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온라인 게임의 엔진을 교체한다는 것은 단순한 그래픽만 바뀌는 리마스터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저 건물과 캐릭터를 업스케일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다듬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수년 동안 자연스럽게 익힌 이동과 전투, 아이템 관리, NPC와의 상호작용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특히, 그것이 20년 넘게 같은 세계에서 이용자들의 기억을 쌓아온 세계라면 어려움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는데, 9월 3일부터 시작된 '마비노기 이터니티(이하 이터니티)'의 첫 대규모 알파 테스트는 바로 이 부분을 처음으로 폭넓게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이번 테스트는 이터니티의 핵심 플레이와 초반 성장 동선을 실제 이용자 플레이를 통해 검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6일까지 진행되는 알파에서는 인간 종족만 플레이할 수 있고 티르 코네일, 던바튼을 비롯한 일부 지역과 알비 던전, 몽환의 라비 던전 등이 개방돼 있다. 4종의 전투 재능과 일부 생활 재능만 사용할 수 있는 등 콘텐츠 범위 역시 의도적으로 제한됐다.
따라서 이번 테스트를 통해 이터니티가 어떤 방식으로 기존 마비노기를 재해석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다시 만들려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 과감하게 버린 것 '익숙하지만 오래된 불편함'

가방 속 소지품 테트리스는 이제 바이바이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인벤토리다. 기존 마비노기에서는 아이템마다 차지하는 칸이 달랐다. 무기나 방어구, 그리고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의상들을 챙기고 다니려면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을 옮기고 돌리며 공간을 만드는 이른바 '인벤토리 테트리스'가 일상적으로 발생했고 오랜 서비스 과정에서 다양한 가방이 추가되면서 이 구조 자체가 캐릭터 육성과 소비의 한 부분이 되기도 했다.
이터니티는 이 문법을 그대로 가져가지 않았다. 알파 테스트 버전에서 확인된 인벤토리는 아이템마다 모두 동일하게 1칸의 슬롯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무엇을 어디에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 보유하고 있는 물건을 빠르게 확인하고 사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모습은 오랜 시간동안 마비노기를 즐기던 이용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기조는 반드시 보존해야 할 '마비노기다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이 부분에서 이터니티는 '경험은 계승하더라도 불편함까지 계승할 필요는 없다'는 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조작 체계는 트렌디한데 전반적인 인터페이스의 크기가 지나치게 작고 조정도 불가능한게 아쉬운 부분
이런 태도는 조작 체계의 변경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본 이동은 WASD를 사용하고 상호작용과 아이템 획득, 대상 지정을 'Tab'키와 'F'만으로 대부분 대응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가 이뤄졌고, 긴급회피 기능이 'Space Bar'에 할당되면서 소위 말하는 트렌디한 PC 게임을 접해본 이용자에게 훨씬 익숙한 구조가 됐다.
기존 조작에 몸이 익은 이용자에게는 처음 몇 시간이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마비노기를 처음 접하는 이용자까지 고려한다면 선택의 이유는 명확해진다. 이터니티는 기존 게임을 그대로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이용자까지 받아들여야 할 라이브 게임이기 때문이다.
■ 그대로 옮기지 않고 형태를 바꾼 것 '전투'

알파 테스트답게 처음부터 대부분의 전투 스킬이 해금되어 있는 사양
반면 전투는 단순히 편해졌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에 놓여 있었다. 이터니티의 전투는 기존 마비노기의 스킬을 새로운 그래픽으로 다시 그리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격과 마법의 기본적인 사양부터 캐릭터의 움직임, 전투 템포와 대응 방식까지 새로운 조작 체계에 맞춰 손질되어 있었다.
첫 알파에서 이 변화는 장점보다 먼저 숙제를 드러냈다. 라비 던전까지 준비된 모든 전투 콘텐츠를 플레이해본 결과 몬스터를 공격했을 때의 타격감과 같은 피드백이 상대적으로 가벼웠고, 알파 테스트 전용 버프로 인해 이용자의 캐릭터인 밀레시안이 넘어지지 않기 때문에 맞고 있다는 체감도 잘 되지 않았다

님들도 치셈 영혼나옴
화려한 스킬 이펙트와 부드러운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분명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공격이 적에게 적중했을 때 전달되는 소리와 반응이 그 변화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면 오히려 전투가 가볍게 보이는 순간이 생긴다.
몬스터가 등장할 때나 던전의 문이 열릴 때처럼 직접적인 공격과 관계없는 효과음 역시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같은 던전을 반복한 이용자에게 이런 소리는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다. 상황을 인지하는 신호이면서 동시에 해당 공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알파 테스트 첫날 진행한 민경훈 총괄 디렉터의 라이브 방송에서 해당 내용에 대한 인지와 지속적인 보완을 약속했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는 부분이 있겠다.
■ 약간의 불편함을 끝까지 낭만으로 남긴 '생활과 캐릭터'

장작을 패는데 손가락 5개가 또렷하게 보여요
반대로 생활 콘텐츠를 시작하면 이터니티가 무엇을 버리지 않으려 하는지는 훨씬 쉽게 확인된다.
채집하고, 제작하고, 옷을 입히고, 염색하는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20년 전이나 지금의 마비노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점은 그 행동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양털을 채집할 때 캐릭터가 짓는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처럼 이전에는 단순한 반복 동작에 가까웠던 부분에도 보다 세세하게 확인이 가능한 연출이 들어갔고 캐릭터 모델링과 의상이 정교해지면서 옷을 갈아입고 염색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 역시 과거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외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아 맞다, 생활 스킬 열기 전에 손에 무기 대신 도구를 들어야지
물론, 특정 자세에서 의상이 캐릭터 몸을 뚫고 나오거나 채집 애니메이션의 동작의 세부 프레임이 약간은 어색하게 이어지는 등 손봐야 할 부분은 있었지만, 알파 첫날부터 이용자들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대체로 높은 만족도를 표현할 정도의 퀄리티는 가지고 있었다.
마비노기라는 게임에서 '무엇을 입고 어떤 색을 칠하며 다른 이용자 앞에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플레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터니티는 완벽하지는 않을 지언정 합격점은 충분히 넘기고 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 역시 남겨야 했던 것 '사람이 모이는 풍경과 이야기'

플레이어 캐릭터 커마의 중요성을 문득 새삼 느끼게 된다
알파가 시작되자 티르 코네일과 주요 동선에는 자연스럽게 이용자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장비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펫을 꺼냈으며, 처음 보는 캐릭터 주변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이용자가 몰려들었다. 시스템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제공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풍경이라기보다 새로운 에린을 구경하러 온 밀레시안들이 자연스럽게 한곳에 모여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심지어 이번 알파 테스트 버전에서는 막간 스토리에 가까운 튜토리얼이 새로 추가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이언트가 마나를 쓸 줄 안다고?

숨쉬듯 무례한 '자이언트가 마나를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티르 코네일이 뻔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조난을 이야기하는 등 약간의 개연성 문제는 있었지만, 밀레시안의 또 다른 선택지인 엘프와 자이언트를 티르 코네일의 초입부터 자연스럽게 출연시키는 것은 물론 해당 종족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인식과 같은 세계관 관련 내용을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장면은 분명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덕분에 확 달라진 이터니티의 요소들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에린에 스며드는 흐름에 탈 수 있었고 이러한 변화는 에린을 경험하게 하면서 시스템을 배우게 하는 방향으로 순서를 바꾸려고 한 '신규 이용자를 바라보는 이터니티의 태도' 또한 어느정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과장님이 2시간 만에 납치를 하지 않게 바뀐 것만 해도 벌써 18년이 자닜으니
마비노기 이터니티의 이번 알파 테스트의 경우 솔직히 말해서 '마비노기 2'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알파'라는 이름의 시행착오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용자가 한곳에 많이 몰리거나 여러 UI를 동시에 사용할 때 하이엔드급 스펙의 PC에서도 프레임 드랍이 걸리는 등 플레이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나, 화면 크기에 비해 변경된 인터페이스의 크기가 너무 작고 임의대로 조정도 불가능하다는 점도 분명 아쉬웠다.
하지만 '마비노기 이터니티'는 결국 현재 라이브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 '마비노기'를 대체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단순히 언리얼 엔진으로 교체하기만 한 티르 코네일의 모습이 아니라 그 너머를 봐야 하며 실제로 개발진은 이를 제대로 직시하고 '설마, 이걸 포기하겠어' 싶었던, 기존 마비노기에서 너무 익숙했던 몇몇 요소들을 과감하게 쳐내는 행보를 보여줬다.
그래서 첫 알파가 보여준 이터니티의 방향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래됐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버리지도 않고, 추억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남기지도 않는다'
그래픽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은 화면을 통해 비교할 수 있지만 무엇이 마비노기의 정체성이고 무엇이 단순히 오래된 불편함이었는지는 결국 이용자가 직접 플레이해야만 드러난다.

서큐버스를 만나면 '카운터 어택'에 손이 먼저 가는 것도 습관이라 할 수 있다
마비노기는 서비스 기간만큼이나 수많은 사소한 습관으로 만들어진 게임인 만큼 이러한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고, 그렇기에 이번 마비노기 이터니티의 행보는 이번 알파 테스트 이후에도 꾸준히 이용자들과 스킨십을 진행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터니티가 완성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으로 발전한 '새로운 마비노기'가 아니다. 기존 이용자가 익숙하게 기억하는 에린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지금의 기준에서는 불필요해진 불편과 구조를 과감하게 걷어낸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마비노기'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그만큼 '마비노기 이터니티'는 한 번의 알파 테스트만으로 답을 내리기 어려운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번 테스트에서 드러난 최적화와 인터페이스, 전투 감각 등의 시행착오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개발진의 판단도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첫 알파의 가장 큰 성과는 완성도를 증명했다는 데 있기보다 이용자와 함께 그 경계선을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앞으로 이어질 테스트와 피드백 과정에서 지금의 선택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듬어질 수 있을지가 ‘마비노기 이터니티’의 진짜 승부처가 될 것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