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많은 국가에서 한국 시장 진출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게임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게임 한국어 자막 지원은 고사하고 한국어 대사집이나 한국어 게임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는 게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콘솔 게임 불모지로 불리는 한국에서도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는 게임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심지어 더빙을 지원하는 게임까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국 게이머들의 관심과 업계의 노력, 게임 산업의 발전 등 다양한 요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한국어 지원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게임 번역 인프라가 정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 과정에서 한글로 쓰여있지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오역들이 다수 등장했습니다. 게임 번역의 경우 게임과 언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소양도 필요하기 때문에 검수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여전히 중대한 오역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역 중에선 원어 의미와 너무나도 동떨어진 해석을 내놓아 오히려 전설적인 인기를 끈 사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이 신하에게 극존칭을 쓰거나 영어 어순 그대로 한국어로 옮겨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 마이트 앤 매직 6

뉴 월드 컴퓨팅의 '마이트 앤 매직 6'은 한국 게임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바로 '왈도체'죠. 한국에 출시된 마이트 앤 매직 6의 번역 상태는 썩 좋지 못했는데 그중에서도 NPC인 '왈도'의 인사말 "Hello there! Mighty fine morning, if you ask me. I'm Waldo"이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라는 괴상한 글로 번역되어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한국 게이머 중에선 마이트 앤 매직 6은 몰라도 '힘세고 강한 아침'은 아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게임 번역사의 대표적인 오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게임에서 이상한 어투를 사용하는 것은 왈도만은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NPC가 왈도와 마찬가지로 제대로된 문장으로 보기 어려운 이상한 어투를 사용합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선 고정 문장과 변수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단어 단위로 번역해 일어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힘세고 강한 아침'이라는 인상적인 문장과 왈도라는 특이한 이름, 왈도의 미묘한 표정이 합쳐지면서 한국에서 게임 좀 즐겼다고 말하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설적인 오역 사례가 탄생한 것입니다.
■ 삼국지

괴상한 어투라면 삼국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삼국지 10에는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일지 예상조차 하기 힘든 오역이 다수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태어난 날은 달라도 의형제들과 한 날 한 시에 죽을 것을 약속했던 유비는 관우가 죽자 "죽을 때는 함께 죽자고 하지 않았다"라며 도원결의를 부정하고 때로는 아들인 유봉을 "유봉님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하는 "전하, 늦었군. 오래 기다렸네"라고 하고 장수는 적에게 "짖어대지 마라, ㅇㅇ님!"이라고 하는 등 혼란스럽게 만드는 어투가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이 역시도 고정 대사와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이름 뒤에 무조건 님을 고정으로 붙이고, 어미를 ~했군, ~했네로 통일하면서 발생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삼국지의 원작은 동명의 소설인 만큼 대사 하나하나가 몰입감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당시 게임을 즐기던 팬들에겐 치명적으로 느껴지는 오역이죠. 그 후로 새로운 삼국지 게임이 계속 출시되고, 삼국지 10이 고전 게임 반열에 들어가면서 이러한 오역도 이제는 유쾌한 밈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 워크래프트 3

앞선 사례가 고정 대사와 변수를 고려하지 않아 발생한 오역이라면 '워크래프트 3'의 오역은 대사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해 발생한 오역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워크래프트 3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언데드 스콜지 아서스의 스토리에서 이러한 문제를 자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서스 메네실은 로데론 왕국의 적통이며 빛의 수호자 우서를 스승으로 두고 드워프 왕위 계승자 중 한 명인 무라딘 브론즈 비어드와 사제 관계 이상의 우정을 쌓았으며 뛰어난 능력을 갖춘 마법사 제이나 프라우드무어를 연인으로 둔 완벽에 가까운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언데드 스콜지의 만행으로 백성들이 역병에 걸리자 이를 정화한다는 빌미로 스트라솔름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파멸을 향해 달려나가 끝내 리치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아서스는 왕자이자 왕위 계승자였던 인간 시절은 물론이고 언데드 스콜지의 수장인 리치왕 시절까지 그 누구에게도 권위로 밀릴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스트라솔름 학살 당시에도 성기사의 영웅이자 자신의 스승인 우서를 상대로 미래의 왕이 내리는 명령이라며 권위를 내세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서스가 리치왕으로 타락하는 과정을 그린 미션들에선 오역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돼버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오역은 바로 "누구, 저요?"입니다. 아서스가 아눕아락의 인도를 받아 얼어붇은 왕좌로 향하는 도중 네루비안들이 아눕아락을 향해 배신자라고 비난하자 아서스가 자신에게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줄 알고 발끈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사는 왕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저자세로 들려서 게이머들을 실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신하인 켈투자드에게 존댓말을 하거나 심지어 자신을 암살하러 쫓아온 일리단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등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오역이 대거 등장합니다. 이러한 오역은 리마스터 버전인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에서 대부분 고쳐졌지만, 워낙 인상적인 오역이었던 만큼 여전히 아서스의 명대사로 회자되곤 합니다.
■ 다키스트 던전

다키스트 던전의 경우 가정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오역을 찾아볼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다키스트 던전의 주제를 나타낸 "우리 가문에 몰락이 찾아왔다"라는 대사는 Ruin을 폐허로 번역되고 Come to를 오다로 번역되어 "유적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라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문장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놀랐습니다!", "기벽: 해상도", "이 목마름을 달래 주는 건 블러드 뿐" 등 영단어 해석 수준에서 완전히 실패한 결과물을 보여줬습니다.
처참한 결과물에 실망한 유저들이 개발사인 레드훅 스튜디오에 문의한 결과 번역을 담당한 업체 중 한 곳이 유희왕 듀얼링크스의 번역을 맡았던 'TNL10N'이라서 더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희왕 듀얼링크스는 승급전 매칭 중 '승리하면 랭크를 획득합니다'라는 문장을 '승리했습니다 랭크를 획득합니다'로 번역하거나 '필드에 놓는다'를 '패에 넣는다'로 번역하는 등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오역을 다수 보여준 바 있습니다.
결국 레드훅 스튜디오는 재번역을 약속, 국내 번역 업체인 바다 게임즈가 번역을 맡아 기존 번역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번역을 제공하게 됩니다.
■ 유희왕
유희왕은 단어 단위 번역에 굉장히 민감한 게임입니다. 카드 효과 중에는 '자신 필드에 "엑소시스터" 몬스터가 존재할 경우에 발동할 수 있다'처럼 특정 단어를 지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 원어를 기준으로 동일 단어는 한국어도 동일하게 번역합니다. 대표적으로 일어 명칭인 'バーサーカー' 대신 영어 명칭인 'Mystic Clown'으로 번역된 '마력의 광대'로 인해 '버서커 크러시' 대신 '마력의 광대 크러시', '바이스 버서커' 대신 '바이스 광대'로 번역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 일관성 때문에 용에서 코끼리가 된 카드도 있습니다. 바로 '고철의 코끼리상'입니다. 일어 명칭은 'くず鉄の像', 즉 고철의 상이나 고철 동상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像이라는 한 글자 때문에 코끼리상이 되었죠. 이전에 像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카드 중에 '은혜의 코끼리상(恵みの像)'과 '재앙의 코끼리상(災みの像)'이란 카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 카드는 주인공 후도 유세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더스트 드래곤과 정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전혀 상관없는 코끼리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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