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인터넷에서 풍문으로만 떠돌았던 넥슨의 3차원 MMORPG ‘제라’가 IMC게임즈의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컨셉 아트의 일부분을 무단 도용했다는 의혹이 지난 17일 금요일, 사실인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IMC게임즈의 김학규 대표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운영중인 웹사이트를 통해 넥슨에서 ‘제라’의 기획 및 그래픽을 담당하고 있는 팀장 2명이 무단 이미지 도용과 관련, 사과하기 위해 초코 케이크 2개를 대동하고(?) 회사를 방문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공개하면서 ‘제라’와 ‘그라나도 에스파다’가 관련된 이미지 무단 도용건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번 이미지 도용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라면 피해자라고 할만한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는 넥슨 측과 ‘제라’의 이미지를 담당한 디자이너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충분히 반성했을 것으로 본다면서 이번 무단 도용건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임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넥슨 측 역시 일부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것임을 약속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한 장면
국내 게임社 간에 신뢰 문제로까지 번질 뻔 했던 이번 사건이 조속히 해결된 것에 대해 필자는 감히 본문을 통해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히고자 한다. 자칫 잘못하면 국내 게임 시장의 대외적인 신뢰 문제로까지 떠 오를 법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일말의 두려움을 느낀다. 게임 시장을 원동력 역할을 하는 게이머들은 아직까지 이번 넥슨의 이미지 무단 도용건에 대해 "올 것이 왔다" 내지 "갈데까지 갔다"는 비관적인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치면서 넥슨을 향한 성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인 IMC게임즈와 넥슨이 원만하게 합의를 봤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넥슨을 향한 게이머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과거 넥슨이 국내 및 해외 온라인게임 시장에 기여한 업적을 공정하게 평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충성도 높은 게이머들도 실망감이 진하게 배인 게시물을 공개하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제라’의 한 장면
이미지 도용 사실을 인정하고 IMC게임즈와 원만하게 해결까지 본 넥슨에 대해 소위 게임에 대해 어느정도 조예를 갖고 있다 할만한 게이머들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못한 요인을 굳이 들자면 그간 게임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우등 기업으로 손꼽혀온 넥슨의 게임들이 그동안 ‘표절’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전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NC소프트(대표 김택진)에 대적할 국내 유일의 회사로 넥슨을 이끌어 준 일등공신인 ‘비앤비’ 시리즈는 日허드슨社의 ‘봄버맨’ 시리즈와 日닌텐도의 ‘카트 라이더’의 표절작이라는 굴레에 현재까지 얽매여 있다. 넥슨이 공식적으로 허드슨社에 매년 일정액의 로열티를 지불함에도 게이머들의 넥슨을 가벼이 보는 시각은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온라인 기반 1인칭 슈팅 게임 장르의 붐과 발 맞추어 드림익스큐션(대표 장윤호)이 제작하고 넥슨이 배급을 맡은 ‘워록’ 역시 개발 초기부터 스웨덴 주재 게임社, 디지털일루션즈CE가 제작한 ‘배틀필드1942’의 MOD 게임인 ‘배틀필드 1942: 데저트 컴뱃’을 그대로 옮겨 담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게임 팬사이트를 통해 ‘워록’이 ‘배틀필드 1942: 데저트 컴뱃’의 효과음이 담긴 파일을 실제로 무단 도용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게이머들의 비난이 빗발친 바 있다.
‘워록’의 한 장면
하지만 지금 게이머들이 넥슨의 이번 행위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넥슨이 ‘제라’의 이미지 도용건과 관련된 공식 입장 및 후속 조치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다는데 있다. 이미 넥슨은 이전부터 ‘표절’이나 ‘무단 도용’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시 회사 자체적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는데 인색하고 발표 내용마저도 모호하게 꾸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이머들의 비난에 시달려 왔다.
일례로 넥슨은 ‘비엔비’ 시리즈가 ‘봄버맨’ 시리즈를 무단으로 표절했다는 논란이 제기됨과 동시에 日허드슨社로부터 저작권 위반 혐의로 피소 당하자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이면에서는 협상을 통해 조용히 사건을 잠재우고자 하는 행동을 보였다. ‘워록’에서 ‘배틀필드 1942: 데저트 컴뱃’의 효과음이 담긴 파일이 포착되고 사건이 확대화 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해당 파일을 게임에서 삭제하고 테스트 과정에서 쓰인 효과음 파일이 실수로 포함되어 공개됐다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입장 발표문을 공개한 바 있다.
이번 ‘제라’의 이미지 도용건 역시 앞서 벌어졌던 ‘워록’의 무단 도용건과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의 게시물이 공개된 이후, 현 시점까지 넥슨 측은 ‘제라’의 이미지 도용과 관련된 어떠한 공식 발표문도 내고 있지 않다. 일부 언론을 통해 자사의 입장을 밝혔지만 "경험이 부족한 디자이너가 게임 홍보 화면을 그리면서 안일하게 실수를 저질렀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게이머들을 난감케 하고 있다. 한켠에서는 넥슨 소속 직원이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넥슨을 두둔하는 입장을 올렸다는 증거와 의혹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제라’의 이미지 도용 사건이 터진지 4일이 지난 현 시점에서 필자는 당연히 월요일쯤 이번 사건에 대한 넥슨 측의 입장이 어느정도 정리되어 발표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필자의 이메일함에는 오히려 ‘제라’의 비공개 베타테스트에 18만명의 게이머가 지원했다는 보도자료가 자치하고 있었다. 일부 언론을 통해 간헐적으로 공개된 넥슨의 입장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 한 줄 문장으로 꾸며졌다.
이번 사태에 대한 게이머들의 원성이 자자함을 알 수 있다.
과거 국내 한 게임 개발자가 "게임회사는 게이머의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이 문장 자체를 대단히 좋아하고 백번천번 맞는 이야기라고 본다. 넥슨이 지금의 위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비엔비 시리즈’를 위시한 각종 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전부터 자사의 게임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난무했던 전례를 넥슨이 인지했다면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에 대한 입장과 후속 조치 방안을 게이머들에게 밝혔어야 옳다고 본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궁극적으로 해외로 뻗어나갈 넥슨의 미래를 생각하고 최근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서까지 ‘위키’와 관련된 표절로 몸살을 앓았던 웹젠의 경우를 돌아봤다면 이처럼 미온적인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자타로부터 ‘국내 게임산업계를 대표하는 큰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넥슨의 그에 걸맞는 책임있는 모습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2005. 06. 20)
[권영수 기자 blair@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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