (12km/h)
갤럽(Gallop)(40-48km/h)
적과 150여 미터를 남겨 둔 순간 후사르는 일제히 랜스를 앞으로 겨눈 채 최고 속도인 갤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훗사르들은 4열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제 1열 병사들 중 상당수가 말을 잃고 떨어졌기 때문에, 제 1열의 밀도는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제 2열의 병사들이 그 빠진 틈새로 재빨리 움직였으며,랜스에 달려 있는 홍백의 깃발은 눈을 혼란스럽게 했고,스웨덴군은 흡사 언덕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수를 맞이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지의제왕에서 로한 기병대에 쓸리는 오크들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적에게 죽음을!)
이쯤에서 흔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은 어째서 흔히 병종 상성에서 우위에 있는 장창병이 기병따위에게 질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다.훗사르께 더 길다.몹시 단순하다.근데 이거로 그냥 짱 먹었다.어마무시하다.)
그렇게 냅다 들이 박고 후사르가 휘두른 무기
(후사르의 무기. 세이버 (Saber)(좌측)와 팔라쉬(Pallasch) (우측). 세이버는 보병 혹은 경무장 기병을 상대로 사용했고, 팔라쉬는
중무장 기병을 상대로 사용했다. 팔라쉬는 기병대의 무장이 줄어들면서 에스톡 (Estoc)이라는 긴 장검 (약 1.6m) 으로 대체되어 사용되게 된다.)
그렇게 후사르의 1열과 2열이 적의 방진을 찢었고, 제 3열과 제 4열의 병사들은 캔터로 제 2차 돌격을 감행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방진도
제 2차 돌격에는 감당할 수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300명의 기병대가 자그마치 8,200명의 보병대의 진군을 막아냈던 것이다.
(한 기록에 따르면, 이 당시 중앙군의 후사르 300명 중, 13명만이 전사했고 17명이 부상당했다고 전해진다. 대신 군마의 피해는 엄청나게 커서
150마리의 말이 쓰러졌다고 한다.)
(중앙 기병대가 돌격을 감행한 후, 폴란드군 좌익도 적의 우익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돔브로바는 만스펠트에 대한 정면 돌격을 감행하는 한편,
경기병대를 이용하여 적을 우회하여 측후면을 타격하려 했다.)
(스웨덴군의 우익 (만스펠트)는 빠르게 붕괴되었지만, 스웨덴 군 좌익 (브란트/카를 9세) 은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1,500 vs 600이라는
숫적 우위를 이용하여 우회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
카를 9세는 우세한 병력을 이용하여 이미 돌격 거리를 잃어버린 후사르들을 상대로 진격하는 한편, 일부 병력을 이용하여 전장을 우회하여 적의
측면을 타격하려 했다.하지만 함께 코드키에비츠의 본진에 있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400명의 후사르,그들이 향하는 곳은 사피에하가 서서히
밀리고 있는 우익이었다.

(이 돌격이 우익의 상황을 완전히 결정지었다.양측 합쳐 2.500명이 넘는 기병대가 폴란드군 우익의 좁은 전장에 투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퇴로가 없
었을 것이다.이것은 지금까지 잘 버티던 스웨덴 보병대를 필연적으로 완전히 혼란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
(스웨덴군의 좌익이 무너지면서, 양익 포위가 완성되었다. 스웨덴군의 주력은 거대한 포위망 안에 갇혀 버렸다.)
(키르홀름 전투도. 포위망이 막 완성되는 찰나를 담고 있다.)
(키르콜름 전투(battle of Kircholm)에서 스웨덴 보병들을 공격하는 후사르들. 1630년 Peter Sayersa 작.)
<키르홀름의 영광>
도망치던 스웨덴군은 제 2열 지휘관 뤼네부르스키가 키르홀름 교회 근처에서 잠시 저항하려 했지만 곧 무너진 채 패주했고, 총 4,000-6,000여명이
폴란드군의 포위망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스웨덴 보병대는 리가 시 근처에 있는 진영까지 정신 없이 달아났으며, 스웨덴 기병대는 말을 달려 멀리
에스토니아까지 도망쳤다. 이 추격전에서 2,000여명의 사상자가 더 발생했으며, 스웨덴군의 피해는 6,000명에서 8,000명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웨덴군의 병력이 전체 11,000명 수준이었으니, 이 전투에서 50-70% 이상의 막대한 손실율을 기록한 것이다.
반면, 폴란드군의 사상자는 전사자 수백 명을 포함하여 1,000명에 채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이 중앙부의 스웨덴 보병대와의 전투에서 발생했으며,
이것은 아무리 윙드 후사르의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보병 방진에 대한 기병 정면 돌격의 위험함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키르홀름 전투 이후의 얀 코드키에비츠. 모든 대포를 노획하고 수많은 적군을 무찌른 이 대승리는 폴란드 역사상 길이 빛날 것이었다.)
1605년 9월 27일에 이었던 이 키르홀름 전투는 폴란드 윙드 후사르의 전사상 가장 통쾌하고도 압도적인 승리였다. 3배에 가까운 적을 상대로,
완벽한 포위 섬멸전을 거두어 냈던 것이다. 이것은 코드키에비츠의 뛰어난 전술과 윙드 후사르의 강력한 전투력, 중간 지휘관들의 침착한 지휘 등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낸 값진 승리였으며, 폴란드 역사상 길이 남을 대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결과는 전유럽에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가톨릭 국가에서는 이 빛나는 전승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코드키에비츠 대원수는 교황 (파울루스 (Paulus) 5세 (재위 1605-1621)을 비롯한 수많은 가톨릭 군주들에게 찬사의 편지를 받았으며, 적국이던
투르크의 술탄 아메드 (Ahmed) 1세 (재위 1603-1617)과 저 멀리 페르시아의 샤 압바스 (Abbas) 1세 (재위 1587-1629) 에게서까지 그 뛰어난
무용에 대한 칭송의 편지를 받았다.
(유럽역사상 최고의 기병대장으로 평가받는 얀 카롤 코드키에비츠)
-참고도서 사이트
엔하위키
Webster's Nineth New Collegiate Dictionary(Merriam Webster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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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펨코 역상갤 웰치스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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