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편집자 주]
보스 캐릭터는 게임에서 주인공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보스, 즉 최종 보스라고 불리는 캐릭터는 작품의 인상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만약 최종 보스가 시스템적으로 지나치게 약하게 설정됐거나 혹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면 유저들은 마치 화장실에서 미처 일을 못 마친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최종 보스가 매우 강력하면서도 유저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공략 가능하고, 인상적인 설정까지 가지고 있다면 유저들은 그 캐릭터는 물론 게임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소가 최종 보스의 인상을 좌우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역시 인상적인 대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의 히든 보스 '고우키'의 순옥살이나 슈퍼로봇대전 알파 외전 보스인 '슈우 시라카와'와 '그랑존'의 축퇴포처럼 강력하고 멋진 기술도 유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지만, 역시 캐릭터의 성격과 인생, 사상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대사의 힘은 그 어떤 요소보다 더 훌륭하게 캐릭터를 드러내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조선통신사에선 최종 보스들이 남긴 명대사를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대사를 남겼기에 아직까지도 유저들 사이에서 회자될 수 있었을까요?
■ 도돈파치 '슈바를리츠 롱게나' - 시누가 요이
첫 번째로 소개드릴 대사는 바로 어렵기로 소문난 슈팅 게임 '돈파치 시리즈'의 "시누가 요이(死ぬがよい)"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죽게나', 혹은 '죽거라'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대사는 돈파치 시리즈의 보스격 인물인 '슈바를리츠 롱게나'가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 이후 최종 보스, 혹은 숨겨진 보스나 더 어려운 난이도가 등장하기 때문에 저 말이 얼마나 진실된 대사인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됩니다.
이 대사의 묘미는 바로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어조에 있습니다. 단순히 '죽어라!'라는 흔한 대사가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거만하고, 반론을 듣지 않겠다는 듯한 자신에 찬 느낌이죠. 또한 슈바를리츠는 최종귀축병기 '하치'와 '히바치', 우주를 뒤덮는 거대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종 보스의 위엄을 상징하는 대사로 너무나도 잘 어울렸습니다.
결국 이 대사는 돈파치 시리즈를 상징하는 하나의 슬로건이 됐습니다. 대사의 주인공인 슈바를리츠가 도돈파치에 딱 한 번 등장했는데도 말이죠. 도돈파치의 후속작인 '도돈파치 대왕생' 출시 당시 광고에선 아예 이 대사 하나만 화면에 띄워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개발사인 케이브는 도돈파치 대왕생을 슈팅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고난도 게임으로 출시하며 이 대사를 그대로 증명했습니다.
히바치 두 마리면 시누가 요이 할만하지!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치 왕' - 오게 두어라, 서리한이 굶주렸다
위엄과 자신감이 넘쳤던 보스라고 하면 이 보스와 이 대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리치 왕의 분노' 마지막 레이드 보스인 '리치 킹'의 대사인 "오게 두어라, 서리한이 굶주렸다"입니다. 3.3 패치 '리치왕의 몰락' 트레일러에서 등장한 이 대사는 아제로스의 내로라하는 용사들이 자신을 징벌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서리한의 주인이자 언데드의 수장, 얼음왕관 성채의 지배자임을 증명하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했던 보스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은 대사를 남겼습니다. 당장 이전 확장팩인 '불타는 성전'에선 악마 사냥꾼 '일리단'이 트레일러에서 박력 넘치는 어조로 "너흰 아직 준비가 안됐다!"라고 외치며, 최종 보스 '킬제덴'은 "혼돈! 파괴! 망각!"이라는 짧고 굵은 명대사를 남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 왕의 대사를 선정한 이유는 이 대사의 상징성 때문입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전작인 '워크래프트 3 프로즌 쓰론'은 인간 왕국 '로데론'의 왕자 '아서스 메네실'이 리치 왕으로 타락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서스는 분노와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의 백성을 죽이고, 스승과 연인을 배반하며 리치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의 생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이 바로 리치왕의 분노입니다. 당시 '프로스트 모운'을 얻기 위해 전우이자 스승인 '무라딘 브론즈비어'를 죽게 만들고, '프로즌 쓰론'으로 오르기 위해 일리단과 자웅을 겨루는 모습을 지켜본 유저들은 저 대사에서 아서스 메네실의 오만과 아집, 리치 왕의 위엄과 자신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블라디미르 마카로프' - 리멤버 노 러시안
어떤 대사는 게임을 넘어 현실에서도 큰 논란을 일으킨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노 러시안' 미션의 시작을 알린 '블라디미르 마카로프'의 "리멤버, 노 러시안'입니다. 이 미션은 러시아의 국제공항에서 민간인을 무차별 살해하는 것이 목적으로 많은 유저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일부 국가에선 이 미션이 삭제되거나 게임을 전부 회수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유저들이 만든 자체 번역에선 주로 "러시아어 사용하지 마. 기억해" 정도로 해석하곤 하지만, 러시안이라는 단어를 '러시아인'으로 해석할 경우 "러시아인 남기지 마"라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 밖에 없는 폐쇄된 엘레베이터 안에서 굳이 이 대사를 영어로 말하죠. 대사의 주체인 마카로프의 잔혹성과 교활함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한 마카로프는 결국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에서 그 죗값을 치르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주인공 '프라이스' 대위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대위의 동료를 죽이지만, 결국 분노에 힘을 얻은 프라이스 대위에게 교수형에 처하듯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 내내 악랄함을 보여준 악역이자 유저들의 원망을 한 몸에 산 보스에게 걸맞은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모던 워페어 올 타임 레전드 바로 그 순간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