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기사의 대표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됐습니다
1998년 출시된 '메탈 기어 솔리드'의 보스 사이코 맨티스는 게임 화면 밖에 있는 플레이어를 직접 들여다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메모리 카드에 저장된 다른 게임을 언급하고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미리 읽었으며 컨트롤러를 기존에 플레이하던 포트가 아닌 다른 포트로 옮겨야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했다.
당시에는 게임 속 캐릭터가 기기의 저장 데이터를 읽고 플레이 방식에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연출이었다. 플레이어의 정보를 읽고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는 점만 놓고 보면 현재 게임업계가 말하는 AI 캐릭터와 닮은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이코 맨티스 인게임 콘텐츠로 포함된 '메탈 기어 솔리드'가 지금 유럽에서 처음 출시된 상황을 가정한다면 코나미는 AI 콘텐츠의 사용을 고지해야하는 의무가 있을까?

암만 지근거리에서 기관단총을 난사해도 플레이어의 조작을 읽고 대응하기 때문에 맞지 않는다
8월 2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EU 인공지능법 제50조(이하 제50조)의 기준에 대입하면 별도의 고지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사이코 맨티스의 행동은 이용자의 저장 데이터와 입력 조건에 따라 미리 준비된 대사와 행동을 출력하는 규칙 기반 연출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이코 맨티스는 1번 포트에 연결된 컨트롤러의 입력을 읽도록 설계됐고, 이용자가 컨트롤러를 2번 포트로 옮기면 이러한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저장된 다른 게임을 언급하는 대사 역시 메모리 카드에 특정 데이터가 있는지를 확인해 미리 작성된 문장을 출력하는 방식이었다. 이용자의 질문을 해석하고 스스로 생각하여 새로운 답변을 생성하는 현재의 생성형 AI와는 작동 구조가 다르다.
만약 사격을 피한다고 한다면 반드시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피한다는 명확한 규칙성을 가지며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엄폐물을 찾거나 공중으로 뜨거나 앉기를 활용하는 기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용자의 질문을 이해하고 직접 답변을 만드는 현재의 생성형 AI와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조작 뿐만 아니라 게임 외적인 메모리 카드의 데이터를 읽는 기믹이 들어간 사이코 맨티스
EU 집행위원회에서 발표한 새로운 인공지능법의 지침은 이처럼 단순한 규칙 기반 자동 응답 시스템을 사람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과 구분하고 있었다. 게임 및 관련 콘텐츠에서 지금까지 편의상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적이나 NPC라고 해서 모두 인공지능법상 AI 시스템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사이코 맨티스가 법에서 규정하는 AI 시스템에 해당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별도 안내가 필요하지 않을 여지가 있다. 혼자 진행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상대 캐릭터를 실제 사람이 조종하고 있다고 오인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게임이 메모리 카드의 정보를 읽는다는 부분도 AI 투명성 의무와는 별개의 문제다. 사이코 맨티스는 저장된 게임 목록을 조건으로 대사를 선택했을 뿐, 얼굴이나 목소리 같은 생체정보를 이용해 플레이어의 감정을 추론하지 않았다. 현재 기준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나 기기 접근 권한을 별도로 살펴볼 수는 있겠지만, 감정 인식 시스템의 고지 의무가 적용되는 사례와는 거리가 있다.

이용자가 우주선 컴퓨터 카이젠과 직접 문장을 주고받는 이벤트[0]
2016년 출시된 '이벤트[0]'는 우주선 컴퓨터 '카이젠'과 키보드로 대화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이라서 고지 의무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다. 개발사는 카이젠이 플레이어의 입력에 따라 200만 개 이상의 대사를 절차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카이젠은 플레이어와 직접 문장을 주고받으며 해석을 진행하지만 처음부터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제시된다.
‘레프트 4 데드’의 난도를 조절하는 AI '디렉터'도 이와 비슷한 쪽으로 분류할 수 있다. 디렉터는 플레이어의 진행 상황과 성과를 분석해 좀비의 수와 공격 강도, 음악과 효과, 날씨와 이동 경로 등을 조절한다.
다만 AI 디렉터는 플레이어가 독립된 상대방으로 인식해 정보를 주고받는 캐릭터가 아니다. 이용자의 성과와 진행 상황을 입력으로 받아 뒤에서 게임 환경을 조정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따라서 사람과 직접 대화하도록 설계된 AI 시스템을 대상으로 하는 제50조 제1항의 고지 의무에서는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플레이어가 실제 사람과 대화한다고 오인할 여지가 낮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생성형 AI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더라도 ‘AI임이 명백한 경우’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메시스'에서는 실제 동료와 동료의 목소리 및 행동을 모방한 AI 캐릭터가 같은 공간에 섞여든다
2025년 10월 앞서 해보기로 출시된 렐루게임즈의 ‘미메시스’는 이러한 판단을 보다 복잡하게 만드는 사례다. 미메시스는 최대 4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협동 공포 게임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AI 괴물은 플레이어의 목소리와 움직임, 행동 방식을 모방한 뒤 실제 동료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용자는 옆에서 말하고 있는 캐릭터가 함께 입장한 친구인지, 친구를 흉내 내는 AI인지 판단해야 한다.
개발사는 미메시스의 AI가 플레이 중 나타난 이용자의 목소리와 반응, 행동 패턴을 분석해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며 팀에 섞여든다고 설명한다. AI가 실제 이용자의 음성과 행동을 모방해 사람과 AI의 구분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게임의 핵심 규칙인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EU 집행위원회가 예외로 제시한 싱글플레이 NPC와 실제로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메시스에는 여러 실제 이용자가 동시에 참여하며 AI 캐릭터가 이들과 같은 외형과 목소리, 행동을 사용한다. 상대가 실제 사람인지 AI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AI라는 사실이 명백한 경우'의 예외를 적용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한편, 실제 이용자의 목소리를 AI가 재현한다는 점은 제50조 제4항의 딥페이크 표시 의무와도 맞닿을 수 있다. EU 인공지능법은 기존 인물의 음성이나 영상을 AI로 생성·변형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콘텐츠에 이를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다만 미메시스는 명백한 허구·창작물이다. 이러한 작품에는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시 의무를 완화할 수 있다는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게임 시작 전에 AI가 생성하거나 변형한 음성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안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느 캐릭터가 AI인지 그때마다 밝혀야 하는지는 별도의 해석 문제로 남을 여지가 있다.
AI21 랩스가 2023년 공개한 '휴먼 오어 낫?(Human or Not?)'은 이용자가 2분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와 대화한 뒤 상대방이 사람인지 AI인지 맞히는 소셜 튜링 게임이다. 참가자는 실제 사람 또는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설정된 언어모델과 무작위로 연결됐다.
이 게임에서는 AI라는 사실을 숨기는 행위 자체가 핵심 규칙이었다. 연구진이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150만 명 이상의 이용자가 참여했으며 전체 정답률은 68%였다. AI와 대화한 경우 이를 정확하게 구분한 비율은 60%에 그쳤다.
동일한 방식의 게임이 2026년 8월 2일 이후 EU에서 운영된다면 제50조 제1항의 고지 의무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용자는 대화 상대가 AI일 가능성은 알고 있지만, 현재 연결된 상대가 실제 사람인지 AI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휴먼 오어 낫?에서 AI가 대화를 시작할 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게임의 목적은 사라진다. 반대로 정체를 숨기면 이용자가 AI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는 투명성 의무와 충돌할 수 있다. 다만 이에 관한 구체적인 집행 사례나 판례는 아직 없어 법과 게임 규칙이 곧바로 충돌한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해석상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휴먼 오어 낫?에서 AI가 대화를 시작할 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게임의 목적은 사라진다. 반대로 정체를 숨기면 이용자가 AI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는 투명성 의무와 충돌할 수 있다. 다만 이에 관한 구체적인 집행 사례나 판례는 아직 없어 법과 게임 규칙이 곧바로 충돌한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해석상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제 유럽에서는 AI 콘텐츠가 활용된 게임들은 이 아이콘들을 표기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이 사례들은 게임업계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AI’라는 말이 법률상 서로 다른 시스템을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적과 NPC, 플레이 환경을 조절하는 시스템, 이용자의 말을 해석해 답변을 생성하는 캐릭터는 게임 안에서 모두 AI로 불리지만 제50조가 적용되는 방식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제50조는 직접 상호작용하는 AI의 고지, AI가 생성·변형한 콘텐츠의 표시, 감정 인식과 생체 분류 시스템에 대한 안내를 각각 별도의 의무로 규정한다. 따라서 어느 캐릭터가 더 사람처럼 행동하는지만으로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이코 맨티스와 AI 디렉터처럼 작동 원리가 정해져 있거나 배경에서 환경을 조절하는 시스템은 기존 게임 연출에 가까울 수 있다. 반면 미메시스와 휴먼 오어 낫?처럼 사람과 AI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게임은 투명성 의무와 게임 규칙 사이의 경계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AI라는 사실이 명백한 경우’와 창작물에 허용되는 완화된 표시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상태다. 집행위원회도 이번 지침을 제50조에 대한 첫 번째 해석으로 규정한 만큼 실제 경계는 향후 시장감독기관의 집행과 유럽사법재판소의 판단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