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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럼] 뭘 만드는 거야? "처신 잘하라고" 어떤 게임의 불편한 강요,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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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게임 제작사와 이용자들은 적대적인 공생 관계에 있었다. 제작사는 게임을 만들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들어오는 비판과 요구사항 가운데 정말 합당하고 필요한 것만을 적절하게 수용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해야 하고, 이용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낀 불합리함을 평가하고 토로하면서 그것이 언제 어떻게 개선될지는 전혀 장담할 수 없기에 늘 해결되지 않는 찝찝함을 떠안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철저하게 제작사와 이용자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던 예전과 다르게 적절한 의사소통으로 이용자들을 만족시키는 것 또한 제작사와 개발진의 역량으로 평가받는 시대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 갈등 구조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편이다. 

특히 게임 이용자의 수준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그 주제 또한 굉장히 다각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실제로 불합리한 난이도나 레벨 디자인과 같이 게임 퀄리티, 과금이 없으면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한 기형적인 비즈니스 모델, 게임은 잘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절로 떨어져 나가게 되는 운영 이슈 등이 이러한 갈등 구조의 주제가 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는 앞서 소개한 내용 말고도 게임 외적인 특정 이슈가 게임 제작사와 이용자들의 갈등을 빚는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바로 '정치적 올바름' 약칭 'PC(Political Correctness)'와 관련된 내용이다.


배틀필드의 근본은 서사가 아닌 대규모 전투에 두고 있다
 과연 '여성 중심의 내러티브 퍼먹이기'가 이용자들이 원한 방향이었을까? 

사실 PC는 어원에서부터 이미 '올바름'이 들어가 있기에 적어도 출발점 단계에서는 취지가 좋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인지에서 벗어난 무의식 단계부터 쓰이고 있는 비하 표현을 바로 잡고 주류에서 소외되어 있는 계층과 인종의 특수성을 이해하며 손에 손잡고 앞으로 나가자는 의도를 누가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고여 있는 물은 자연스레 썩듯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자'는 해당 사상의 기조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문화 콘텐츠를 판매하는 데 있어 일종의 세일즈 포인트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변질되기 시작한다. 특히 굳이 완성되어 있는 콘텐츠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캐릭터와 서사 등의 요소를 무너뜨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면서 그 문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근본은 결국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재미를 얻는 행위'에 있다. 딱히 정치적 올바름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게임에 여성, 동성애자, 유색 인종, 신체 결손의 등장 유무는 처음부터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는데 이를 억지로 주입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지고, 이용자들이 반발하니까 '배워먹지 못한 사람들(Uneducated)'이라고 메신저를 공격한 일부 제작사 때문에 그 갈등은 점점 깊어져 갔다.

그렇기에 10년 가까이 PC주의가 게임 업계의 트렌드 코드로 자리 잡고 게임의 완성도보다 더욱 올바르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는 행태에 대해 피로감을 느낀 이용자들은 본격적으로 상품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캐릭터의 PC함을 두고 다들 하는 말은 비슷하다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디자인"

실제로 최근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파이어워크 스튜디오'의 히어로 슈터 게임 <콘코드(Concord)>의 경우 이용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결점으로 꼽히는 것이 PC에 매몰된 아트워크 스타일이었다.

장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매력과 스킬셋을 어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어 있는 16개의 '프리거너' 중 그 어떤 것도 쉬이 고르고 싶지 않은 괴악한 디자인을 가져다 놓았으니 "이미 최적화와 콘텐츠 완성도에서도 시원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뭘 믿고 저런 디자인의 캐릭터들로 풀 프라이스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격을 책정헀냐"는 게 해당 작품의 주된 비판 소재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에 이미 흥행하고 있는 다른 게임들은 PC 요소애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을까? 보다 쉽게 접근하기 위해 콘코드와 완벽하게 동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의 게임들을 가져와 봤다.


에이펙스 레전드의 기조는 확실하다
PC함이 있지만 여러분이 굳이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사실 히어로 슈팅 장르 게임 중에서는 콘코드보다 먼저 나왔으면서 캐릭터와 설정에서 PC에 가장 앞서 그리고 가장 가까운 행보를 보여줬던 게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에이펙스 레전드는 운영과 이슈 대응에서 문제가 발견되어 그 평가가 크게 요동칠 지언정 PC라는 소재가 주된 비판점이 된 적은 없었다. 

게임을 가볍게 플레이하는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플레이어블 캐릭터 '레전드'들이 각자 개인적인 목적과 또는 공적인 사명을 가지고 일종의 스포츠 대회인 '에이펙스'에 참여하고 있다는 명료한 사실 외에는 신경쓰고 있지 않다.

레전드의 스토리와 설정을 깊게 파고들면 PC한 요소가 여기저기서 발견되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스토리 전개와 게임 콘텐츠에 있어서 핍진성을 해칠 정도의 수준이 아니며 제작진도 가타부타 부연설명을 하지 않고 이용자들에게 굳이 어필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용자들이 이를 추후에 알더라도 그저 '아, 그렇구나' 선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게임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레이스'를 들여다 보자. 깊게 게임을 파고 들었다면 이용자들이 접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레이스는 본래 에이펙스 레전드 세계관의 '리니 블레이지'가 아닌 차원을 넘어 서로의 위치가 뒤바뀐 다른 세계관의 '리니 블레이지'라는 사실에 도달할 수 있다. 


오히려 리버레이터는 PC함 때문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채와 디자인 그리고 히트박스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성능 이슈로 곧잘 쓰이는 스킨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이펙스 레전드는 설정상 원본에 해당하지만 결코 미형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실험체 시절의 모습인 리버레이터 스킨을 기본 모습으로 내놓고, 멋들어진 지금의 기본 모습을 스킨으로 판매하는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고 있다. 

적어도 이용자의 선택에 맡기고 PC소재를 인질로 삼아 BM으로 협잡질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에이펙스 레전드는 오히려 PC 소재를 게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본 이미지는 오버워치라는 조직과 관련된 단순한 일러스트지만 그동안의 행보 때문인지
누군가는 트레이서와 솔저76이 가장 전면부에 나와 있는 것을 두고 킹리적 갓심을 첨가하여 해석할 정도다

만약 캐릭터와 설정의 중요도가 높은 게임이라면 보통 PC소재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부터 설정을 준비해 두거나 치밀하게 복선을 깔아두는 일종의 빌드 업을 거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오버워치>는 '트레이서'나 '솔저76'의 사례처럼 멀쩡한 기존 캐릭터의 설정을 굳이 무너뜨려 가면서까지 성 정체성과 지향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었기에 PC를 다루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아온 게임이었다.

심지어 이런 설정 변경을 이용자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보고 듣는 캐릭터간 상호작용 대사나 PvE와 같이 스토리 전개가 가능한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굳이 SNS나 코믹스 등의 외부 매체를 통해 필요하지 않은 타이밍에 기습적으로 공개하면서 불만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바스테트'에서 아나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는 계기는 소중한 딸과 동료의 존재였다
거기서 솔저76의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장면은 굳이 넣지 않았어도 이야기 전개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사실 잘 뜯어보면 추가 설정이 없더라도 오버워치는 이미 충분히 합리적으로 PC한 게임이었다. 애초부터 중심 조직인 '오버워치'의 창설 계기가 인간에 한없이 가까운 사고와 행동이 가능한 자아를 가진 기계 생명체 '옴닉'의 반란이었고 플레이어블 캐릭터에도 옴닉이 여럿 존재한다.

심지어 큰 부상을 입어 신체 결손을 기계로 커버하는 사이보그 닌자와 카우보이, PTSD에 시달리는 퇴역한 참전자,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개조된 동물 등 기존에 있던 요소만 잘 활용해도 충분히 괜찮았을 게임이었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나마 후속작인 <오버워치 2>부터는 영웅 캐릭터를 새로 추가함에 있어서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팬들에게 있어 위안거리가 되고 있다.

실제로 '라이프위버'는 게임 내 세번째로 등장한 성소수자 캐릭터지만 처음부터 그 설정이 확립되어 있었고 자연과 생명을 상징하는 식물 그 자체가 모티브였던 만큼 모든 것을 사랑하는 선한 캐릭터가 범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캐릭터성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벤처' 또한 논바이너리라는 정체성에 대해 캐릭터 디자인과 복식 면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한도를 지키며 양면성을 잘 드러내고 있기에 호불호는 있을 지언정 무작정 비판받는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공개한 '주노' 코드네임 스페이스 레인저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멋과 개성을 둘 다 잡은 디자인으로 출시 전부터 활발하게 2차 창작이 이뤄지고 있을 정도다.

물론, 회의 내용 그 자체보다는 배경에 띄워놓은 무지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던 회사의 기조가 그렇게 금방 정상화될 것이라고 희망적인 관측을 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오버워치는 수많은 PC 요소 중에서도 오직 성 정체성과 지향에만 집착하던 예전의 모습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용자들은 PC함보다는 말초적인 즐거움을 충족하는 쪽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그야말로 기울어진 마우스

넥슨의 <퍼스트 디센던트>의 경우 상기한 게임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 루트 슈터 또한 히어로 슈팅과 마찬가지로 선택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스킬셋의 성능과 매력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퍼스트 디센던트는 그 어떤 곳에서도 PC의 P자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모두가 수려한 비주얼을 자랑하고 있다.

비록 퍼스트 디센던트는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와 연출 그리고 시스템적인 부분은 기존의 성공작들에서 차용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특출나지도 않고 딱히 모자라지도 않은 선에 걸쳐 있다. 하지만 '캐릭터 어필'만큼은 게임 흥행에 있어 회심의 한방이 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그 매력이 차고 넘쳐 세일즈 포인트 그 자체로 평가받고 있다.

출시 초기 엄청난 화제몰이를 했던 '얼티밋 버니'의 존재 때문에 그저 높은 노출도로 어그로를 끌었을뿐이라고 저평가하는 여론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조금이라도 플레이해 봤다면 퍼스트 디센던트가 추구하는 미적 가치는 그저 반PC주의에 기대는 선정적이고 과격한 모습이 아니라 절제되고 단정한 모습이라는 보편적인 방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탱커 포지션인 계승자인 카일이나 에이잭스는 누가 봐도 튼튼하고 듬직하다고 느낄 수 있고 지휘관 포지션인 엔조는 무전과 통신기기를 잔뜩 두르고 있으며 버니는 생김새만 봐도 기동성 특화 계승자임을 가볍고 간소화된 복장을 입히는 등 그 디자인이 매우 직관적이다. 


피격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비를 최대한 경량화하고 간소화한다
멋지고 예쁜 디자인이면 더 좋고

심지어 강화 계승자인 얼티밋 버전은 기존 계승자의 특징을 강화하는 형태이기에 문제의 '얼티밋 버니'는 그냥 노출도를 높여놓은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불완전하게 슈트를 복원하긴 했지만 어차피 '맞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기초 설계이념에 따라 극한의 기동성을 추구한 결과물이라는 방식으로 개연성까지 챙기고 있다.

믈론 '설정'이라는 요소는 이미 주어진 상황에 적절하게 끼워 맞추면 그만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계승자들의 디자인과 콘셉트가 먼저 만들어지고 설정을 나중에 끼워맞췄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용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전달하는 능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상을 쳐낸 결정은 지금 퍼스트 디센던트가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는데 있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무방하다.



호라이즌 시리즈와 관련하여 한때 PC 논란이 있었던
모델링 제공 배우 '한나 혹스트라'와 게임 속 인물 '에일로이'

서두에서 밝혔듯이 콘코드의 캐릭터 디자인과 설정이 불쾌하다는 여론은 달리 생각하면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새로운 게임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던 이용자들이 게임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만약 PC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그 디자인을 그대로 밀고 가더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PC하지 않은 가치를 그대로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PC한 것을 원하는 상대를 존중할 필요도 있으니까. 그리고 PC한 가치를 좋아하는 그 사람들은 콩코드를 플레이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게임 제작사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결국엔 게임을 개발한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려면 매출과 이윤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중성과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PC에 매달리는 것이 옳은 판단이냐고 한다면 과연 누가 섣불리 손을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본래 게임이라는 것이 힘든 현실과는 잠시 거리를 두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아무리 현실의 우리가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멋지거나 이쁘지 않더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우리가 게임 속 세상에서 활기차고 멋지고 이쁜 모습으로 또 다른 삶을 누릴 권리를 빼앗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결국 모든 것은 제작사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인데 여기서 2차 창작물인 <애기공룡 둘리>의 명언을 하나 덧붙이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처신 잘하라고'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신호현 기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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